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마녀열전

-분수

by 시인 이문숙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면 여전히 솟아났다. 잔잔잔하는데 무언가 ‘뽀옥’하고 올라오다 다시 잔잔잔해졌다.


버스들이 오가는 사이로 손들이 아스팔트 광장을 뚫고 작고 크고 여위고 투박한 손들이 자꾸 올라왔다. 연좌하고 있는 그날의 손들이.


길이 갈라지며 빗자루가 다리미가 아닌 흰 국화를 든 손들이 도로를 뚫고 올라왔다. 고깔모자가 아닌 깃발을 든 손이 올라왔다. 단순히 ‘그날’만의 여파는 아닌 것 같았다.


‘화분안죽이기시민연합’ 깃발이 흔들렸다. 엽총 대신 깃발을 쥔 손들이 올라왔다. 시의회에 붙은 <동주공제同舟共濟> 같은 헛말이나 곁말 같은 거에 홀리려는 눈동자를 부수는 손들이 올라왔다.


빗자루보다 엽총을 좋아했지만

고깔모자보다 선언문을 즐겨 썼지만

-홍인혜 ‘소굴’


유례없는 화이트 미니문 대보름. 멀디 멀어서 작고 희미한 ‘흰돌고래’ 같은 달. 그래서 공교하게 빛을 거두어 저에게로 뻗은 달. 시가지에서 빛 없이 떠있으니 빛에 대한 배반감이 없어 솟고 솟는 손들이 더 잘 보였다.


화분안죽이기. 울부짖는사람내몰지않기. 대형분수에물매맞는여자조각상없애기. 엄마들가슴에자식묻지않게하기.


대형분수 속 여자. 선언문을 낭독하는 여자는 물매를 맞았다. 베누스 푸디카. 어디서 유래했는 지 모를 슬픔에도 정결한 자세로 왼쪽 젖가슴을 주름진 옷으로 가린 대리석 여자가 처음도 끝도 없이 솟아나는 물매를 맞고 있었다. 때리는 물줄기에 뺨이 찢어지고 무릎이 꺾였으나 다시 보면 여전히 허리를 세우고 정결한 자세로 서 있는 베누스 푸디카.


시계바늘처럼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철걱철걱 열 두 방향에서 솟아나는 물줄기. 한 대 두 대 백 대 천만억억 대. 눈동자가 파열되고 심장이 깨져도 멈추지 않는 시시각각으로 더 가열되는 공개적인 처형극장.


언제 귀가하려나 기다리다 잠을 잃어버린 불면의 눈꺼풀을. 음식을 탐닉하고픈 혀를. 노래하고 싶은 목구멍을. 장미 대신 흰가시풀을 꽂은 귀를. 갓 도착한 기쁨으로 들어올리려는 환락의 팔을 때리고 때린다.


교양을 더 높이라거나 가정 교육을 잘했어야 했다거나 한밤중에 늦게 돌아다니는 자녀의 단속을 더 잘 했어야 했거나 자신부터 객관화하라는 사회적 주문을 윤리를 다그치며.


159명의 엄마들이 돌아가며 저 분수 가운데에 서서 한때는 한 생명을 양육했던 젖가슴을 부끄러이 가린 채 오지 않는 아들의 구겨진 셔츠를 계속 다림질한다. 사랑하고 미안하다는 수취불능 물의 편지를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쓴다. 출근 시간에 맞춰 사과보다 더 반짝이게 닦은 구두를 빨리 신을 수 있게 현관 방향으로 배치한다.


끝도 없이 솟구치는 물매를 맞으며 실신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눕지도 못하며 그들이 왔던 ‘원천의 장소’를 가리고 밥상을 차리고 꿈에라도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말한다. 그렇게 물매 맞는 마녀가 되고 마녀를 갖춘다. 배치하고 다듬는다.


바보야, 숨어 있는 것들보다 찾아내는 놈들이 더 무서워

마녀를 갖춰야 보통이 완성이 되니까

-홍인혜 ‘소굴’


그곳에서 손이 올라오고 올라온다. 광장의 빙상경기장에서 칠성급호텔에서 옥상파티에서 패션쇼에서 빛의 수영장에서 손들이 뚫고 올라온다. 쭉 도열해 앉아있는 차가운 아스팔트를 뚫고.


우리는 증명하는데 질렸잖아

누락된 괴짜들에게 더 이상 신분은 필요하지 않다

-홍인혜 ‘소굴’


괴짜가 된 여자들이 흉물이 된 엄마들이 베누스 푸디카가 된 엄마들이 분수 가운데에서 물매를 맞는다. 그 여자들의 머리 위로 안젤라는 이름의 마돈나라는 이름의 트위스트라는 이름의 장미들이 만발해 있다.


분수 속 베누스 푸디카를 닮은 분수를 바라보는 분수 바깥 베누스 푸디카들들들. 단체관광을 온 여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머리매무새를 다듬고 화이트 미니 문처럼 얼굴 화장을 뽀얗게 고치고. 그래 그 자세 좋아요. 요리저리 정결한 자세를 ‘한껏’ 갖추고 햇빛 차단제를 발라 제 얼굴을 가늠할 수 없이 ‘누락된’ 얼굴로.


그 여자들을 쳐다보던 나 역시 영락없는 그 누락된 얼굴로 장미정원의 팻말을 본다. 그러다가 나를 누락한 채 어느덧 분수 가운데로 걸어들어간다.


멋진 옷주름으로 왼쪽 젖가슴을 가리고 생명의 수치스런 원천을 숨기고 분수 가운데 선다. 백일이 지나고 이백일이 지나도 계속되는 물줄기는 언제 멈출 것인가 묻지 못한다. 묻지 않는다. 대신 광장의 아스팔트에서 솟아난 손을 덥석 잡고 보통사람마녀가 된다. 이렇게 멀뚱멀뚱 괴짜 개량종 중얼중얼 장미로 피어난다.


남반구 어느 아열대의 나라.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고 크리스마스를 맞는 그 도시. 자녀를 혁명으로 잃었지만. 그곳의 아름다운 어머니들은 집 열쇠를 모아 그걸 녹여 동상을 세웠다지 않아.


이제 우리도 그곳이 설령 고통스런 분수 안이라고 해도 누구든 그곳에 돌아가며 서 있을 수 있잖아. 신분도 증명도 다 필요없어. 질리지도 않아. 한껏 지치지도 않아.


마녀를 갖춰야 보통이 완성이 되니까

-홍인혜 ‘소굴’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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