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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Mar 22. 2020

코로나로 미국의 인터넷이 '잠깐 멈춤'

망 중립성(Net Neutrality)은 지금도 유효한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시카고는 오늘 저녁 5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자가격리 명령이 떨어졌다. 식료품점, 약국, 주유소 등 필수 시설을 제외하고는 도시의 모든 것이 멈췄다. 사람들이 차를 타거나 걸어서 다닐수는 있지만, 한 가족이 아닌 이상 1.8미터(6피트)정도의 안전 거리를 유지해야 된다. 공원과 놀이터도 모두 문을 닫는다. 당연히 회사는 모두 재택 근무로 바뀌었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모두 문을 닫았다. 대면 회의가 화상 회의로 전환되고, 수업이 e-러닝으로 대체되며, 가정에서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넷플릭스, 훌루 같은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어제 평소처럼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CNN 뉴스를 보고 있을 때였다. 유럽에서 넷플릭스, 유튜브 등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가 30일간 고화질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유럽도 미국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인터넷에 대한 의존도가 평소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과부하가 생길 위험에 처한 것이다. 전체 공급망으로 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각 건물, 각 사무실, 각 가정으로 인터넷을 연결시켜주는 PoP(Point of Presence)의 수용력은 평상시 예상되는 인터넷 사용량을 기준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일부 아파트 등의 소형 PoP 설비에선 급증하는 인터넷 사용량으로 인해 장비들에선 급격하게 늘어난 사용량을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진 것이다. 인터넷이 완전히 멈춰서기 전,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의 콘텐츠/플랫폼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HD 화질의 스트리밍을 중지시키는 등 망 과부하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다양한 규모의 POP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아파트와 사무건물에는 최종 사용자와 연결되기 전 단계의 소형 POP 설비가 존재한다. 이 장비들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인터넷 8학군'

시카고에선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거의 매일 주지사와 시장이 나와서 기자 회견을 한다. 주정부에선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앞으로 계획이 뭔지, 어떤 사항을 시민들에게 당부하는지 발표하는 것이다. 이 기자 회견이 시작하고 제일 먼저 시민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한 것이 있었다. 마스크나 손세정제가 아니다. 사재기로 화제가 되고 있는 두루마기 휴지도 아니다. 그건 바로 무료 인터넷 제공이었다. 주요 통신사들이 요금제에 따라 제한되던 데이터 사용한도를 풀고,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인터넷을 60일간 제공하는 등, 인터넷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뉴스를 빠르게 접할 수 있도록, 어떤 학생이나 학교의 의무 교육을 따라갈 수 있도록 말이다.


3월 21일 오후 5시를 기준으로 일리노이 주지사의 명령으로 주 전체가 자가 격리(stay at home)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의 중요도는 더 높아졌다. 주정부는 통신사들과 협력하여 최대한 빨리, 더 많은 곳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음만큼 빠른 속도의 인터넷이 제공되고 있지 못하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시카고 다운타운의 주상복합 아파트도 이제 IPTV에 버퍼링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시카고 남쪽 지역은 상황이 더 심할 것이다. 지금 시카고 사람들은 모두 핸드폰으로, TV로, 노트북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으려고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교육, 운동은 물론 댄스 파티, "happy hour" 음주 등 세상과 연결되기 위한 노력들이 인터넷으로 시도되고 있다.


모든 콘텐츠는 동일하게, 망 중립성 (Net Neutrality)

그런데 이러한 통신 과부하를 가능하게 하는 글로벌 인터넷 규제가 하나 있다. 망 중립성 (Net Neutrality)라는 것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인터넷 망을 유지하는 통신사(ISP: Internet Service Provider)는 자사의 망에 흘러가는 콘텐츠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신사는 19금 포르노와 9시 뉴스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하며, 콘텐츠에 따라 차등 대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신망에 그 어떠한 과부하도 없었던 평시에는 타당한 취지였을지 모르나, 모두가 자가 격리되어 개별 가정들에서 망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 지금, 과연 망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실제로 미국에선 트럼프 정권 후 망 중립성이 폐지되었으나, ISP에선 적극적으로 콘텐츠에 차등 대우를 하고 있지는 않다.)


넷플릭스, 인터넷 사용량 자진 반납하다

대부분의 규제들은 정해진 자원을 정부 취지에 따라 분배를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100을 100명에게 나눠줄 때 모두에게 1씩 줄 수도 있고, 가장 필요로 하는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비중을 분배할 수도 있는데, 분배의 특성상, 더 많은 이득을 보는 집단들이 발생하게 된다. 망 중립성도 예외가 아니다. 망 중립성의 경우 페이스북, 구글, 넷플릭스 등 인터넷 망의 절대적인 사용량을 차지하는 컨턴츠/플랫폼들이 통신사(ISP)와 개별 소비자, 소형 인터넷 기업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선 트럼프 정권에서 망 중립성 폐지 움직임이 일어났던 2018년 당시, 주요 인터넷 기업들은 망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백억 원대의 로비잉을 하기도 했었다. 유럽에서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고화질 스트리밍을 자진적으로 제한한 것도, 규제 당국에서 망 중립성을 폐지하여 뉴스/미디어, 교육 프로그램 등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의 필수 콘텐츠들에 우선순위를 주는 것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탁월한 전략 아니었을까?


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얼마 동안 지속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가격리, 온라인 교육, 화상회의가 일상이 된 지금, 우리가 사용해야 되는 인터넷에 우선순위를 정해야 된다면, 어떤 콘텐츠들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인가? 참 쉽지 않은 문제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지금까지 논란이 되었던 망 중립성에 대해 보다 진전된 논의가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건, 그러한 논의에 대한 결론이 나오고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이 코로나 사태가 종료되길 바란다.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 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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