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갈아신다

-얇고 촉각적인

by 시인 이문숙


베란다 창이 가른 검은 그늘의 안쪽에서 바깥의

찬연한 햇빛 속, 잔꽃송이들을 새빨갛게 뭉쳐 매단 명자나무를 익히다가

-이진명 ‘명자나무’


얼었던 땅이 지름지름 순해지면 우리들의 옷차림도 얇고 감각적이 된다. 무심히 지나가던 사물들에 나를 내놓고 조금은 ‘앗따가’하게.


나는 우선 신발을 갈아신는다. 땅의 노곤노곤함을 발이 먼저 알아채라고. 얇고 촉각적인 신발. 발의 지도 안에 있는 봄의 통각을 깨우는. 그 통각은 어디쯤 있을까. 발가락과 발꿈치 사이 어떤 협곡의 주름 안.


아주 별쭝난 이 나무는 무엇일까. 짙초록 잎 새빨강 꽃송이. 가시가 있는 줄 모르고 꽃을 눈으로 먼저 만지려다 앗, 따가워. 어린 아가가 그 나무를 ‘앗따가’나무라고 부르기도 한. 손가락에 맺힌 동그란 핏방울 그 하얀 백혈의 모순이여.


명자나무다. 명자. 명자는 어쩌자고 이 ‘앗따가’나무의 이름이 되었을까. 명자는 어떻게 수평선에 핏자국 묻은 병원용 시트처럼 걸려있다 탕하고 떨어지는 붉은 낙조를 닮았을까.


이름에 대해 생각한다. 춘갑과 카리나karina. 남도의 어느곳에 산다는 남자와 캐나다 어디에서 왔다는 아가씨.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이름이 미약하게 싫다는 것이다. 개명을 꿈꿀 정도는 아니지만, 누가 춘깝아 부르거나 카리나 머클 하면 움칠하는.


나는 그러나 '춘갑'이란 이름이 그냥 듣는 대로 귓바퀴가 동그래지며 돌돌대며 굴러가는게 쉽상 좋았는데. 춘식이 삼춘. 춘식이 삼춘. 이런 방식으로 해녀들을 삼춘이라고 부르는 그 씩씩함에 여자도 남자도 아닌 춘식이라고 불러대는 그 알 수 없는 싹싹함에. 춘갑아. 너두 춘식이처럼 천상 춘갑이여.


춘갑, 늘 환한 봄 기운으로 주위를 감싸는 갑옷. 그래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원한 '갑.’ 가끔 민혁이라는 가명도 쓰면 금상첨화. 자만하지 말고 특히 추운 겨울에 갑이 아닌 ‘을병정’에게 덕을 베풀라. 시경에서 이름 풀이를 해보면 춘갑은 분명 이런 뜻일 것이야.


갑자기 큰소리로 명자야, 하고 불러버렸다

외로움과 시름이 탕, 깨어나더니

-이진명 ‘명자나무’


베란다 유리 속 명자는 그 나무의 이름이 명자라는 걸 모르고 산책로 관목에서 씨를 받는다. 약봉투처럼 깨끗하게. 명자는 얌전한 치매처럼 잊는다. 그러고선 어디선가 오는 이상한 홧홧함을 느낀다.


봄이다. 베란다 안에 명자는 베란다 바깥을 내다본다. 그늘과 빛이 두 곳을 분할한다. 니키드 생팔의 사격회화처럼 어느 순간 탕하고 깨지는 베란다 창. 그 유리는 누구도 가둘 수 없는 미결수 같다. 배타적이지도 강고하지도 않아.


유리는 어느덧 이쪽과 저쪽을 다 담아내고 있다. 그 속에 저 나무. ‘앗따가앗따가.’ 깨진 유리의 입술만이 달삭대며 그 이름을 깨우려 하지만, 알 수 없다. 제 이름도 기억에서 지워진 미결수.


명자는 자신이 명자라는 걸 모른다. 그러나 맹아력 강한 씩씩함. 꺾은 가지로 삽목할 수도 있고 활착력도 좋은 그 타고난 싹싹함. 맹아와 삽목, 활착처럼 씩씩하고 싹싹한 언어가 여기 명자에게 있다. 그러니, 명자야. 네가 명자나무일 수밖에.


어디서나 잘 자라고 화목하는 그 ‘씩씩과 싹싹’을 명자라는 이름 말고 어떻게 다른 이름이 배태하고 기호화할 수 있을까. 길자라고 부르면 왜 안 돼냐구 묻지 말길.


문숙, 글이 맑다, 글이 맑으면 시가 된다. 시경. 기차역장을 지내신 용산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이름의 의미도 모르면서 깨꼽쟁이 중학교때부터 시를 사랑하였다니. 아, 우습다.


대학때 '두시언해' 시간에 시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는 걸 알았다. 시는 사무사思無邪. 영원한 시의 미결수인 내 안에서 방울뱀처럼 울리는 이름. 살모사殺母蛇처럼 언어의 모성을 살해하는 이름. 맑은 독니를 갖고 상투화려는 언어에 반항하는 이름.


이름과 운명destiny. 나의 캐나다 아가씨 영어선생님 카리나 머클karina muckle은 키가 장대 같고 덩치가 좋다. 머클Muckle이라는 말에는 '크다, 태산, 거인족'이라는 의미가 있다. 큰 키가 싫어 늘 구부정한 자세로 키를 줄여보려 애쓴다. 파란 눈으로 쳐다볼 땐, 가도가도 가없는 민둥머리 산등성이에 솔샘 같은 걸 발견한 기분이 든다. 맑다. 빼꼼하게 예쁘오.


명자씨. 우리 이번 여름휴가 땐 망상 갈까.망상가자. 모래가 아주 좋대.

명자씨. 망상 가서, 망상 바다에 떠서, 멀리 멀리로.

-이진명 ‘명자나무’


추운 겨울 한천에 난방비라두 벌겠다고 하루 12시간 알바하느라 고단한 춘갑씨. 그의 발 속에 들어있는 협곡에 주름이 깊어진다. 물류창고에서 일하면 시급을 더 쳐 준다고 나선 막밤샘 노동.


춘갑씨는 늘 늦게 와서 일찍 잠드는 명자씨는 새곰새곰 미안타. 새벽에 아래층 개 짖는 소리에 나가보니 춘갑씨 곤한 신발이 놓여 있네. 가만 그 신발에 발을 넣어본다. 헐럭하고 왠지 가뿐한 것 같아.


그 신발 속에 언젠가 가봤던 망상 해변이 들어있어. 모래가 참 고왔지. 발바닥이 앗따가앗따가 하기도 했어. 사락사락해. 우리 망상 갈까. 가볼까. 거기 떠서 멀리 더 멀리.


거실을 타고 방으로 가던 온기도 다 식어빠진 무렵, 콩주머닐 전자렌지에 돌려 춘갑씨 이불 속에 넣어준다.


해마다 난방'빈' 왜 이리 비싸나. 말하다 보니 가난할 '빈'자가 여기도 출몰하네. 난방 스위치를 켜려다 말고 콩주머니를. 콩이 끌어안고 있는 이 맹아성 강하고 활착력 좋은 온기를 명자는 명자나무는 이미 알고 있어. 춘갑씨 고단한 발에 삽목하면 거기서 명자나무가 잔잔잔잔 솟을까.


얼었던 땅이 노골하고 나무 껍질이 부드러지는 걸 어제 보았다. 햇빛이 어깨에 톡톡 안녕이라는 말도 생각 안 나는 명자씨처럼 떨어진다. 무얼 지고 가더라도 신발은 얇고 깨끗한 것이어야 한다. ‘앗따가’해야 한다.


*시인의 이름 진명, 밝을 명자가 갖고 있는 씩씩함과 싹싹함. 가끔 신경질도 부린다. 이 신경질이란 게 늘탕, 깨어있으려는 ‘앗따가’ 정신punctum 아닐까.


*앗따가나무, 아이가 미성선교원 갈 때 꼭 이 나무를 보면 만져봐야 하던 나무. 손가락에 따끔하는 감각이 좋았던 듯하다.


* Leonardo da Vinci, Lady with an ermine


#이진명시인#명자나무#봄#이문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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