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어머니회

-다음 신호를 기다리시오

by 시인 이문숙

초등학교 담장으로 개 한 마리가 떠돈다. 얼굴은 여자 얼굴을 하고 있다. 식어버린 섬광을 얼굴에 두른 개 한 마리.


횡단보도에 녹색어머니들이 서 있다. 왼손에는 녹색 깃발을 오른손에는 적색 깃발을 들고 있다. 녹색 신호가 들어오자 적색 깃발을 내리고 녹색 깃발을 들어올린다. 적녹적녹. 녹적녹적.


창가에서 보면 다채롭다. 초등학교 담장이 미디어 아트의 배경이다. 적녹적녹. 녹적녹적. 초등학교담장을 빙빙 도는 여자 얼굴의 개를 비춘다. 녹적녹적. 적녹적녹.


녹색은 무슨 색일까. 녹색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일까. 녹색어머니회는 거리의 헤카베Hekabe일까. 녹색은 그들의 안전한 딸일까.


네가 무사했으면 좋겠어

네가 멀리 떠나가지 않으면 좋겠어

네가 여자여도 괜찮았으면 좋겠어

-한연희 ‘녹색 활동’


적색 신호가 들어온다. 적색은 또 무슨 색일까. 눈 앞에 녹색어머니 서 있다. 녹색 깃발을 내리고 적색 깃발을 들었다 내린다. 적색어머니는 왜 존재하지 않을까. 적색어머니회는 왜 없을까.


횡단보도 너머에서 헤카베의 딸 카산드라가 울부짖는다. 여러분, 저 담장을 빙빙 도는 개를 봐요. 우리 엄마 헤카베의 환생이예요.


신호등이 미친 듯 깜빡인다. 녹적녹적. 제발 저 목마를 이곳에 들이지 마세요. 목마에는 아이들이 우글거리고 있어요. 창문 없는 기형적인 교실처럼요. 이 교실에는 해가 온종일 들지 않아요. 적녹적녹.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구요. 화가 나면 친구 이마를 연필로 긋고요. 적녹적녹.


초등학교 담장에 조문객이 두고 간 수백 개의 화환이 서있다. 대부분 화환은 흰 국화꽃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다른 한 화환. 수십 개 흰 국화 속에 백합 한 송이가 들어있다. 우연일까.


​그때 나는 적색으로 바뀌기 전 깜빡거림

발밑이 아니라 하늘을 올려다보려는 안간힘

아직은 괜찮을 거라는 한 번의 믿음

-한연희 ‘녹색 활동’


아니다. 그걸 발견한 나는 이렇게 주해했다. 울었다. 녹적녹적. 외쳤다. 갑자기 하늘로 떠난 네가 너무 안타까워. 적녹적녹. 그래서 국화를 꽂다가 한 송이를 빼고 슬쩍 백합 한 송이를 꽂아 둔 거야. 적녹적녹. 흰 꽃잎에 간명簡明한 붉은 꽃술.


개가 된 슬픈 어머니 헤카베가 입에 물고와 꽂은 그 한 송이. 여자 얼굴을 하고 그 담장에서 먹지도 자지도 않고 떠도는 개를 내 눈은 비문증처럼 데려다 놓는다. 아, 그 젊은 여선생님이구나.


​길에 널린 돌멩이의 활동에 대해 알아요

나처럼 서서히 슬픔으로 가득찬 애는요

사람 많은 길에 가면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돌멩이를 봐요 돌멩이가 와요 함께 돌멩이가 돼요

-한연희 ‘녹색 활동’


횡단보도 앞 길에서 가장 슬퍼 보이는 돌멩이를 찾아보고 있어요. 찾기 힘들겠죠. 그래도 하나는 찾을 수 있길 바래요. 그 돌멩이에게 ‘녹색 활동’을 해보게 하려구요.


​그렇게 사람한테서 떨어진 무수한 슬픔이

딱딱하게 굳어가거나 조금씩 무너지면서

발에 채거나 멀리 던져지거나

-한연희 ‘녹색 활동’


녹색색맹에게 이 거리의 풍경은 어떻게 보일까요. 예언자 카산드라여, 목마 속 아이들은 얼마나 갑갑했을까요. 그 교실의 선생님은 얼마나 슬펐을까요. 왜 그런 교실이 존재하죠. 왜 빛 한 점 들지 않는 물품창고가 교실로 개조되었을까요.


녹색이 활동하지 못하는 교실. 돌아오지 못하는 선생님. 선생님의 목소리를 알고 있는 아이들.


건널목 앞 굳센 돌멩이로서

다음 활동을 기다리는 거예요

-한연희 ‘녹색 활동’


적녹적녹. 이제 다음 활동은 무언가요. 녹색 신호가 들어왔는데 적색 깃발을 녹색어머니가 들고 있다. 적색 신호가 들어왔는데 녹색어머니는 녹색 깃발을 들고 있다. 녹적녹적.


다음 신호에 건너십시오. 그 학교의 영원한 보결교사처럼 초등학교 담장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적녹색맹의 돌멩이가 되었다.


*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한연희, 녹색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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