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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Apr 04. 2019

아침을 기다리는 응급실

한번이라도 새벽에 응급실에 와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는걸. 남는 침대가 없어 서서 기다리는 수십명의 환자와 보호자들. 4~5명이 안되는 의사들. 피곤에 지친 간호사들. 비명소리와 긴장감. 119응급차의 사이렌 소리.


새내기 의사였던 인턴시절, 응급실 근무는 무척 긴장되고 불안했고, 배고팠습니다. 짜장면을 시키면 불어터지고, 햄버거를 사두면 딱딱해지는 탓에, 버리고 다시 사길 몇번이나 했던지요.

“선생님, 우리가 먼저 왔는데 왜 계속 기다려요?”

“결과는 언제 나와요? 괜찮은거죠?”

“내가 누군지 알아? 높은 사람 불러, 병원장 나와!”

모두가 예민하고,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두렵습니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이 오갈리 없었지요.


“인턴 선생님, 13번 ooo환자분 동맥혈검사좀요.”

“7번 할아버지 MRI 검사실로 모시고 가주세요.” “소아과 레지던트샘이 당직실로 오시래요.”

아직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경험도 부족한데 제 설명만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벌써 한가득입니다. 선배 의사들은 다릅니다. 설명도 척척, 검사, 치료를 동시에 다해내면서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맥박이 멈추고 비상 알람이 삐삐삐 울려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들은 묵묵하게, 차분하게 아침을 향합니다.


4시반, 선배 한분이 제 어꺠를 툭 치며 커피를 권합니다.

“힘들지?”

겁나지 않느냐고, 환자의 생사가 내 손에 달린 무게가 버겁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선배는 그저 씨익 웃습니다.

“일이니까.”

응급의학과를 지원해볼까 하는 질문에 선배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야야 넌 못해, 내가 일주일에 몇 번 멱살잡히고 욕먹고, 경찰오고,,,,”


1년 내내 오분 대기조로 병원 근처에서 살면서 와이프랑 여행 한번 편하게 가본적이 없다는 선배의 얼굴은 피곤함으로 가득했습니다. 학생때는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가려던 선배였습니다. 돈도 많이 못버는데, 알아주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그래도 보람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선배는 또 씨익 웃습니다.

잠도 못자면서, 정작 자기 가족들은 못 챙기면서, 칭찬보다 욕먹는게 일상이면서. 왜 응급실 근무를 하는 걸까요.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환자의 생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3분.

어떤 사람에겐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실 짧은 시간동안, 그들은 뇌출혈 환자를 살리고 심정지 환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울면서 고마워하는 보호자들의 인사를 받을새도 없이 선배의 시선은 다음 환자로 향합니다.

폐렴 때문에 숨을 못쉬는 할아버지, 장난감을 삼켜서 기도가 막힌 꼬마, 술에 취해 응급실을 한바탕 뒤집어 놓은 40대 아저씨. 전쟁 같은 12시간이 지나고, 대기실에 그 많던 사람들과 소리가 좀 잠잠해졌다 싶어 시계를 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군데군데 피가 묻은 와이셔츠와 가운, 며칠동안 감지못해 떡지고, 30대 후반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희끗희끗한 머리.10년 넘게 응급실에서 일하며 선배가 겪었을 숱한 좌절과 괴로움, 그의 손을 거쳐간 삶과 얼굴들을 떠올려봅니다.


무던한 미소속에 스며든 고독과 외로움, 동시에 그가 짊어진 생명의 무게를 가늠해봅니다.

죽음과 고통을 대하는 방식이 원망과 분노가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슬픔을 갈무리하는 의연함과 배려심을 가르쳐준 선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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