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엄마 Jan 05. 2024

책과의 꿀조합

소설 <칩입자들>의 주인공은 집도 절도 없이 컨테이너박스에 살면서 택배배달을 하는 알코올 중독자이다. 택배배달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컨테이너박스에서 술을 마시며(특히 조니워커) 책을 읽는다. 책과 술의 조합이라니...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이 보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이 책과 어울리는 술을 골라가며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그 느낌이 어떨지 매우 궁금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리 술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책을 읽자고 술을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해서 독서를 더욱 즐기기 위한 나만의 꿀조합을 찾아보기로 했다. 책 읽는 기분을 업시켜 주면서 책에 집중할 수도 있고 즐겨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대학시절 10평도 안 되는 원룸에서 자취를 할 때에도 반신욕조를 들일 정도로 반신욕을 좋아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욕조에 들어가는 순간 그날의 피로가 싹 녹아내리는 듯하다. 비록 다리도 다 못 펴고 웅크린 채 앉아있어도 몸은 날아갈 듯 가볍고 편안하기만 했다. 

반신욕을 하면서 독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욕조 덮개를 사고 그 위에 팔을 걸쳐놓고 책을 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책이 젖을까 수건도 깔아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껴두었던 입욕제도 풀었다. 라벤더 향에 거품까지 풍성하다. 발이 물에 닿자마자 벌써 행복감이 밀려온다. 난 추위도 많이 타고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이라 넉넉히 30분 이상은 앉아있어야 이마에 겨우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한다. 그때까지 책을 읽는다. 몸이 노곤노곤 해지면서 기분이 살짝 업되는데, 술 마시며 독서할 때도 이런 기분일까? 술에 취한 듯 책에 취하는 기분이다. 그러면서도 집중은 꽤 잘된다. 시간이 순식간이 지나가버린다.


반신욕을 마치고 나와서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는다. 마사지기를 어깨에 두르고 반쯤 누은 자세로 읽던 책을 마저 읽는다. 그러다 잠이 오면 그대로 스르륵 눈을 감기도 한다. 이쯤에서 시조 한 구절이 각난다.


-아희야 무릉이 어듸오 나는 옌가(여긴가)하노라.


다음에는 반신욕하고 나와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이미 좋아하고 있는 것을 더욱 재밌게 즐기기 위한 방법을 찾는 동안 삶이 조금 더 재밌어졌다.


이전 09화 2023 독서 결산 시상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