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을
관계로 다루기로 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다.
이걸 놓으면
아이에게 부족해지는 건 아닐까.
지금 멈추면
다시 따라가기 어려워지는 건 아닐까.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나는 많은 선택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영어 수업도 그랬고,
이미 시작한 활동들도 그랬다.
아이가 좋아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선택들은
자연스럽게 계속되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도, 체력도,
그리고 마음의 여유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아이를 위해 붙잡고 있다고 믿었던 선택들이
정작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었다.
그제야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 선택은
아이를 위한 걸까.
아니면
놓지 못하는
나를 위한 걸까.
모든 걸
한 번에 정리하지는 않았다.
다만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수업을 줄이고,
일정을 비우고,
해야 할 것보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남겼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의 호기심이
갑자기 사라지지도 않았고,
관계가 멀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리듬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붙잡고 있던 선택들 중
일부는
이미 역할을 다했다는 걸.
내려놓는 선택이
항상 포기가 아니라는 걸.
이 글은
『단단한 워킹맘의 소신육아
–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기준을 만드는 기록』
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