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뼛속까지 시렸던 그날들

by 고요한밤

뼛속까지 시린다는 말로는 모자라거든.

차디찬 얼음물에 담가놓은 두툼한 스펀지 뭉치를

내 양쪽 어깨뼈 위에 켜켜이 올려두고

그 옆에서 큰 선풍기 바람을 강하게 틀어놓은 느낌.

그렇게 그 상태로 이십 년이 지나갔다고.


1.

1999년 6월의 어느 날 밤늦게

서울의 어느 작은 병원에서 나의 태중에 있던

한 아기가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났다.

미처 아기를 보지 못한 채 회복실로 옮겨진 젊은 산모는

한두 시간 이내에 전신 오한 증상을 시작으로

갑자기 응급 상황이 발생하였고

각종 처치에도 나아지지 않았기에,

전원도 불가능한 급박한 상황에서

긴급 수술에 들어가게 되었다.

“제발 다시 눈뜰 수 있게 해 주세요

우리 아기 아직 못 만났어요…“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 힘없이 중얼거리며

의료진에게 간청했던 덕분인지

그 시간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어쨌든 하늘나라 문턱까지는 찍고 다녀온 셈으로

다행히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본인의 몸도 마음도 미처 회복되지 못한 가운데

백일 갓 지난 아기를 데리고 첫 해외 생활이 시작되었다.

영국의 북아일랜드와 런던은 겨울이 특히 길고 추웠다.


2.

면역력 저하를 비롯한 각종 후유증이 생겨났는데

응급 상황 당시 찬 공기에 장시간 노출되었기에

산후풍이라 불리는 증상이 가장 극심하게 나타났다.

날씨가 덥거나 춥거나 무관하고

옷을 어느 정도 두껍게 껴입었는가도 무관하였다.

가만히만 있어도 어깨부터 시작하여

그야말로 뼛속까지 시린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서늘하고 냉한 느낌과 날이 선 통증이 사시사철 괴롭혔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어 보였기에

남편조차 뭐가 그렇게 힘들다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하루하루 밝게 커가는 아기를 돌봐야 하는 건 둘째치고

내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를 못해서

체력적으로 늘 허둥거려야 했다.

뜨거운 물로 설거지나 샤워를 하는 순간에도

뜨거운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을 겹겹이 덮어도

앞니를 덜덜 부딪칠 정도로 오한 증상에 시달렸다.

이후 살아온 나라와 지역들에서도

영하 기온으로 떨어지거나 눈이 올 정도는 아니지만

차가운 공기와 습도, 취약한 실내 난방으로 늘 힘들어했다.


3.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아침 등교를 시키고 몇 시간은 병든 닭 모드로

이불 속에 웅크려 있어야 했다.

낯선 환경에 용감히 적응하고자 했던 내가

점점 움츠려 들고 사람 만나기 꺼려졌고 나약해져만 갔다.

아이가 크는 동안 가족여행으로 간 스키장에서도

난 실내에서 따뜻한 커피로 창밖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이십 년이 흘러갔고

그토록 날 힘들게 하던 산후풍 증상은

다행히도 어느새 옅어져 갔다.

바닥을 찍던 체력이 서서히 회복되고

몇 년 전부터 얼떨결에 시작한 골프를 꾸준히 연습하면서

많이 걷고 휘두르고 햇빛을 쬐며 사람들을 만나니

하루하루 신이 나고 스스로 내면의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갱년기 증상도 두렵지 않고

어떻게 내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판단이 선다.

건강하지 못했던 3,40대의 시간들을 통과하여

이젠 50대 이후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를 꿈꾸는 지금,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나에게

그래도 긴 시간 잘 참고 잘 버텨냈구나

칭찬 한 마디 미소로 건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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