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등지고

떠나기 전 마지막 걸음

by 은빛루하


기다림은 지루하고,

헤어짐은 외로웠다.

마음에 남은 감정을 비우기 위해,

나는 오늘도 걷는다.

그렇게 걸어 도착한 마포대교 위,

비로소 나는 내 마음을 내려놓았다.


나는 걷는 걸 무척 좋아한다.

이름 모를 풀들이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작은 오솔길,

오랜 세월의 흔적이 담긴 담벼락과

아기자기 예쁜 소품샵이나 음식점이 즐비한 길

그리고 노을이 깔리는 늘 다니는 집으로 가는 길까지도—


나는 걷는 모든 길을 좋아한다.

하지만 무작정 걷고 싶을 때는

특별한 장소를 정하지 않는다.

그냥 집을 나서, 거리를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마음속에 늘 따라다니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흐려졌고

다시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걷는 동안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흘러갔지만

눈앞의 풍경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이대로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만

오래도록 머물렀다.

한참을 걷다 보니

나는 어느새 여의도를 지나

마포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강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마구 뒤흔들었고,

세찬 바람에

툭 걸치고 나온 남방을 다시 여미게 했다.

바람이 거칠게 얼굴을 때리는 순간,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

목적 없이 걷는 길은 종종 지루하지만,

오늘 이 걸음만큼은

감정을 타고 멀리 떠내려갔다.

결국 돌아선 발걸음은

되돌아가기 어렵다.

마포대교를 건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카드 하나는 챙겼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돌이키지 말자.

이만큼 왔으니,

이제 나도 떠나야겠다.

마음 한편에 남은 감정은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흐려질 것이다.

마포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지는 노을은 사라지고

어둑한 밤하늘과 가로등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길을 밝히는 불빛처럼,

내 마음에도 하나쯤 켜두기를 바라며


오늘의 걷는 여행을, 여기서 마치기로 했다.


은빛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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