1부: 회사를 그만둬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스물다섯, 퇴사할 결심
스물두 살에 또래보다 일찍 일을 시작했다. 아침출근 전엔 영어학원이나 직무 관련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출근해서 새벽까지 하루 4시간씩 자며 몸을 갈아 넣으며 치열하게 달려오다 번아웃이 왔다. 끝없는 철야에 팀원들은 하나둘 떠났고 마지막까지 이 팀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셋, 둘, 하나, 새해가 밝았습니다!” 회사 사무실 책상에 앉아 혼자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창밖은 고요했지만 머릿속은 멍했다. 매일 극심한 스트레스와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어떤 날은 시야가 하얗게 변하기도 했었는데 그 순간, 당장 내일이라도 책상에서 과로사로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모든 것이 달리 보였고 그날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살 때 뭐 하셨어요?”
“취업 준비, 군대, 복학.”
다채로운 세상을 기대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했는데 현실은 놀랍도록 단순하고 반복적이었다. 어딘가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렇다면 나는 다르게 살아봐야지."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했지만 매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 속에서 비자조차 받지 못했다. 시간은 이미 흘러버렸고 남은 것은 일 년이라는 공백이었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로 떠났고 첫 번째 퇴사였다.
제주에서는 많은 것들이 낯설고 새로웠다. 당시 게스트하우스가 10개도 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일하며 지냈는데 스태프 숙소나 시급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로비 구석에 간신히 2층 침대를 놓고 자거나 공용공간의 다락에서 지내야 했다. 침대 위로 밤바람이 스며들고 아침엔 뜨거운 햇볕에 눈을 떠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열악한 환경이 눈떠서 잠들 때까지 갇혀있던 회사 책상보다 훨씬 자유롭게 느껴졌다.
무급으로 일하거나 용돈 정도를 받았고 그 돈으로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몇 년이 지나서야 제주 이주붐이 불고 귀촌인들이 많았지만 그 당시 젊은 귀촌인이 전무하던 때라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떻게 제주에 살게 되었는지 신기해하며 물었고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살고 싶어서 왔어요."
여행 중 게스트하우스에서, 시장 골목에서, 해변가 작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영감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주시내에 방을 구했다. 그곳에서 문화예술교육 사업 강사로 참여하며 아이들과 마을신문 만들기를 하고, 미술심리치료를 공부하며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제주에서 보낸 1년은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였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제주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살암시믄 살아진다.”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그 말은 단순하지만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제주에서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폭설이 내리던 날 한라산을 가로질러 버스를 타고 가던 기억, 작은 카페 난로 앞에 앉아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시간들들은 이전의 회사 생활에서 얻을 수 없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1년의 충만한 시간을 지나 서울 본가로 돌아왔다. 잠시 다른 일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영원히 떠날 줄 알았던 영화업계로 다시 복귀하게 됐다. 스물다섯의 제주에서 보낸 시간은 삶을 처음으로 돌아보는 선택이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열어둔 결정이었다.
스물아홉, 두 번째 퇴사
2014년 봄, 여느 날과 다름없던 분주한 아침이었다. 뉴스 화면 하나가 온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멈춰 세웠다. 그날 퇴근길은 유난히 길고 무거웠다. 지하철에서 두 정거장을 남긴 순간,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손발이 저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이 열리자마자 플랫폼으로 뛰쳐나가서 차가운 의자에 주저앉아 간신히 숨을 내쉬었다.
절망과 무력감은 손 쓸 틈 없이 삼켜버렸고, 통제할 수 없는 감정과 몸의 반응이 덮쳤다. 공황발작이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이 서로 뒤엉키며 빠져나올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로부터 얼마 뒤,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 이사님이 굳은 얼굴로 다가와 대표님이 잠깐 보자는 말을 전했다. 연봉 협상 때를 제외하면 들어가 본 적 없는 대표님의 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선 공간의 묵직한 공기가 느껴졌다.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지금 우리 회사 상황이 좋지 않은데, 다른 계열사로 옮겨보는 건 어떨까?”
이미 회사 상황이 안 좋다는 건 체감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엔 알 수 없는 책임감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계열사를 옮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는 건 자명했고 같은 길을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대표님, 고민 많으셨을 텐데... 저도 회사에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퇴사하겠습니다.”
그렇게 퇴직금과 한 달 치 월급을 더 받고 회사와 이별했다. 백수가 된 첫날 아침 허탈함과 해방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얼마뒤 회사는 완전히 문을 닫았다. 퇴사 후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국 향한 곳은 도피처처럼 느껴졌던 제주였다.
제주는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 다시 내려갔다. 도망치는 것도 때로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