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mouse Jul 08. 2019

뉴욕의 특별한 여름 밤, 독립 기념일

브루클린 브리지에서 불꽃놀이

일 년의 절반이 지나는 7월 초가 되면 미국은 긴 연휴가 시작됩니다. 바로 4th of July라고 불리는 독립기념일이죠. 올해는 목요일, 금요일이 연휴라 주말까지 붙이면 나흘간 쉴 수 있습니다. 예전에 회사 다녔을 때라면 마냥 신나서 뭐하면서 놀까 계획을 세웠겠지만 지금은 이런 긴 연휴는 비상 상황입니다. 바로 아이의 학교도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뭘 할지 미리미리 계획을 짜는 게 큰 숙제랍니다.

 

원래는 8월 초쯤 태교 여행 차 조지아주의 바닷가 근처 리조트로 긴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어요. 하지만 남편이 휴가를 내지 못하는 바람에 취소가 되고 말았지요. 그래서 저희 가족은 긴 여행은 못 가는 대신 연휴 주말을 껴서 짧은 여행을 다니기로 했습니다. 남편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뉴욕에 가서 독립기념일 기념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건 어때? 아주 멋질 거야.” 독립기념일에 뉴욕에 가서 불꽃놀이라고요? 아, 이건 마치 12월 31일 자정에 임산부가 아이를 안고 사방이 길 막혀있는 종로에 나가 엄청난 인파를 뚫고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듣는 것, 아마 그것보다 열 배쯤은 더 힘든 일일 텐데요. 사실 전 그런 고행길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고집쟁이 우리 남편의 고집을 누가 꺾겠어요? 그렇게 우린 짧은 주말 뉴욕 여행을 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뉴욕에 도착한 날이 독립기념일이었어요. 아침 일찍 도착했는데도 이미 뉴욕의 모든 경찰들이 불꽃놀이가 열리는 이스트 빌리지 강변에 다 모인 것 같았지요. 그렇게 많은 경찰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정말 처음 봤죠. 길이 모두 막힐 것을 대비해서 호텔도 강변까지 걸어서 5분 안에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잡았습니다. Glid Hall이라는 하얏트 호텔 계열의 작은 부띠끄 호텔이었는데 생각보다 꽤 괜찮았아요. 사실 이런 날은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가는 게 최선의 선택이지요.



이 날은 뉴욕에 햇살이 무척 강해 아이스크림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였어요.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 일찌감치 호텔로 돌아와 저녁에 있을 불꽃놀이를 위해 식구들 모두 낮잠을 청했습니다.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나 저녁이 되어 호텔 문을 나섰는데 어느새 동네가 구경 나온 인파들로 북적북적 차고 있었어요. 브루클린 브리지가 잘 보인다는 Seaport district로 나갔는데 이미 몇몇 곳들은 미리 티켓을 산 사람들만 들여보내 주고 더 이상 입장을 시켜주지 않고 경찰들이 막고 있었죠. 그렇게 인파에 떠밀려 그나마 불꽃놀이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헤매다 저희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습니다.



‘팡팡’ 하늘을 가로지르는 소리와 함께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자리 잡은 곳은 브루클린 브리지의 일부만 보이는 곳이었는데도 꽤나 화려한 불꽃놀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걸 가장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집에 앉아 TV로 보는 것이에요. 총 3개의 다리에서 전체적으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봐야 이 규모를 한눈에 다 볼 수 있는 거지요. 그래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한 여름밤 축제 분위기 속에서 같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불꽃놀이 구경을 하는 건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어요. 물론 내년부터는 집에서 TV로 보는 걸로 남편의 약속을 받아냈지요.



불꽃놀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물었습니다. “언제까지 Macy’s가 이 뉴욕 불꽃놀이를 후원할 수 있을까?” 이 행사도 그렇고 뉴욕의 또 다른 유명한 추수 감사절 거리 퍼레이드도 그렇고 Macy’s 백화점이 후원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 Macy’s 백화점은 예전의 가장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유통업체로서의 명성은 진작에 빛이 바래 버렸고, 이제는 온라인에 밀려, 다른 경쟁사들에 밀려 바람 빠지고 있는 풍선처럼 오늘내일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고요. “아마도 Macy’s가 이 행사 후원을 접는 날은 사업 자체를 접는 날이 될 것 같아. 그리고 아마 다른 온라인 기업들이 새로운 후원자가 되겠지. 아마도 아마존? 혹은 우버?” 남편도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마도 지금의 이 불꽃놀이가 아닌, 사람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기술력의 미디어 아트나 레이저 쇼 같은 게 아닐까 상상을 해봤습니다.


정말 Macy’s 이름을 달고 하는 이 뉴욕 전통 적인 불꽃놀이 행사가 몇 번 더 열리게 될까요? 어쩌면 손에 꼽힐 만큼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참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고, 모든 건 영원한 게 없구나 싶었습니다. 언젠가 후원사가 변하더라도 이 아날로그적인 행사가 오랫동안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뉴욕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촌스럽게 수많은 인파를 뚫고 아이들을 목마 태워 강변으로 구경 나오는 이 여름밤의 추억을 위해 말입니다.


이전 08화 뉴잉글랜드 애머스트 가을 나들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