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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에서 ‘동심협력’으로

2021/02/02 발표

by 고요한밤

1.

몸은 여러 지표상 이미 50대 나이지만

정신연령만큼은 20대 영원한 청춘으로 믿고 산다.

한마디로 아직 철들려면 멀고도 멀었다는 뜻이리라.

철이야 이 세상 뜨기 전 언젠가는 들겠거니

생각도 상상도 자유로이 넘나들고 싶건만

이젠 마음만이 앞설 뿐인지라

늘 아쉬움이 자리하곤 한다.


https://youtu.be/m3Wjv9JW_6A?si=m8epFo72CBmbzSGx


2.

최근 MBTI로 성격을 구분하는 것이 큰 유행이었다.

주변을 돌아보아도

20대 청년들의 새로운 모임에 LinkedIn 말고도

서로의 MBTI를 기본으로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MBTI는 대학 시절 조직행동론 수업에서 접했었는데

요즘처럼 이런 인기를 몰고 다닐 줄은 몰랐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정형화된 성격 구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굳이 나의 소개로 인용하길 꺼리지만.

남편과 나는 그야말로 극과 극의 성격이고

거기다 각자 고집도 세고 신경도 예민한지라.

서로 E와 I로 주고받고 넘나들고

T와 F의 파도가 교대로 몰아쳤으며

사사건건 부딪히고 엇나가고 열받고 삐지고

파란만장한 여정을 함께 보냈다.

울퉁불퉁한 두 자갈돌이 세월에 마모되어

어느덧 둥그스름한 형체로 다듬어지기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얼마나 많은 미세한 생채기가 남아있는 건가.

남들처럼 그렇게 우리도 지내왔노라 말할 수 있다.


3.

남편의 하는 일과 글로벌 출장으로

부부가 멀리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같이 살며 재택과 출근을 겸하는 아들은

굳이 식사를 챙겨주지 않아도 되고

빨래나 청소도 알아서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다.

생활이 달라 주중엔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고

함께 식사하는 것도 손에 꼽게 된다.

이런 연유로 홀가분해진 덕분에

평상시엔 나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살고

낮시간 잔디에서 실컷 땅을 파며 공칠 수 있으며,

저녁엔 아주 간단한 요기로 때우고

나만의 간식을 오붓이 먹어가면서

맘껏 책 읽기, 글쓰기, TV 보기가 가능하다.

먹거리 쇼핑도 자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지극히 단순화되고 풍성한 자유 시간을 누리건만.

남들은 ‘중년의 로또’라고도 부러워한다지만

마음 한편으론 이렇게 계속 떨어져 사는 게 맞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가끔 왔다가는 손님을 대하듯 무감각해지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에 관하여 여러 생각이 든다.

어쨌든 주어진 여건과 상황 속에서

문득문득 혼자보다는 둘이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4.

아직도 철들어 가는 과정 중인 나라는 인물은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다는

단순하고도 평범한 진리를

몸소 다시 한번 체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 거대한 동판 부조 액자의 장면을

세상 속으로 전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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