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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Oct 29. 2024

[소설] 13화 달이 뜨면

故人 차주강

빈소 특3호실(2층)


장례식장에 들어선 그녀는 안내 게시판을 보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분명 눈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두 눈이 마주쳤는데. 뭘 확인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의 빈소를 찾았다. 빈소엔 그녀의 눈에 익숙한 18살의 차주강 사진이 놓여 있었다.


“구여주?”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가 여주를 아는 체했다.


“여주 맞지? 여주 맞구나.”


쌍꺼풀이 짙은 큰 눈, 상복에 가려졌지만 화려한 이목구비는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여주가 그리워한 얼굴이기도 했던 친구.


“하경이?”


그녀의 곁을 지켜주던 든든한 친구. 항상 제 편을 들어준 친구. 그의 빈소를 지키고 있던 건 여주의 단짝 박하경이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갑자기 맞닥뜨린 친구는 반가움보다 당혹스러웠다. 주강과 하경은 접점이 없던 사이었다. 오히려 하경은 주강이 여주의 소문을 퍼뜨렸다며 싫어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할게.”


그제야 여주는 빈소에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중년 부부가 하경의 부모님임을 알아봤다. 특히 하경의 아버지는 친아들을 잃은 사람 같았다. 하경의 가족 모두 그의 죽음에 가슴 아파했다. 그곳에 여주가 낄 자리는 없었다.     


“차주강이 이든이었어.”


발인이 끝난 후 하경이 먼저 여주에게 연락했다. 한적한 카페에서 여주를 기다린 하경은 그녀가 도착하자 그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이든이, 아니 주강이가 널 많이 그리워했어. 하지만 차주강으로 널 만나면 네가 피할까 봐 이든으로 만날 거라고 했어.”


“뭐가 뭔지 모르겠어.”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차주강이 이든으로 나타난 이유를, 두 사람의 관계를 묻는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진 않으니까.


“너희가 만나서 행복하길 바랐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하경은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여주는 흘리지 못한 눈물이었다. 장례식장에서조차. 커다란 파도가 마음 저 밑바닥부터 쓸어가듯 텅 비어갔다.


“네가 전학 간 후에 많이 힘들었어. 주강이가 아니었다면 난 죽었을지도 몰라.”


12년 전 여주는 말없이 전학 갔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하경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도망치듯이 회화를 떠났다. 몇 번이나 친구들에게 연락할까 망설였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네가 떠난 후 아이들이 네가 도망갔다고 그랬어. 네 아버지가 살인자라서 도망간 거라고.”


눈물을 닦고 하경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난 아니라고 했어. 그런 게 아니라고.”


여주가 없는 사이에도 하경은 그녀의 편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다음 타겟이 되더라.”


“뭐, 뭐라고?”


여주가 떠난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 하나는 친구들 때문이었다. 자신을 두둔하는 친구들까지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서 견딜 수 없었다.


“난 내가 떠나면 다 끝날 줄 알았어.”


“견디기 힘들어서 나쁜 생각을 했어. 내가 죽으면 끝날까 싶었지.”


옥상에 올라간 하경을 말린 건 주강이었다. 몸을 던지려는 하경을 구하다 그가 떨어지고 말았다. 하경은 큰 사고였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주강이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적이 있어. 그때 다친 다리를 옥상에서 떨어지며 다시 다쳤어. 상태가 나빴어. 의사는 평생 걷지 못할 거라고 했어.”


여주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주강이 부모님도 돌아가셔서 우리 가족이 주강이를 미국으로 데려갔어.”


12년의 세월은 많은 걸 변화시켰다.


“나,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 대신 괴롭힘을 당했던 것도, 나쁜 선택을 하려 했다는 것도 몰랐다. 주강이 제 친구를 구한 것도 몰랐다.


“우리 가족은 주강이한테 새로운 삶을 살라고 했어. 아는 분을 통해 입양을 도왔어.”


아무것도 몰랐다. 그에게 어떤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는지도.


“얼마나 독한 녀석이던지. 그 힘든 수술을 몇 번이나 견디며 재활 치료를 받았어.”


하경은 12년이란 시간 동안 그가 얼마나 처절하게 다시 걷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웠는지 말했다.


“너 때문에 버틴 거야, 주강이는. 널 내내 잊지 못했거든.”


그리고 그 끝엔 여주가 있었다.


“널 만나기 위해 살아왔어.”


말을 잇던 하경은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렇게 힘들게 버텼는데 너한테 용서를 구하고 싶어 했는데 이렇게 갈 줄 몰랐어. 사고 트라우만 아니었어도.”


“사고 트라우마?”


“교통사고 때 트라우마로 한동안 힘들어했어. 차도 못 탈 만큼. 차가 달려오면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어. 굳어버린다고.”


그저 유성을 구하고 싶을 뿐이었다. 아무리 미워도, 원망해도 다른 이의 삶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하경은 눈물을 닦으며 옆자리에 둔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린 후 여주 앞으로 밀었다.


“주강이 유품이야. 사고 난 날 갖고 있던 거야. 너한테 줘야 할 거 같아서.”


하경이 떠난 후에도 여주는 한참이나 카페에 앉아 있었다. 그의 죽음이 모두 제 탓 같았다. 누군가를 살린 대가가 다른 이의 죽음이었단 걸 깨달았다. 그의 유품을 받을 자격이 없는 걸 알면서도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주강이 12년 전 여주에게 선물했던 머리핀과 그가 전하지 못했던 편지 한 통이 피에 젖은 채 들어있었다.


일부가 젖은 편지는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날 그가 품에 품고 있었던 편지였다. 여주는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봉투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의 품속 깊이 있었던 편지는 다행히 일부만 피에 젖어 읽을 수 있었다.     


여주야, 미안해.

편지를 써 본 적이 없어서 몇 번이나 썼다가 지웠어.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너한테 제일 먼저 할 말은 사과였는데,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여주야.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미안해.

네 아버지가 아무 잘못 없다는 걸 알지만 난 아무것도 못 했어.

내가 겁쟁이라 널 아프게 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차라리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널 위한 거라고 변명했어.

솔직하게 말해야 했어. 당장은 아프더라고 그래야 했어.

그 소문은……     


피로 젖어 더는 읽을 수 없는 편지에 여주는 오열한다. 장례식장에서도 흘리지 못한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바래고 바랜 편지가 안타까워서, 그의 마음을 알아보지 못하고 의심만 해서. 그녀가 모르는 그의 시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프게 다가와서.


‘이딴 거 필요 없어!’


주강이 직접 만든 머리핀을 바닥에 던졌다. 나무로 만든 머리핀이 힘없이 망가졌다. 그 머리핀을 다시 고쳤을 주강이가 떠올라서, 여주는 그가 남긴 유품으로 남긴 머리핀을 꼭 쥔 채 한참을 울었다.


여주는 며칠째 밤하늘만 바라봤다. 달이 뜨고 지는 걸 지켜봤다. 새로운 달이 차오르길 기다렸다. 두 번째 편지를 쥔 채 그를 살릴 달이 떠오르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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