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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가 함께한 고스톱 한 판

2019/8/29 발표

by 고요한밤


1.

어린 시절의 나의 기억에는

고스톱이란 다툼과 불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나의 부친은 4남 3녀, 7남매의 장남이어서

우리 집이 큰집으로 각종 명절과 제사 때에

매번 대가족 숫자가 좁디좁은 집에 모였었다.

일 년 중 설날과 추석이면 전날 밤부터

4형제 고스톱 판이 어김없이 벌어졌고,

밤을 꼴딱 새우고도 쉽게 마감되지 않았으니.

끝나갈 즈음 반드시 큰소리가 오가고 다툼이 있었으며

서로 멱살잡이는 기본이었기에.

여자들은 한쪽에서 음식 준비를 하느라 피곤하게 일하지만

손 하나 까딱 않고 이거 저거 갖고 와라 잔심부름만 시키는

남자 어른들에 대해 내 시선이 고왔을 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고스톱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상존해 있었고

그 요령이나 점수 계산, 룰 등을

굳이 알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2.

윗글을 쓴 것은 2019년 8월이었고

시아버님이 미국을 마지막 방문하신 것은

2018년 12월 말에서 3주 정도 기간이었다.

과연 여행 일정을 소화하실 수 있는

컨디션인지 의아할 정도로

폐에 물이 차서 숨쉬기부터 헉헉 힘들어하셨고

주변의 부축이 없으면

발걸음을 떼기 힘드실 정도였음에도

아버님의 결심은 한결같기만 했다.

아들네가 새로 이사 간 지역, 집, 회사를

직접 가보고 눈으로 보고 싶으시다는 것,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다시 보고 싶으시다는 것이었다.

막상 도착하셔서는 시차와 피로까지 겹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본인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육체적 힘든 고통에 한탄하시기도 했다.

나중에 어머님의 말씀으로는

이 시기에 본인에게 남은 날이 얼마 없음을

스스로 강하게 느끼셨던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여러 힘든 조건과 제약을 무릅쓰고

아들을 설득하여 꼭 다녀가길 원하셨다고 한다.


3.

고스톱에 대한 나의 지론이

결국 편견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으며

삼대가 함께한 그 한 판의 시간이

다시 올 수 없음을 이제야 아쉬워한다.

까르르 깔깔 웃음소리 가득했던 그 밤을

내 아이는 어떻게 기억할까.

함께 살던 본인의 할머니를 통해

어려서 고스톱을 익힌 남편도 나이가 들면

내 아이와 손주와 마주 앉아 한판을 벌이는 날에

아버님의 마음을 공감하며

알 수 없는 회한이 교차하게 되겠지.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우리는 그렇게 나이를 먹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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