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5 발표
1.
이 글을 쓰던 시점을 다시 되살려 본다.
2019년 8월 말 우리 부부는
서울로 들어가서 입원 중인 시아버님을 뵈었다.
긴 간병으로 지치신 시어머님과 교대할 수 있는
직장에 매이지 않은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기에,
그리고 남편의 본사 출장과 시기가 잘 맞아서
함께 서울로 동행할 수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반 병실로
그간 입퇴원을 반복하시며
많이 힘드신 모습의 두 분을 뵙고
새로 고용한 간병인 분과 인사할 수 있었다.
그 하루를 옆에 머무는 동안
아버님은 멀리서 아들 며느리가 찾아온 것에
한편으론 눈물 나도록 반가우셨고
다른 한편으론 내 마지막이 얼마 안 남았기에
미국서 아들 내외까지 날아온 건가로 느끼셨던가 보다.
2.
다음날에 또 올게요 인사를 드린 후 병원을 나섰고.
다음날 아침 어머님을 모시고 잠깐 한의원에 들렀다가
아버님의 병실로 가려던 참에
간병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갑자기 상태가 악화하여
중환자실로 급히 이송되었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보니
일반실 아버님 자리는 텅 비어있고
다음 환자를 위해 병실 짐을 속히 비우란다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은 오전 30분, 저녁때 30분
가족 2명에게만 허용되었다.
눈으로 직접 환자 상태를 보지 못한 채
중환자실로 이송된 후 아버님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안 좋아졌다.
근 열흘 정도 중환자실에 계셨고
우리 가족들은 아버님을 뵙기 위해 택시를 타고
매일 오전과 오후 면회에 맞춰 병원을 찾았다.
3.
그 당시 병원 로비와 휴식공간의 TV마다
조 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 자녀의
입시 의혹 및 인사 청문회를 놓고
집중 보도하는 뉴스 일색이었다.
한쪽에선 한 사람의 생과 사가 오가는 중에
다른 한쪽의 매스컴에서
아침저녁 떠들어대는 날카로운 멘트들이
그저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도 했지만
병원 곳곳 TV마다 워낙 요란하게 집중 보도를 하고
어쩔 수 없이 보이고 들리는 상황에서
나중에는 머리끝까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정치 종교 관련 주제는 지양하라던
칼럼 담당자의 당부와 원고 마감을 확인하며
그 시점의 혼란한 정신줄을 붙들고서
이리저리 돌려서 써 내려간 글이었음을 밝힌다.
4.
한쪽 구석에서 하염없이 면회 시간을 기다리며
멍한 시선으로 TV 를 응시하던 때,
문득 필름처럼 눈앞을 스쳐간 장면이
Y여중 당시의 학교 교훈인
“선량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선량”과 “유능”이란 의외의 조합과
그 밸런스를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유초등학교 과정과
미국에서의 중고등학교 과정을 지나고
미국 대학 입시를 겪었던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한 교육 과정 중에 느낀
여러 사례들, 단상들도 되짚어 보았었다.
(하고픈 말들은 이후에 차차 풀기로 한다)
그렇게 실타래처럼 여기저기 뭉친 갈등 속에서
그때로부터 6년의 시간은 흐르고 흘러
더 많은 정치사회 이슈들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수많은 위기와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어떻게든 단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저력의 대한민국이라 믿고 싶다.
그리고 그 흐름을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이 지켜지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