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심정을 두고,
흔히들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고 표현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얼음과 불이 마음의 도가니를 드나든다
그런데, 사실 그 마음이라는 것의 주체는 부모라서
철없고 재미있게 노는 아이는 그대로인데
부모 스스로의 마음만 오락가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때, 부모라는 의무감에 들씌워져 있을 때에는
아이들이 실수하거나 잘못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강렬하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녀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인식의 범위가 넓어지고 성장함에 따라
그 말랑말랑하였던 어린 새싹이
점점 단단하게 강성을 갖추어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의 말을 튕겨내기 시작하여고,
자기 스스로 두꺼운 유리막을 입혀가는 것을 느꼈다.
저러다가 부러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면,
두꺼운 피막과 표피는 이해와 관용이라는 양분 때문에
깨질 것 같은 유리막이 아닌,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내구성을 갖춘 보호막처럼 생성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가죽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결국 아이들은 듣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다 듣고 있었고,
튕겨내는 것 같으면서도 다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제재와 관용은 마치 함정과 같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다.
유리는 가죽보다 단단하지만 결고 강하지 않다.
가죽은 유리보다 무르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
이해와 관용을 잘 활용하면,
그 무엇인들 못 만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