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은행도 사람 사는 곳이고 은행에 오시는 고객들도 그저 사람인지라 시골 은행의 객장에서는 나름의 인간적인 장면이 종종 연출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끼리 왜 그러냐며 수수료 300원을 좀 깎아 달라는 고객, 아는 사람 왔다고 사은품으로 나온 치약이나 달력을 더 챙겨주는 남자 직원, 시아버지의 용돈을 신권으로만 챙겨야 한다는 여자 직원, 잡상인이라서 내보려고 하니 오히려 직원인 저에게 큰소리치며 도장을 파라고 협박하는 도장 아저씨 등등.
바쁘지 않은 날에는 손님들과 농담도 주고받았습니다. 좁은 동네라 매일 보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는데, 아들 생각이 난다면서 점심때 불러내어 순댓국을 사주시는 어머님들도 계셨고, 돈은 내일 주면 된다고 하시면서 화장품을 슬쩍 자리에 놓고 가시는 고객도 계셨습니다. 은행원에게 선을 보라고 말을 건네는 고객도 제법 있었는데, ‘저는 결혼을 했는데요’라고 말씀을 드리면 귀찮다고 둘러대지 말라며 동네 이장님 딸을 추천해 주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은행에는 사내 연애가 많았습니다. 퇴근 무렵 젊은 남녀 직원 한 쌍이 은행 금고에 들어가면 다른 직원들이 밖에서 금고문을 잠그고 불을 꺼버리곤 했습니다. 그런 장난이 인연이 된 커플이 많았다고 합니다.
바쁠 때는 또 정신없이 바쁜 게 은행일이었습니다. 월말이나 공과금 마감일이 되면 능숙한 베테랑 직원들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손님들에 맞서서 직원들은 다리를 꼬고 앉아 오줌을 참으며 일을 했습니다. 한 번은 제 옆에 앉은 여직원이 조용히 눈물을 훔치다가 화장실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아파트 관리비, 학교 등록금, 급식비, 주민세, 수도세 등 각종 고지서에 도장을 찍는데 손에 경련이 나서 부들부들 떨렸다고 하더군요. 그걸 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 비참했답니다. 입술, 팔목, 발목, 모든 것이 가늘었던 그는 그때 어금니를 꽉 깨무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안경 너머로 눈동자가 다시 촉촉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저를 잘 봐주셨던 지점장님께서 다른 업무를 하고 싶은지 물어보시길래, 저는 외환 딜러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쉽게 경험하기 힘든 업무이기도 했지만 홍콩에서 훈련을 받은 후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리저리 알아보신 후에 지점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국제 금융부에서 들어가려면 국회의원 빽이 필요하다고 하네.”
저는 아는 국회의원이 없었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은행 창구에 앉아서 비틀즈의 <Help>를 혼자 중얼거리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가사를 다 못 외워서 앞부분만 무한 반복하는 식이었지요.
“When I was younger so much, younger than today, I never needed anybody’s help in any way.”
(내가 지금보다 한 참 어렸을 때, 나는 누구의 도움도 - 어떤 식으로도 - 필요하지 않았지)
그 노래는 제법 흥겨워서 저는 고개를 까닥거리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