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그릇은 깨져서 다시 그릇이 된다

by 시인 이문숙

야채칸에서 발견된 이유식용 닭가슴살. 왜 이것은 여기 들어박혔던 걸까. 그게 아까워 고양이에게라도 주겠다고 공원 관리사 눈에 띄지 않게 삼십 년 전 혼수로 해온 그릇에 담아 조릿대 덤불에 숨겨둔다. 그릇은 연초록으로 조릿대와 비슷해 충분한 보호색이 될 거야. 흥얼흥얼 오랫동안 찬장 귀퉁이에 방치되었던 그릇은 신이 났다. 나도 이제 쓸모있는 ‘무용의 무용수’가 되네.


깨진 그릇을 붙이는 수업에 간다. 어서와요, 일본에선 수선한 그릇을 더 아름답고 귀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답니다.

-배수연 ‘원데이 클래스’


냄새는 혼연히 길냥이들의 콧잔등을 간지럽힌다. 홍홍, 고양이들의 꼬리가 높은음자리표로 말린다. 아이구, 요 기막힌 냄새는 뭐냐. 빨리 대놓고 모질지 못한 거지동냥백이들의 보물찾기scavenger hunt 떠나자. 인간들만 음식탐방하냐. 우리도 할 거야.


그런데 웬일인가. 그 그릇을 발견한 최초의 고양이는 독식하겠다고 가시은계목 아래로 그 덩어리를 옮겨 숨겨둔다. 여긴 내 영역이지. 이 음식들의 위리안치. 좋아, 탱자가시 대신 가시은계목. 너희들은 독서는 유배자들의 음식이고 독식은 위정자들의 독 묻은 은수저이며 유기 그릇이라는 걸 알고 있나. 이건 오로지 내 소유야.


며칠째 그릇만이 오도마니 조릿대 몇 잎을 우키요에처럼 담고 있다. 며칠째 그곳에서. 오렌지 빛 태비 고양이 한 마리가 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낑낑대며 그릇을 굴리고 있다. 바닥에 남은 찌꺼기라도 핥아보려는 듯.


그렇다. 검은 얼룩이 입 주변을 두르고 있는 고양이를 대화로부터 오는 캣맘은 깡패라고 부른다. 마두에서 온다는 캣맘은 장수라고 부른다. 그들은 깡패에게 먹이를 뺏기고 겁먹은 눈을 뜨고 있는 오렌지 빛 고양이를 소심이라 부른다.


쟤는 어쩜 꼭 나를 닮았어. 추릅추릅 빨간 열매가 소심이 위에 떠서 소심이가 그 아래를 돌 때마다 뱅그르 돈다. 이상한 현기가 형형한 빛으로 그 주위를 감싼다


쟤는 뭔데 겨우내 저렇게 매달려 떨어지지도 않아. 저게 떨어지기 시작하면 동장군은 물러간 거야. 갑자기 노란 꽃들이 뭉텅뭉텅해서 보면 빨간 열매는 실종자들의 10년 20년 뒤 얼굴처럼 쪼글쪼글해져 바닥에 있더라구. 사라지지 못하는 그때의 불행한 얼굴들.


선생님 이 수업이 듣고 싶어 일부러 그릇을 깼어요. 너무 박살이 났지만.

-배수연 ‘원데이 클래스’


고양이 깡패가 은닉한 살 조각들이 부패하는 냄새가 덤불의 강박증을 키운다. 그릇이 조릿대 덤불 밖에서 빨간 열매 몇 개를 담고 나동그라져 있다. 이가 빠지고 부서져 가고 있다. 저거 혼수로 해온 귀하고 소중한 건데.


그 소심이가 얼굴을 빼다 굴린 그릇이 화단석에 부딪쳐 산산조각 부서졌다. 저걸 다시 들고 가 조각을 다시 맞추고 긴츠키라는 걸 해야 하나.


그릇에 대한 거라면 단연코 키리쿠키리쿠이다. 기억의 저자 거리에는 아기 장수 키리쿠가 소꼽용 그릇들을 이고 지고 온다.


검은 소의 등을 빌려온 그릇봇짐이 결국 날뛰는 소의 장광설에 다 깨지고 엎어지는 광경. 검은 소는 마녀 카리바의 변신이다. 아기장수 키리쿠만 검은 소에게 눈꼽쟁이 작은 그릇들을 맡기지 않아 다시 시장은 활기로 돌아간다. 제 작은 등에 혼연히 지고 간 것들만 살아남는다. 힘들더라도 낯 모르는 호의의 검은 소에 맡기지 않아야 그릇은 박살나지 않고 그릇이 된다.


이곳 오마초등학교 이름에 붙어있는 오마, 다섯 마리 말에도 아기 장수 키리쿠와 같은 아기 장수 신화가 있다.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아기 장수. 시렁 위에 팔랑 날아오르고 소꼽그릇에 밥을 먹는 아기. 장래 역적이 될 거라는 예언에 아기 장수는 돌 아래 콩 닷섬과 팥 닷섬과 같이 묻힌다. 관군이 아기장수를 잡으러 왔다가 아기 장수 무덤에 가보니 콩은 말이 되고 팥은 군사가 되어 일어난다. 아기장수는 관군에게 들켜 다시 죽지만, 아기장수를 태울 말이 나와서 주인을 찾아 울며 헤맨다.


아기 장수 키리쿠는 마녀를 무찌르고 그릇을 만들어 마을을 살리지만, 이곳 오마의 아기 장수는 실패한 영웅담이다. 다섯 마리 말만 이 겨울 핏빛 저녁을 날고 있다. 다섯 알갱이 콩만 다섯 마리 말이 되어 히얼히엉 살아남아서. 위정자의 밥 그릇에 은수저처럼 변색이 된 채.


사람들은 그 탐식하는 고양이를 누구는 깡패라고 부르고 누구는 장수라고도 부른다. 나는 입 부근이 유난히 까매 연탄이라 부르지만, 초등학교 여학생들은 또 점순이라고 부른다. 쟤 남잔데, 왜 점순이냐. 할머니 캣할망이 묻는다.


저희는 잘 몰라요. 그냥 까만 점이 있어서 점순이라고 불러요. 꼭 남자라고 점순이라고 못 부를 이유도 없지요. 우리 음악 선생님도 남자 아재인데 이름은 호순인데요, 좋을 호, 순할 순. 평상시에는 깡패인데, 노래를 부를 땐 정말 착한 표정이예요.


깨진 그릇을 들고 집에 들어온다. 검은 어스름은 충분히 옻이 될 수 있다. 덤불을 두르고 있던 진뜩한 거미줄 점액은 아교풀이 될 수 있다. 조릿대 덤불이 꿰고 있는 지는 햇빛의 황금 방울은 충분히 금분이 될 수 있다.


나는 윈데이 클래스에 가지 않아도 그 박살난 그릇을 찬찬히 아주 꼼꼼씨로 아름다운 삼십 년 전 그 고귀하고 품위에 찬 그릇으로 복원했다. 다시 찬장에 올려두는 대신 화단에 묻었다. 상처에 금가루 바른 은은한 긴츠키로 완성된 마음 속 오롯한 그릇. 화단 가시은계목 아래 묻어두었다. 빙하 장례식만큼이나 특별한 그릇 장례식.


훗어느날, 미스킴 라일락 뿌리를 심기 위해 땅을 파던 시인은 그 조각들을 발견하곤 시를 쓰리라. 그걸 낭독회에 들고 가 보자기를 씌워놓고 이 속에 뭐가 들었을까요. 독자들에게 어떤 고정관념에도 염색되지 않은 높고 가난한 거지동냥백이 보물찾기 게임을 하리라.


어느 낭독회다.

연초록빛 대나무가 그려진 그릇 파편이 보자기에 덮여 있다.


보자기 아래 뭐가 있을까요

한 번 말해보시겠어요


그들 중 아무도 맞추지 못했다.

갸웃하고 망송망송했다.

보자기를 여니


독자들 깨끗한 동공 앞에 수정체 뒤에 맺혀 있다.

연두이거나 초록에 가까울 산산조각.


빨간 열매가 바닥에 드디어 떨어지고 노란 금 분말같은 산수유들이 오고 있는 초봄. 가시은계목에 둘러싼 어느 허름한 목조건물, 조릿대가 소삭거리며 초록 불꽃을 밀어오리는 봄의 낭독회. 다섯 마리 말들이 휘영청 날고 있는.


*Kintsugi 긴츠키, 금선金選:파손된 도기를 생옻으로 복원하고 금가루로 장식하는 기법을 말한다.

*서명진, 팽주잔 4x3cm 생옻, 자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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