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mouse Mar 30. 2020

코로나 시대, 병원 프로젝트를 시작하다

희망이 필요한 지금, 그들을 알게되어 감사하다

지난 10월부터 시작된 긴 휴직 기간이 끝났다. 원래 계획했던 육아 휴직보다 좀 더 긴 휴직 기간이었다. 오랜만에 회사를 복귀한다고 생각하니 설레이기도 하고, 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경영 컨설팅 라이프, 난 다시 그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회사 노트북을 켰다. 나의 복귀 예정일인 2-3주 후에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들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난 긴 휴직 뒤에 시작하는 첫 프로젝트이니 만큼 최대한 쉽고 업무량이 적은 수월한 프로젝트를 찾기로 했다. 


새로 올라온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니 두 세개 정도가 눈에 뛰었다. 내가 적어도 한 번 이상 경험해본 산업군에, 큰 무리 없이 복귀 첫 프로젝트로 안성맞춤인 프로젝트들이었다.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하려는 순간, 예전에 같이 일했던 파트너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이번에 복귀한다는 소식 들었는데, 본인이 새로 시작하는 '병원 프로젝트'에 합류하는게 어떻겠냐고. 미국의 대형 병원 그룹의 운영 현황을 진단하고 환자들이 보다 쉽게 병원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는 프로젝트였다. 지금 미국 내 급증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도 시급했고, 업무량도 상상 그 이상으로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휴직 기간은 아직 2주 정도 남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지금 당장 들어와서 일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잠시 고민이 되었다. 


Patient Access: 병원 진료 예약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Patient Monitoring: 의료진이 부족해질 경우, 입원 환자의 모니터링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Patient Transfer: 병원 수용력에 따라 환자 이송이 필요해질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프로젝트 주제를 듣고 있자니, 내가 도울 수 있다면 어떻게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의료산업 경험도 없었다. 그렇지만 고객이 서비스를 받는데 최적화된 절차를 수립하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시키는 데는 자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의사 출신의 전문가들이 수두룩한 병원 경영진에겐, 다른 산업에서의 대규모 서비스 조직개편 경험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일했던 파트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끊기도 전, 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더 이상 '쉬운' 프로젝트가 아닌 코로나바이러스로 폭주하고 있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병원 클라이언트를 돕게 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들어가는거야 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지금 일 중에 가장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시국에 '너와 나'는 없다. '우리'만 있을 뿐

나는 잠시 닫아뒀던 회사 컴퓨터를 꺼내 열었다. 우선 고려하고 있던 다른 프로젝트 파트너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다음 번에 같이 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날 예정된 클라이언트 최고 경영진(C-Suite)과의 킥오프 미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급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빠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매일 클라이언트와 체크인을 하고, 매주 중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워크플랜을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워크플랜은 다음날 킥오프 미팅에서 곧바로 무산되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며칠 전 설명드렸던 상황이 아닙니다. 매일, 아니 매 시간, 상황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제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업무 범위(Scope)와 절차는 융통성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내일은 아무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클라이언트 임원진이 당부하고, 우리 모두가 합의한 킥오프 미팅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프로젝트였다면  '너와 나'가 구분되어야 한다. 프로젝트 업무 범위(Scope)가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하며, 최종 산출물(Deliverables)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팀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고, 결과를 만들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예외사항을 허용해야만 했다. 화상회의로 진행되고 있던 킥오프 미팅에서, 나를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무슨 일을 담당할 것인지 '너와 나' 논의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우리' 모두 밤낮없이 일해서 힘든 상황을 이겨내자는 각오였던 것이다.


팀원의 '의지': 경험, 지식, 역량보다 중요한 요건

경영 컨설팅 팀장으로 프로젝트 팀원들을 선택하는 기준 또한 달라졌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에 필요한 경험, 지식, 역량을 갖춘 컨설턴트들을 뽑게 된다. 어려운 프로젝트일수록, 1년 차 신입 컨설턴트보다는 기본 역량이 입증된 2-3년 차 컨설턴트를 선호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만큼은 또 하나의 예외사항이었던 것 같다.


헬스케어 경험이 다수 있으나,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포기하기 싫다는 3년 차 컨설턴트

                                                                          Or

헬스케어 경험은 없지만, 클라이언트의 상황을 이해하고 야근이 많을 것이라는 경고에도 현 상황 속에선 수용하겠다는, 1년 차 신입 하버드 졸업생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선 3년 차 컨설턴트를 선택했을 것이다. 업무의 범위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은 나의 역량이며, 팀원들에게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보장하는 것은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프로젝트만큼은 달랐다. 팀원들이 프로젝트에 조인하기 전, 업무 범위가 변할 수 있으며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 후에도 팀에 조인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컨설턴트들만을 선택했다. 내게 필요한 팀은, 힘든 상황에 처한 클라이언트와 함께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팀이었던 것이다.


우리 팀의 마스코트: 5살 컨설턴트

대면 미팅, 대면 워크숍, 현장실사 등을 위해 매주 출장을 다니던 일상에도 큰 변화가 왔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출장이 어려워진 지금, 대면으로 이뤄지던 모든 활동은 끊임없는 Zoom, Google Hangout, Webex 화상회의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재택근무가 길어지다 보니 2-3주 전만 하더라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아빠! 내 티비 틀어주세요! (Dad! I want my TV!)" 클라이언트 부사장과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우리 집 5살 첫째 딸이 방으로 쳐들어왔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와 나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 잠깐의 웃음과 함께 우리가 왜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딸아이도 데이케어를 가지 못 하니, 집에서 얼마나 지루할까? 모두 지쳐가는 상황에서 가끔씩 깜짝 놀래켜 등장하는 딸아이의 등장에 모두 유쾌하게 웃어주었다. 아이는 기대에 보답을 하듯, 어느 때는 할로윈때 받은 드라큘라 이빨을 끼고 등장하기도 하고, 인어공주 복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했다. 아마 우리 팀원들은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다시 자기 학교로 돌아가고, 우리들도 얼굴을 보며 다시 함께 일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빨리 오기를. 


우리 집 5살 첫째 딸아이는 화상회의 중간 중간에 등장해 팀의 활력소이자 마스코트가 되었고,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재택근무에 임하기 시작했다.


희망: 코로나와 사투하는 사람들

지금 시카고가 있는 일리노이 주는 물론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필수 인원(Essential Personnel)만이 출근을 할 수 있다. 필수 인원이라하면, 의료진, first responder(소방대원, 경찰), 생필품을 판매하는 마트 임직원 등이 포함된다. 필수 인원이 아닌(Non-Essential Personnel) 나는 안전하게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의 클라이언트들은 대부분이 필수 인원(Essential Personnel)으로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하기 위해 현장으로 매일 같이 출근하고 있다.


환자를 직접적으로 치료하는 의료진은 물론, 미국의 수 많은 종합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룹 경영진 또한 새벽까지 야근을 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전용 24시간 Hotline을 하루만에 개설하여 환자들의 문의를 비대면으로 대응하기 시작했고, 병원 간 환자 이송 요청이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는 지금 기술적 제약사항들을 단기간에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의료진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은퇴했던 간호사 등의 자원봉사자들을 어떻게 시기적절하게 투입할 것인지에 대한 의료진 스태핑 모델도 재검토하는 등 수많은 사항들을 검토하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이 상황이 끝나기 전, 분명 수많은 긴급회의가 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희망을 가진다.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 밤낮 없이 뛰고있는 클라이언트들이 있기에,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 모두가 함께 이번 상황을 극복해낼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 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이전 05화 "분명, 데이터가 잘못됐을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