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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Jul 26. 2022

눈물이 나면 선암사로 가라

심란한 날엔 숲을 간다.




나는 그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장사를 준비하고 손님 맞을 시간이 다 돼 갔지만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쥐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일의 진도를 내지 못했다. 손대면 터질 것 같은 봉숭아 씨앗처럼 누군가 건들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날은 수능일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남편이 아들을 수능 고사장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날도 가게로 내려와 장사준비를 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이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종일 가슴이 먹먹했다.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고, 가고 싶은 대학이 있어 전념한 것도 아니었다. 잘하는 아이는 잘해서 부모가 뒷받침해 줘야 하지만, 못하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학원이라도 다녀야만 내 마음이 덜 불안할 것 같아 등 떠밀 듯 보냈다.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고, 학원 선생님도 아이에게 특별한 지도를 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헛된 꿈을 꾸듯, 의미 없이 아이를 보내고 위안 삼았다.

그러나 공부 못한다고 마음마저 모자라지는 않았다. 남들 하는 고민을 같이했고, 자란 키만큼 자기 앞날을 생각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이과와 문과를 번갈아 가며 기웃거려 봤지만, 공부에 재능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운동을 하고 싶다 해서 체육 입시학원에도 보내봤지만, 몸무게 10kg 올리기 그 첫 번째 미션부터 힘들어했다. 결국 그마저도 얼마 못 가 스스로 그만두고 말았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으랴만, 흔들리는 아들을 바라보며 좋은 부모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책했다. 좋은 부모 만났으면 이 시기도 슬기롭게 극복했을 텐데 미안했다. 그런 아들을 시험 고사장에 넣어두고 하루종일 마음이 심란했다. 남편보다 내 마음을 잘 아는 사촌 언니의 전화가 왔다. 언니 목소리를 듣는 순간, 왈칵 심란이 쏟아졌다.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이라고 언니는 위로해 주었다.



공부엔 도저히 재능 없어 보이던 아들이 군 제대를 하면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섣부른 취기가 아닌지 우린 몇 가지 점검을 했고, 제법 굳건한 의지를 보이는 아들을 지지해 주기로 했다. 대신 딱 2년이라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아들은 그에 응하기로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제법 똘망똘망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녀석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춘기를 겪기 시작했다. 남녀공학에서 벗어나자 몸도 마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친구와 축구에 모든 관심사가 쏠려 공부와는 점점 멀어져 갔다. 순진하고 어리숙한 녀석이라 사고를 치지는 않았지만, 공부부터 일상 생활까지 무던히도 애간장을 녹였다.



막상 공부하겠다고 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을 가방만 메고 다녔으니 공부가 쉬울 리 없었다. 난생처음으로 하는 공부처럼 낯설었을 테다.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방법도 배워야 했을 테다. 2년이라고 기한을 주었지만, 2년으로 될 수 있을지 미심쩍었다. 그러나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내뱉은 건 처음이었다. 며칠 하다가 말 건 아닌지 의심도 들었지만, 생각보다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학원 첫 수업을 듣고 온 날 저녁이었다.


- 아들, 네 인생에 제일 공부 열심히 해 본 적이 언제였어?

- 오늘이요.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과거에 열심히 해 본 그날만큼 해 보라고 할 참이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제일 열심히 해 봤다고 해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아들의 집념과 의지는 오래갔다. 오가는 동안 버스에서 볼 거라고 메모지에 정리를 해서 가는 모습은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이었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녀석의 손에도 역시 메모지가 들려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봤지만, 놀라운 광경이었다. 절대로 의지는 누군가 대신 가져다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변하고자 하면 하루 만에도 변한다더니, 군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오늘 면접을 보러 갔다.

필기시험, 실기시험, 서바이벌 게임 같은 시험에서 살아남았다. 마지막 관문, 면접일이다. 나는 수능을 보러 간 그날처럼 마음이 편치 못하다. 안중근의 어머니처럼 담대하고 단호해야 할 텐데, 마음이 산란하다. 하필이면 이런 날, 뒷집 아주머니는 더 요란스럽다. 온 동네가 다 듣도록 큰 소리로 말한다.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신의 공간이다. 공용공간이라 잠시 착각했다. 아파트에 층간 소음이 있다면 주택엔 담간 소음이 있다. 내가 나가자.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처럼 나도 선암사로 가야겠다. 나는 숲이 그립다. 어린이 대공원 편백 숲에 가야겠다. 그곳에 울음을 내놓아도 좋을 소나무가 있을지 모르겠다.

발바닥이 불편하지만 찾은 보람이 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순간 부채처럼 펼쳐지는 편백 숲이 나온다. 쭉쭉 뻗은 나무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옮기다 보면 고개가 등에 딱 붙는다. 죽을 때까지 자란다는 나무의 생명력에 감탄한다. 나무는 절대로 옆에 있는 나무의 공간을 침입하지 않는다는 속성을 책에서 읽었다. 나란히 있지만 온전한 거리 두기를 하는 그들의 배려를 바라본다. 제 생명이 오늘 나의 생명에도 도움을 준다는 걸 알까? 먹먹하고 산란한 내 마음을 어느새 경외심으로 채워 여기까지 온 경위를 잊어버리게 하는 걸 알까? 버스를 타고 집을 나설 때와는 다른 감정으로 숲에 서 있다. 숲에 온 이유다.

그 속에 나를 가두어 놓는다. 이렇게 키 큰 나무들이 인간들을 내려다볼 것이다. 조그만 것들이 잘난 체 까분다고 여길 테다. 팔딱거리는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해 그들 아래 서 있으면서 지배자의 교만을 가지고 있다. 내 작음을 작다고 인정한다.



아들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4월에 필기시험을 치고 이제야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학원에서 알려준 2:8 나카무라상 가르마를 씻고, 양복을 벗어 던지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그래, 오랜만에 홀가분한 마음을 표현하기는 부모보다 친구가 좋을 테다. 처음 맞는 청춘처럼 즐기려무나. 그동안의 수고에 축배를 들려무나.

심란했던 애미의 감정따윈 안중에도 없는 청춘이다. 등굽은 소나무를 찾아갔으나, 숲에 들어서는 순간 내 모든 근심은 사라졌으니 네가 내 감정을 모르는 건 당연지사다. 바람은 사치다. 네 덕분에 선암사를 다녀왔으니 나는 그걸로 족하다. 고생했다 아들.








덧) 매일 메일 은자 7월호 제 8화 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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