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느낌은 그랬다. 마시면 목덜미를 부여잡고 쓰러지려나. 길고 날렵하게 생긴 병에 든 맥주에 익숙했던 내게 짧고 뭉뚝한 병의 모습은 낯섦 그 자체였다. 그리고 설렘이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뭘 믿고 그렇게 무모했을까. 태어나 처음 여권을 만들었는데 가족여행도 해외 출장도 아닌 나 홀로 떠난 워킹홀리데이라니. 지금의 나보다 용기 있던 20대였다.
물론 걱정이나 망설임도 당연했다. 공항은 빠져나올 수 있을지, 밥은 잘 챙겨 먹을 수 있을지,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당시 삶에 몹시 지쳐있던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일.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모든 것들을 끊어내고자 했다.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떠났다. 위태로운 20대였다.
제 몸만 한 배낭을 메고 작은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내 몸이 버틸 수 있는 최대한의 크기였다. '어렸을 때 엄마 말 좀 잘 들을걸. 키가 더 컸더라면 더 많은 짐을 싸 들고 올 수 있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상상 따위 그곳의 파란 하늘에 두둥실 띄워 보내버렸다.
여태껏 내가 본 것은 하늘이 아니었구나. 살면서 이렇게까지 파란 하늘을 본 적 있었나. 온통 파란 물감을 가득 칠해놓은 것 같은 그것은 내 발이 닿아있는 곳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칙칙한 나의 감정 따위가 감히 닿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대기권 어딘가에 이미 두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봤다. 한국이 아니구나, 이제 혼자구나. 온몸으로 자유를 느꼈다.
그곳은 여태껏 내가 지냈던 곳과 몹시 달랐다. 그들의 일기장을 훔쳐본 것도 아니고, 삶을 대신 살아보진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여유 있어 보였다.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낯선 언어만큼이나 낯선 모습이었다. '언제 봤다고 아는 척이람.' 타인과 눈이 마주치면 속내를 들키는 것 같아 괜히 시선을 피하곤 했던 내게 가장 어려운 문화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이 말을 걸까 봐 괜히 바쁜 척 가방을 뒤지곤 했었다. 또 어떤 말로 내게 생채기를 낼지 날이 잔뜩 서 있었지만, 그곳은 달랐다. 그들은 내게 관심 없었다. 상냥한 듯 무심한 그들의 태도가 꽤 마음에 들었다.
외국 영화를 보면 그들은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다녔다. 가끔은 그 상태로 침대에 지친 몸을 던져버리기도 했다. 밖에서 신고 다닌 신발을 현관에 두고 들어오는 우리와 다른 그들의 삶은 늘 신기했다. 그런데 마트에 돌아다니는 그들 중에 맨발이 꽤 많았다. 민소매가 어색하지 않은 날씨라면 아스팔트 바닥도 분명 뜨거웠을 텐데, 마치 물놀이를 방금 끝내고 나온 아이들처럼 맨발로 다녔고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곳이 시드니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저렇게 맨발로 도시를 활보하고 집에 들어가면 신발을 신는 건지 궁금하긴 했다.
종일 갑갑한 신발 안에 갇혀있어야 했을 나의 발은 여전히 깜깜한 운동화 안에서 꼼지락거렸지만, 그들의 발가락은 자유롭게 도시를 활보했다. 뜨거운 햇빛과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바람을 오롯이 마주하며 평화롭게 움직였다. 내 만족 보다 타인의 시선을 더 신경 쓰던 나는 여유로운 그 모습이 좋았다.
그런데, 그들의 발가락을 쫓아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마트에 맥주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라도 아닐 텐데 어째서 마트에 술이 없는 거지? 상점 문 닫을 시간이 코앞인데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아 점점 초조해졌다. 갈증은 점점 심해지는데 도저히 물이 나타나지 않는 사막을 헤매는 것처럼 간절했다. 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건 다르니 오기마저 생겼다. 이렇게까지 욕망 가득한 인간이었나. 새로운 나의 모습을 또 하나 발견한 셈이다.
다행히 친절한 직원은 Bottle Shop으로 안내해 주었다. 세상에, 술을 파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니. 이 또한 충격이다. 나의 고향에서는 24시간 내내 아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도 쉽게 들고나올 수 있는 것이 이곳에선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다. 고생 끝에 발견한 그곳은 사막의 오아시스 그 이상이었다.
언젠가 캐나다에 여행 간 친구가 펍에서 10시도 안 됐는데 문을 닫는다고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동양인이라 그랬던 건 아니고 원래 그렇다고 했다. 10시라면 본격적으로 취하고 2차를 시작해야 할 우리로서는 당혹스러운 시간이다. 그곳 직원 역시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들어온 우리를 향해 상냥한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으로는 빨리 사서 나가라 재촉했다.
그렇게 떠밀려 집어 든 것이 XXXX였다. 가평에 가면 잣 막걸리를 팔고, 전남지역은 잎새 소주를 판다. 경상도에서 소주를 주문하면 참 소주를 가져다주고, 제주도 공항에서는 우도 막걸리를 팔며 각자의 지역색을 보여주었다. 그렇듯 그곳의 맥주는 XXXX였다.
농약을 실제로 본 적 없지만 마치 농약병 같은 모양에 X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붙어있었다. 마시지 말라는 건가? 마시면 죽어? 그런 X가 한 개도 아닌 4개나 붙어있는 유리병의 모양새는 짧고 단단했다.
조심스레 목젖을 흔드는 씁쓸한 맛이 몸 안의 세포들을 깨우는가 싶더니 다독여주었다. 그동안 애썼다고. 천천히 느슨해졌다. 괜찮다, 괜찮아. 꿀렁이는 목 넘김에 맞춰 긴장감이 풀어졌다. 지독한 외로움과 괴로움이 공존해 있던 그곳을 떠나 잔뜩 긴장해 있던 나를 다독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