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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책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

by 슈퍼엄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만화, 소설, 잡지 가리지 않고 읽었다.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에도 도서부, 독서동아리에서 줄곧 활동했고 대학도 국문과를 졸업해서 현재 국어교사를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반전 없는 인생이다.

그렇다 보니 책을 읽는 것이 내겐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이며 특별히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힘든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남들도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책을 좋아할 수 있으며 잘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이 얼마나 오만이고 편견이었는지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발령받은 학교는 독서 중점 시범학교로 매주 1시간의 독서시간이 의무적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시간표를 받아 들고 '와~ 이렇게 좋은 학교가 있어?!'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머릿속에는 내가 학창 시절 재밌게 읽었던 책의 제목들이 스쳐 지나갔고 아이들과 어떤 책부터 함께 읽을까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에게 함께 책을 읽자고 하였을 때 분위기는 적막하다 못해 약간 험악해지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나를 방해꾼 취급했다. 자신들의 황금 같은 자유시간을 침해하는 방해꾼. 그제야 알았다. 아이들에게 그 시간은 이름만 독서시간 일 뿐 학원 숙제나 개인적인 일을 하거나,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었다. 한 번은 책을 읽자고 엎드려 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웠는데 그 아이는 입으로 욕만 안 했을 뿐이지 눈빛과 표정으로 내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였다.

"왜 읽어야 하는데요?" 교실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그야.. 독서시간이니까..."

"다른 선생님들도 다 책 읽거나 자습하거나 그러라고 해요"

"그래도.. 독서시간은 독서를 해야.."

"아씨~ 그니깐 왜 해야 하냐고요?"

심장은 쿵쾅거렸지만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침착한 척했다. 그 순간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던 것 같다. 아무튼 독서시간에는 책을 읽을 것이라고 못 박아두고 그 시간을 황급히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이들의 표정과 눈빛들이 계속 떠올랐다.

'책을 왜 읽어야 하지?'

'나는 왜 책을 좋아하게 되었지? '

우리 부모님이 교육에 관심이 많아 내게 일찌감치 독서교육을 시키거나 책을 많이 읽히신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책을 사는 대신 도서관에서 빌려오거나 친구들에게도 빌려보는 일이 흔해다.


어떤 일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일이 내게 주는 이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과 나의 차이는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책이 주는 이로움을 경험해 봤고 아이들은 아직 못해본 것, 그렇다면 그런 경험을 한다면 누구라도 책을 좋아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음날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읽은 책이 뭐가 있는지 물어봤다. 보통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제대로 읽어본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아이일수록 재밌게 읽은 책이 차고 넘쳤다. 마치 한 권도 안 읽어본 학생은 있어도 한 권만 읽어본 학생은 없다는 듯이. 아이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확신했다.


책을 왜 읽는 지를 알기 위해서는 직접 읽어봐야 한다는 것, 독서시간에는 그러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의욕만 앞선 나머지 도서관에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가서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골라오라고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30분이 지나도록 책을 고르지 못해 책장 앞에 서성이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자신의 수준에도 맞지 않는 너무 어려운 책을 골라 몇 번 들춰보다 이내 다른 책으로 바꾸러 가기를 수시로 반복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나는 아이들이 책을 고르는 것을 어려워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읽고 싶은 책이 차고 넘쳤고 무엇을 먼저 읽을지 고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막상 책을 읽으려고 해도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부터가 고민이 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그것부터 알려줘야 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갈 길은 멀어 보였지만 한 걸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독서시간을 만들기 위한 나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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