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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May 01. 2020

아빠표 육아

컨설팅 회사에서 배운 동기 부여 방법이 육아에도 통할까?

“엄마랑 놀고 싶어!” 우리 집 큰딸이 늘 하는 말이다. 잠자기 전 책을 읽어주려고 해도, 목욕을 시키려 해도, 심지어 같이 TV를 보려고 해도, 딸에겐 지난 5년간 몇 배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온 엄마가 더 편하게 다가오나 보다. 재택근무로 딸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나는 와이프와의 딸아이 ‘사랑 경쟁’에서 여전히 후발주자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도 좋아하는 아빠만의 육아표를 만들 수 있을까? "아빠랑 놀아주면 TV 틀어줄게" 정도의 간단한 인센티브로 아이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나의 초보 팀장 고군분투기' 글에서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노력을 소개했었는데, 이번 글에선 딸의 흥미를 돋기 위해 사용한 비슷한 노력들을 소개해본다.

 

Sawyer Effect(톰 소여 효과)는 인센티브를 잘못 사용했을 시 장기적인 동기/흥미를 잃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의 사랑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1. 아이만의 공간 ‘비밀 아지트'

나의 팀원들과 5살 딸아이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신입사원이 업무상 실수를 하더라도 교훈으로 배우되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을 갈망하듯, 5살 딸에겐 자신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그려내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서류에 낙서할 때마다 꾸짖는 것보다는 딸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동생이 태어난 후 아빠와 함께 장식한 첫 ‘비밀 아지트’는 아기 침대 아래 작은 공간이었다. 크리스마스 라이트로 불을 밝힌 이 공간에, 딸은 폭신한 매트리스, 각종 스티커와 인형, 크레파스, 스캐치북 등 자신만의 물건들을 갖다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입사원이 성장하며 영역과 공간을 확대하듯, 딸은 빠른 속도로 창작 공간을 확장해나갔다. 자신의 침실은 물론, 식탁 아래 공간에 엄마 아빠는 출입할 수 없는 미술작품 전시공간을 만들고, 소파와 카드보드 박스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집’을 만들어갔다.


딸과 함께 만든 첫 ‘비밀 아지트’


집안 전체가 ‘아이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딸에게 다시 침대 아래 자신만의 ‘비밀 아지트’로 들어가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성장하는 아이와 함께 재택근무를 하며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다.


2. 아빠 직업 체험기

"아빠 일해?" 집이라는 같은 공간에 함께 있더라도, 아빠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시간엔 함께 놀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아이도 잘 알고 있다. 출근/출장이 있었을 당시엔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놀 수 있었는데, 재택근무 시행 후에는 아이에게 '컴퓨터 = 일'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5살 아이와 함께 일을 공유할 수 있을까? 나는 일찌감치 아이에게 어려운 '콘텐츠'를 설명하는 것은 포기를 했다. 대신, 조금이라도 아빠가 하는 일에 아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들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뭐... 도구라고 해봐야 컴퓨터, 그래프, 표 등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윤서야, 미로 게임하지 않을래?" 퍼즐, 미로, 숨은 찾기 등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물어봤다. 단, 이번 미로 게임은 아빠가 직접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아이가 싫어하는 컴퓨터 속에 숨어있다는 것. 이렇게 컴퓨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 후에는 아이에게 직접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나아가 아이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숫자를 활용하여 표를 직접 만들어 보는 등 아빠의 업무 '도구'들을 조금씩 체험해볼 수 있게 했다.


아빠의 업무 '도구'들. 직업 체험 맞나요?


아이는 여전히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와이프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영 컨설턴트의 업무 특성상,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아이의 기억 속엔 아빠가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는 순간도, 아이 자신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않을까?


3. 아빠만의 프로그램

경영 컨설팅사에서 개인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는 '나만의 강점 / 나만의 프로그램'이 있냐는 것이다.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는 데 있어 수많은 사람들 중, 굳이 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나만이 갖고 있는 경험, 강점, '프로그램'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선 약점을 보강하는 것보다 '강점을 더 강하게 개발(build on strengths)'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아빠만의 강점 / 아빠만의 프로그램'이 와이프와의 딸아이 '사랑 경쟁'에서도 성공하기 위한 필수요건인 것 같다.


내가 백날 아이와 함께 미술, 요리, 독서 등을 하려고 해도, 해당 영역은 이미 와이프가 독점하고 있는 와이프만의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내가 성공하기 위해선, 와이프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그렇게 하더라도 승리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와이프가 하지 않지만 딸아이가 좋아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카드보드 박스/폐휴지' 재활용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다...


딸아이가 기저귀를 차던 시절, 집으로 배달 오던 수많은 기저귀 등 대형 박스들은 항상 우리 집 정문 앞에 쌓여있곤 했다. 쓰레기 처리는 나의 업무인데, 당시엔 평일 월-목 출장을 다니다 보니 목요일 저녁 집에 들어오면 늘 폐휴지가 쌓여있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박스들을 처분하는 데 있어, 우연히 아이와 만들었던 장난감 비행기가 대박 히트였던 것! 그로부터 아이는 대형 박스가 집에 배달되는 날이면 아빠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하곤 한다. 아빠만의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이다.


아빠만의 카드보드박스 재활용법. 몇살 때 까지 좋아해줄까?


그렇지만 엄마에겐 이길 수 없다...

위에 여러 가지 노력사항들에 대해 작성을 해봤지만, 결론은... 딸아이 '사랑 경쟁'에서 아빠는 여전히 후발주자라는 것. 3살 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질문에 변함없이 "똑같이 좋아"라고 대답하던 딸아이는, 5살이 된 지금 변함없이 "엄마가 더 좋아!"라고 자신 있게 답변한다. 한편으론 섭섭하지만, 이것이 다 와이프가 딸아이와 함께한 시간들, 그들만의 애착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할 뿐이다.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 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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