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회사를 그만둬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제주에 내려와 처음 석 달 동안은 산책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낚시를 하며 자유를 만끽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을 구하거나 사업 계획을 철저히 세운 뒤 귀촌을 하지만, 나는 무계획 그 자체였다. 확실했던 건 단 하나, 그림을 놓지 않고 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퇴직금은 작고 귀여웠고,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무렵 제주에서는 프리마켓이 막 생기기 시작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해서 드림캐쳐와 크리스털을 유리병 안에 매달아 만든 유리병 썬캐쳐를 개발해 판매하기로 했다.
스물다섯, 처음 제주에 귀촌했을 때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지냈었다. 당시 스태프 숙소가 따로 제공되지 않아 공용 공간에서 잠을 자야 했고,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그때 드림캐쳐를 접하게 되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실 사이로 악몽과 나쁜 기운들이 걸려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잠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반짝이는 유리병 썬캐쳐는 어두운 에너지를 없애고 밝은 에너지로 채워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여행 중 인도와 네팔에서 구입했던 원석들을 사용해 팔찌와 목걸이 같은 장신구도 만들었다. 손끝에서 완성된 작품들에는 좋은 에너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단순히 판매를 위한 제품이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를 담고 보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작은 작품이 되길 바랐다.
처음 참여한 프리마켓은 세화 바닷가에서 열린 <벨롱장>이었다. 세화의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열린 마켓은 소박하고도 다정한 풍경을 자아냈다. 이후에는 애월 카페 하루하나에서 열렸던 <반짝반짝 착한 가게>에 참여했다. 즐거운 공연과 따뜻한 응원의 분위기 속에서 나의 첫발을 응원해 준 소중한 장소였다.
프리마켓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날씨는 가장 큰 변수가 되었고, 뜨거운 여름날 땡볕 아래 서 있다 보면 살갗이 새까맣게 타고 녹초가 되었다. 바닷가에서 열리는 마켓에서는 강풍에 소품들이 바다로 날아가기도 했다. 마켓이 끝난 뒤에는 짐도 풀지 못한 채 누워 에너지를 회복해야 할 정도로 지쳤다.
처음 마켓에 나간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손님들이 다가와도 부끄러워 제대로 말을 걸지 못했고, 가격을 묻는 질문에만 겨우 대답하며 하루 매출이 3만 원이었다. 서쪽에서 동쪽 끝까지 이동한 차비와 밥값을 계산하면 적자였다.
더 힘든 순간도 있었다. 면전에서 “예쁜 쓰레기”라는 말을 듣거나, “내가 똑같이 만들어줄게”라는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작품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마켓에 함께 셀러로 참여하던 효리님과 필순님은 직접 팔찌와 유리병 썬캐쳐를 구입해 주며 조용히 응원의 마음을 전해줬다. 반짝이는 썬캐쳐의 빛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서 ‘따뜻한 위로의 빛’이라는 슬로건으로 1인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퇴사 후 가장 원했던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재미있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다. 프리마켓에 나가던 시간들은 작은 해방구였다. 핸드메이드 작업을 하는 작가 친구들과 자연스레 소통하며 교류할 수 있었고,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며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헤나를 그려주며 놀고, 수다를 떨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었다. 때로는 다른 작가들의 예쁜 소품과 물물교환을 하며 서로의 작품을 응원했다. 그 시절에는 낭만이 있었고, 삶에서 가장 컬러풀한 순간이었다.
비행기값이 모이면 망설임 없이 여행을 떠났고 옷장은 세상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옷들로 가득했다. 돈을 좇는 삶이 아닌,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취향이나 좋아하는 일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작은 도전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겼다. 누군가는 완벽한 준비가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고. 그러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마음조차도. 그렇다면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지금 퇴사를 꿈꾸고 있거나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면, 이 여정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불안하고 어려워 보일지 몰라도, 그 불확실함 속에는 분명히 기회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용기와 그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를 믿으며 조금씩 시도하다 보면, 어느새 원했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길에 작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