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2 발표
1.
영국 북아일랜드와 런던에서의 6년을 마치고
중국 심천과 홍콩에서 6년을 살던 때였다.
사업 관계로 시부모님도
중국 심천 쪽으로 오셔서 사시게 되었다.
어느 날 국제학교를 다니던 손자가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자
아버님께선 특히 기뻐하셨다.
군인이자 태권도 교관으로
월남전에도 세 번이나 파병으로 다녀오셨고
제3 국 군인들에게 태권도를 전수하셔서
무수한 제자들을 키워내셨던 삶이 있으셨기에,
사랑하는 손자가 도복을 입고 띠를 매고
태권도의 기초를 배운다는 소식은
노년의 아버님을 한껏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었다.
이후 벨트 색깔이 바뀌는 승단 심사 때마다
품세 동작을 정확히 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조언을 코치해 주셨다.
어린 손자는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발차기 동작 하나, 기합 소리 하나
허투루 대충 해내는 법이 없었다.
블랙벨트 전단계까지 마스터하고서
미국으로 이주하느라 그만두게 되었고
다른 운동들에 빠져들게 되었으나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 진지하게 대화하며
기초 체력과 근성을 다질 수 있었던
아주 끈끈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2.
아버님은 군인으로 계시면서 군악대장도 겸직하셨다는데
10대 시절부터 독학으로 익히신 트럼펫을 필두로
피아노와 색소폰까지 다양하게 연주하셨다고 한다.
아이가 다니던 홍콩의 국제학교에서
방과 후 클럽활동의 일환으로 각종 악기 대여를 해주었는데
본인이 원해서 시작한 바이올린은 따분해하던 차에
선뜻 트럼펫을 선택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 당시 <베토벤 바이러스> 드라마에
지휘자 강마에만큼이나 장근석의 트럼펫이 인기일 때였다.
처음 배우면서 대여하는 악기를 쓰는 거니
하다가 변심해도 큰 부담이 없겠지 싶었는데
그 일 년의 시간 동안 재미있게 잘 배우는 것 같아
제대로 된, 중고가 아닌 새것으로 첫 트럼펫을
아버님 어머님이 선물로 전해 주셨다.
이후 아버님의 생신을 기념하는 식사 자리마다
많은 손님들 앞에서 생신축하 노래나
다른 간단한 곡들을 트럼펫으로 연주하여
일동의 큰 박수를 받곤 했다.
그때마다 아버님은 본인과 손자 사이에
트럼펫이란 공통점이 생겼다며
아주 많이 자랑스러워하셨다.
아이는 이후 그 트럼펫으로 미국 중고등학교에서
오케스트라, 재즈 밴드 활동을 했으며,
대학가서도 부전공으로 음악을 택하여
트럼펫 연주와 관련 공부를 꾸준히 해나갔다.
(지금도 직장 생활하면서
교회와 지역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이다)
어느새 트럼펫은 이 아이에게
떼낼 수 없는 분신이 되어 있었다.
3.
아버님의 병세가 위중해지고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당시 대학 3학년으로 학기를 이미 시작한 아이에게
아무래도 서울로 와야 할 것 같다고
어렵사리 말을 전할 때에,
아이는 “네. 당연히 제가 가야지요.
이미 수업은 시작했지만 얘기 잘해놓고 갈게요.
그리고 트럼펫도 들고 갈 거예요 “ 말했다.
그렇게 간단히 짐을 꾸려 트럼펫 가방을 챙겨 들고
미국 국내선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환승하여
인천공항에 내리던 그 새벽에
어머님과 우리 내외는 윗글의 서두와 같이
병원서 연락을 받고 후다닥 택시를 타야 했다.
아이보고 여의도 병원으로 곧장 오라고 통화한 후
얼마 안 있어 아버님은 소천하셨고
병원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아이는 그 소식을 접해야 했다.
3일째 발인날 아침, 사랑하는 할아버지 영정을 들고
장지에 도착한 아이는 주룩주룩 비 내리는 묘역에서
하늘을 향해, 멀리 떠나신 할아버지를 기리며
처연하고 슬픈 곡조로 트럼펫을 올려 드렸다.
Amazing Grace.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아이의 얼굴 위로 번져 가던 그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후 매년 9월 아버님의 기일마다
회사 휴가를 내어 한국을 방문하고,
트럼펫으로 여러 곡들을 묘역에서 연주하는 기특한 이 아이.
하늘나라에서도 기쁘게 듣고 계시리라.
그리고 변함없이 한결같은 그 큰 사랑으로
아이를 지켜주고 계시는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