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고 달뜨는 풍경의 기록
휴대전화 진동이 두 번째 사이클을 시작하기 전, 여섯 시 오분에서 십오 분 사이면 어김없이 울리는 남편의 전화로 우리의 해 질 녘 일상이 시작된다.
그럼 나는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켜둔 채로 퇴근 후 잠시 청했던 얕은 잠을 마무리한다.
남편은 언제나 일곱 시 언저리에 도착하고, 40분 남짓한 시간 안에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40분 수업에 10분 쉬는 시간에 맞춰진 생체리듬에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는 시간이다.
단배추가 맛있을 때지, 출근 전 냉장고에 넣어둔 배추의 겉잎 너댓장을 떼어내
차가운 물에 흐르듯 헹궈내고는 도각도각 손가락 한마디정도로 썰다 보면
육수가 텁텁해지기 전 다시마를 건져내기 적당한 때가 된다.
아무래도 단배춧국은 맑고 슴슴한게 좋으니 엄마가 담은 된장을 거름망에 얹어
콩건더기가 가라앉지 않게 살살 걸러준다.
두부에 회간장과 참기름 한 숟갈을 끼얹으면 담백한데 간간하니 국과 잘 어울리는 곁들임이지.
도정 덜 한 조금 거친 현미와 쥐눈이콩 섞은 밥에 김이 모락모락 날 때면 남편이 누르는 도어록 소리가 들린다.
늘 남편은 큰 창을 보는, 나는 그런 남편을 보는, 정한 적 없지만 정해진 자리에 앉아
별 것 없지만 손이 제법 간 저녁 식탁에 앉으면 꼭 뒤늦게 남편은 '아차.' 하고 구운 김을 두 봉지를 가져다 뜯어 나 하나, 자기 것 하나를 놓는다. 항상 내가 남기는 한 두장을 남편이 먹으면 딱 맞아떨어지는 두 봉지.
저녁식사 동안 오늘 우리 반 00 이는 말썽 피우지 않았는지, 남편 회사의 0 대리는 언제 휴가가 시작하는지 소소한 이야기가 느릿느릿 오고 간다. 우리의 식사는 짧지만 저녁은 길고 포근하다.
식사가 끝나면 남편은 그릇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럼 나는 식탁과 가스레인지를 닦고 후식을 준비한다.
오늘은 날이 너무 추웠잖아, 보리차가 좋겠어.
퇴근쯤부터 생각하던 것이라 집에 오자마자 초저녁잠을 자기 전 미리 끓여두었던 보리차가 적당히 미지근하다.
나는 '오늘 학교에서 받았어. 0학년 00 선생님 시모상 답례떡이야.'하고 작은 접시에 백설기를 담아 보리차와 함께 내어온다. 그럼 남편은 요즘 단감이 맛있다며 능숙하게 사각사각 감 하나를 여덟 조각으로 깎고 자른다.
기분 좋게 배가 부르면 남편은 운동 가기 전 내 무릎에 누워 짧은 잠을 청하고는 한다.
그럼 나는 그런 남편의 머리를 쓸며 책을 보거나 인터넷 기사를 찾아 읽는다.
이미 밖은 깜깜하지만, 묘하게 따뜻하고 어스름한 그 시간의 온도를 나는 참 좋아한다.
운동을 가지 않는 날이면, 남편은 잠에서 깨 성가셔하는 나를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간다.
우리는 출근하며, 퇴근해 저녁을 준비하며, 또 저녁식사 내내 쉼 없이 하루를 공유했지만
산책하는 시간에는 좀 더 우리에 집중하여 촘촘한 대화를 한다.
당장 거실에 둘 책장을 무슨 색으로 할 지에 대한 고민부터 먼 미래를 설계하며 대출이나 주식 따위의 다분히 현실적 이야기까지 늘 할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렇게 찬바람에 얼굴이 얼얼한 것도 잊은 채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면 언제나처럼 나의 40분이 훌쩍 지나버린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편의점에 들르는 걸 좋아한다.
동네 여기저기 세 군데 정도 되는 서로 다른 편의점 중에 오늘은 어디로 갈지 고르는 재미가 꽤 있다.
우리는 주로 캔 보다는 작은 페트병에 담긴 제로콜라 한 병, 그리고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한 봉지 정도를 고른다. 과자는 나보단 남편의 몫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선 채로 얼음컵을 준비해
나는 작은 한 잔, 남편은 큰 한 잔을 따라 마시며 잠시 땀을 식힌다.
그럼 탄산의 알싸함과, 막 들어오며 아직 가시지 않고 패딩에 남은 겨울 공기의 시린 쇠맛이 섞여
박하잎처럼 화한 기운이 머리를 울리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하루 끝을 알리는 일종의 감각적 의식이다.
겨울밤, 일상. 별 것 아니지만 어느 하나 없어서는 안 될 순간들을 퍼즐 맞추는 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