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19 발표
1.
여러 다양한 환경을 옮겨 다니면서
영국계와 미국계 교육과정을 오가며
성장한 내 아이의 케이스는
이미 무수한 샘플 중의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아이는 그 어린 시절부터
영국계 학교에서는 영국식 발음과 악센트,
필기체 쓰기 등에 익숙해졌으며
미국계 학교에서는 미국식 발음과 악센트,
인쇄체 쓰기 등으로 급 태세전환해야 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영어가 딸리면 어쩌나
학습 진도 면에서 뒤처지면 어쩌나
교우 관계에서 뭔가 어울리지 못하고
어떤 형태로든 불이익을 겪지 않나 싶어
초보 엄마로서 조바심을 느낀 적도 부지기수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긴장하고 초조하면서도
겉으론 애써 태연한 척, 즐거운 척,
옮겨간 학교마다 자기 딴에
나름 노력하는 모양새가
안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출장으로 자주 집을 비우는 아빠 대신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외동 아이라
아이의 어떤 문제나 결손이
엄마인 내 탓으로 돌려질까 봐
항상 마음 한편이 걱정되고 불안했었다.
2.
2011년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을 같이 보면서
10대 초반의 어린 아이는
김범수, 박정현, YB의
개성 있는 목소리와 절절한 노래 가사와
환상적인 편곡에 빠져들었다.
한편으론 김연우 버전의 ‘나와 같다면’을
자기 방에 무한반복으로 틀어놓았다.
아침 등교 때마다 차 안에서
김범수 버전의 ‘늪’을 다 들어야 내렸고,
YB가 부른 ‘Run Devil Run’을
전자기타로 연주하고 말겠다며
밤낮으로 매달려 독학으로 연습해서
결국 똑같이 연주해 내고야 마는
열정과 끈기도 보여 주었다.
그 시절 가끔 얼바인 지역 노래방을 데리고 가면
내내 마이크를 혼자 독차지하고
나가수 노래들을 비롯,
그 가수들의 오래된 히트곡들까지 찾아서
변성기 전의 곱디고운 목소리로 불러주던 때,
마음 한편의 아이를 향한
원초적인 불안과 걱정은 잠시 사그라들고
아이와 함께 한마음이 되던 순간이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노래와 음악의 힘으로
기나긴 사춘기의 터널을 지날 수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대학입시 이후엔
자의든 타의든 악기를 그만두게 되는데
아이는 꾸준히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하며
현재에도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3.
아이는 대학 졸업 후 집으로 돌아오고
교회 오케스트라에 조인하면서
한 살 아래 여자친구를 만났다.
3년 넘게 교제하며
미래를 함께 하기로 약속한,
너무도 착하고 사랑스러운
한국인 여자친구와의 연애를 통해
약간 어눌했던 한국어 구사나
어려운 어휘에 대한 이해도가 급속 발전했고.
전통가요 트롯을 애정하는 여자 친구 덕분에
즐겨 듣는 노래의 레퍼토리가 더 넓게 확장되었으며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와
한국식 예의범절에도 더 익숙해졌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자친구와
트럼펫 합주로 영상을 남기기도 하며
신앙적, 음악적으로도 늘 교감하고 있다
가끔 특별한 날에 가족끼리 노래방을 가게 되면
두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기만 해도
그저 흐뭇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 여자친구가 어려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결혼으로 이어지기엔
한동안 기다리게 되겠지만.
그야말로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찐사랑에 빠진 내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