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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바닐라라떼 Oct 24. 2021

가을이 없어져 서글프다면 알배추 전골 어떠세요?

오늘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0도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10월 중순을 기준으로 64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가 찾아오겠습니다.


며칠 전, 아침 라디오에서는 때 이른 한파 소식을 전했다. 저번 주엔 분명 반팔을 입었는데, 오늘은 패딩을 꺼내 입었다.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린 트렌치코트는 옷장 속에서 나와보지도 못하고 다시 꼬박 1년을 기다리게 생겼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통째로 빼앗겼다. 뜨거운 태양 아래 땀 흘리며 보냈던 여름에 대한 보상으로 선선해진 가을바람을 기대했었는데, 눈치 없이 빨리 찾아온 한파 때문에 옷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그러다 문득, 가을을 놓친 건 갑자기 찾아온 추위 때문이 아니라 여유 없이 살았던 나 때문 아닐까 생각했다.


가을을 잃어버렸다


평일 출근길, 습관처럼 귀에 이어폰을 꼽고 스마트폰에 눈을 가두며 걷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회사에서는 창 밖 풍경은커녕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 그런 하루 끝에 해가 지고 나서야 퇴근을 했으니 가을 하늘이 파랗고 높아졌다 한들 보지도 못하고, 나뭇잎의 색이 변했다 한들 알아채지 못한 게 어쩌면 당연하다.


 주말에도 여유는 없었다. 근래 한 달간 주말엔 밀린 일 때문에 회사에 출근하거나, 가족 행사를 위해 고향에 다녀오거나, 친구들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나면 눈 깜짝할 새 일요일 저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주말은 소중했지만 몸과 마음은 이상하게 지쳐갔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없었다.


원룸 창 밖으로 보이는 감나무

내가 사는 곳은 서울의 한 복판, 그중에서도 빌라들이 밀집해있는 골목이다. 이곳에서는 단 한 평의 공간도 허투루 쓰이지 않기에 흙 위에 심어진 나무 한그루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방에서는 창 밖으로 감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출근 준비를 하며 옷을 고르다가 창 밖 감나무를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 계절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가을을 놓쳐버린 것이 속상했었는데, 예쁘게 익어가는 감을 보니 그제야 완벽한 가을이었다.


오늘은 가을을 제대로 즐겨보리라 마음먹었다. 출근하는 길 스마트폰은 가방에 넣고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렀다. "가을엔 뭐가 제철이에요?" 묻는 내 말에 야채가게 아주머니는 가을이 되면 땅에 사는 뿌리채소들이 달고 맛있어진다고 하셨다. 겨울을 나기 위해 땅 속의 영양소들을 머금기 때문이라고. 영양소로 꽉 채워졌을 알배추 한 통을 사기로 했다.


알배추로 어떤 음식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추워진 날씨에 따뜻한 전골 생각이 자연스레 났다. 이름하여 "알배추 전골" 오래전 티브이에서 우연히 보게 된 레시피인데 갑자기 추워진 요즘 같은 날씨에 딱이다.


나를 귀하게 만들어 주는 한 그릇


<알배추 전골> 만드는 


준비물 : 알배추, 돼지고기 뒷다리살(얇게), 표고버섯, 부추, 국간장, 소금 후추 참기름 약간


1) 표고버섯을 얇게  썰고,  표고버섯에 참기름, 간장, 소금 후추 등을 넣고  간을 해주세요.

2) 돼지고기에도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해주세요.

3) 끓는 물에 알배추를  장씩 살짝 데쳐주세요.

4) 데친 알배추 위에 돼지고기와, 양념된 표고버섯을 올려 말아줍니다.

5) 말아  배추롤이 터지지 않게 데친 부추로  묶어주세요.

6) 끓는 물에 배추롤을 넣고, 국간장 1스푼과 함께 고기가 익을 때까지 끓여주면 !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은 참 소중하다. 표고버섯을 썰기 전에 향긋한 버섯의 향기를 맡고, 속이 꽉 찬 알배추를 만지며 가을이 왔음을 새삼 느끼는 그 과정이 좋다. 데친 배춧잎 위로 돼지고기와 양념된 표고버섯을 올리고 정성 들여 말고, 부추로 매듭을 짓는 그 번거로움이 좋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접할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게 된다. 나를 위한 음식은 나를 귀하게 만들어준다.


배추는 향긋하고 달달했다. 알배추를 데친 물을 그대로 육수로 사용했더니 국간장 한 스푼만 넣은 국물에서 깊은 맛이 났다. 육수를 그대로 품고 있는 배추를 한입 베어 물면 따뜻한 육수가 입 안 가득 퍼진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움츠렸던 몸이 펴지는 기분이다.


사실 이 음식에서 치트키는 간장 양념이 벤 표고버섯이다. 배추를 베어 먹다 보면 중간쯤 감칠맛이 나는 통통한 표고버섯이 씹히는데 그 오독한 식감과 향긋함이 음식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양이 부족할까 싶어 칼국수 사리를 준비했는데, 돼지고기까지 들어가서 그런지 알배추 전골만으로도 허한 속이 꽉 채워졌다.


가을을 놓쳐버렸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드는 날 알배추 전골을 추천하고 싶다. 향긋한 표고버섯과 달달한 알배추로 만든 뜨끈한 전골로 완벽한 가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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