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말없이 스며드는 밤

책장 깊숙이 묻혀 편지의 질감이 너인 것 같아.

by 은빛루하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이 책꽂이로 옮겨졌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몸을 일으켜,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 사이에서 그 책을 꺼냈다.

낡은 책 냄새,
누렇게 바랜 종이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책 사이에서 툭 하고 떨어진 편지.

아…

그 친구의 편지였다.

반듯한 원고지 위에 가지런한 글씨.


“나는 네 편지를 기다리는 게 참 좋아.
사월에 부는 바람처럼 싱그러운 향이 마음으로 오는
기분이야.
그러니 귀찮을 거라는 괜한 걱정은 말고. :)”


미소가 맑았던, 내 안의 그가 떠올랐다.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웃던 모습.

우연히 알게 된 주소로 보낸 편지.

그와 닮은 정갈한 손글씨 안에는 나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그의 목소리,
고지서들 사이에 섞여 있던 하얀 편지봉투의 설렘.
4월의 어느 봄밤,
밤새 걸었던 광화문 거리,
잡고 싶었던 그의 하얀 손.


그와 나는 정말 사랑을 했었던가?


편지를 들고 그리워하는 사이,


그리움이 와락—
말.없.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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