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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n 01. 2024

지구별 여행자 / 류시화 / 2002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난데없이 도착해서 의도하지 않은 생을 받아들이고 살아내야 한다.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최대 100년이다. 지구의 승객들은 서로서로 지구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앉아서 인생의 짐을 풀고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희로애락을 공유하면서 살아간다. 짧은 시간을 최대한 가득하게 보내기 위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것이다.


이 없이 태어나서 이가 다 빠지면 죽는다. 그 사이에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빨만 마주치다가 갈 뿐이다


한국이라는 지역에 떨어진 한 여행자는 어려서부터 병약했다. 사람들로부터 관심도 받지 못했고, 거칠고 황량한 이 여행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부단히 애써야 했다. 병을 달고 사는 삶은 활발한 육체의 활동을 제약했으며,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생각과 고뇌의 내향성이 떠맡겨진다. 그는 자신에게 달갑지 않은 외부세계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관찰하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을 하고 내적인 성찰을 다져갔다. 인문학과 시작(詩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쌓인 연륜과 사색의 본질을 다져가면서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한 안목을 키워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문득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 대해서 답답함을 느꼈다. 친절하지 않은 그 상황에 대한 염증과 압력에 대한 부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는 여행지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른 언어와 관습을 지키며 살아가는 여행자들과 대화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가방을 싼다. 짐을 꾸리고 떠났다. 다른 여행지로. 그리고 깨닫는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상과 꿈을 좇으며 살아가고 자신만의 신을 섬기면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을. 그렇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구라는 행성에 머무르면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행복하고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었다. 깨달음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는 것을.


나는 누구인가? 내가 아닌 것을 하나씩 전부 부정해서 나갔을 때, 최후에 남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나 자신이다.


류시화는 발로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가 지니고 있었던 병약함과 그로 인한 부동의 소극성은, 방 안에 앉아서 고요한 시를 쓰는 사람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보다 활발한 세상과 격동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탐구열을 부추겼으며, 결국 이 광활하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지구별을 돌아다니면서 보다 거시적인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리 인간이 승객으로서 짊어지고 있는 고통과 번뇌, 고단함과 귀찮음 같은 것들을 관조하고 어루만지면서 위로하고 공감하는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그리하여 그의 글에서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마치 하나의 놀이 같은 여행지에서의 행위처럼 진지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불쌍하면서도 우러러 보이는 특징을 갖는다.


행복의 비밀은 당신이 무엇을 잃었는가가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를 기억하는 데 있다


인도에서의 명상을 주제로 한 이 여행기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색을 다룬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도인들의 소박하면서도 개인적이고, 또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일상은 연민을 자아내면서도 웃음과 공감을 저절로 불러일으킨다. 악어마저도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는 인도인의 가난하고 처절한 삶과 그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개개인들의 다양한 행복은, 각박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인생을 살면서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일깨워주고 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오 가진 게 많지 않을 뿐. 반면에 당신들은 가진 게 많을 뿐 행복한 사람들은 아니잖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무엇을 이루었을 때 후회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자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행성에 머무를 시간은 유한하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기차는 다시 떠날 테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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