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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Aug 13. 2022

19. 내가 곧 장르다

Honfleur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롤러코스터의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듯 긴장되고 겁이 났습니다.

뒷좌석의 LJ는 아예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롤러코스터는 제일 높은 곳까지는 전기의 힘으로 올라가지만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부터 도착점까지는 무동력으로 움직인다고 하지요.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가 그토록 빠른 속력을 내게 된다니 참 신기합니다.


멀리서 봐도 일단 크기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노르망디 대교(Pont de Normandie)는 르 아브르와 옹플뢰르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센 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위치에 만들어진 이 다리는 2,143m, 무려 7년에 걸쳐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두 개의 돛대에 줄을 잡아 올리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다리를 사장교라고 하더군요.

멀리서 보면 날씬하고 가녀린 여인처럼 보이지만 시속 440 킬로미터의 강풍에 견디도록 설계가 되었습니다.

다리 밑으로 지나가는 화물선과 충돌해도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강철과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었다는군요.

이 다리는 통행세를 내야 하지만 보행자, 자전거, 오토바이는 무료입니다.


다리의 크기가 워낙 길고 날씬하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경사가 완만해 보이지만 실제로 오르막에선 겁이 났습니다.


   

 

노르망디 대교(Pont de Normandie)



여기가 옹플뢰르야 하는 듯 멋진 풍경이 좍 펼쳐져 있습니다.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 앞은 상자에 들어있는 파스텔처럼 울긋불긋한 집들이 빼곡합니다.

덴마크의 뉘하운 항구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체크인 시간은 안 되었지만 일단 주차장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숙소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지요.



옹플뢰르 항구




내비가 안내하는 곳은 일방통행의 아주 비좁은 골목길입니다.

보행로가 따로 없는 길에는 여행자들이 넘쳐 났습니다.

사진 찍는 사람, 아이스크림 사는 사람, 유모차를 끌고 가는 부부 등...

자동차가 오는 것을 눈치채고 비켜주지 않는 한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지요.

보행자와 눈이 마주치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처럼 머리를 꾸벅이며 입으로는 쏘리를 연발했습니다.

그렇게 복잡한 길을 느릿느릿 돌고 돌아 면허 시험 치르듯 힘겹게 목적지에 도착했지요.

집 앞은 예상대로 주차할 공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일방통행인 도로에서 정차를 하고 캐리어를 내릴 방법은 없었고 우리는 숙소 앞을 논스톱으로 지나쳤습니다.

일단 호스트가 알려준 무료 주차장으로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숙소에서 500m 거리에 있다는 주차장은 온 길을 되짚어 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다시 보행자들에게 손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꾸벅이며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부둣가의 화가



무료 주차장 'The Naturospace'에는 어림짐작에 백 대도 넘어 보이는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주차장 옆 공터까지 꽁무니조차 들이밀 자리가 없더군요.

금요일 오후의 옹플뢰르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습니다.

그럴 때는 발로 뛰는 방법이 제일 빠릅니다.

차에서 내려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가장 안쪽 나무 아래에 좁은 공간이 있었습니다.

자동차들은 여전히 계속 밀려들어오는 상황이고 M은 그 비좁은 공간에 주차를 하느라 몇 번을 들아갔다 나왔다를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주차를 했지요.

숙소에 들어갈 일이 꿈만 같습니다.


 

무료 주차장




자동차로 들어섰던 중심 골목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걸으면 차 안에서 못 보았던 것들이 다 보입니다.

집 하나하나, 꽃 한 송이 한송이가 모두 예쁜 겁니다.

황홀합니다.


'어떻게 해, 어쩌면 좋아, 여기 좀 봐, 너무 예쁘잖아...'


마을로 올라가기 전의 도로변의 집들은 우리의 맘을 단박에 훔쳐갔습니다.

디테일이 조금씩 다른 창문과 벽돌의 컬러들이 조화롭게 아름다웠지요.


나는 오래된 것을 좋아합니다.

'옛날 것'이라는 말보다 '오래된 것'이라는 말이 더 맘에 듭니다.


사람들이 많다는 것 말고 나쁠 게 전무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여행자니까요.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는 책 제목처럼 역시 작은 마을이 우리 취향에 딱 맞습니다.

그날은 그냥 눈에 담기만 하고 사진은 새벽에 찍기로 했지요.




오색의 컬러풀한 집들이 디테일하게 어우러져 아름답다.
초록 덧창과 핑크 장미
왼쪽 벽돌 무늬와 오른쪽 색유리창이 세월을 말해준다.




정신 줄 놓은 사람처럼 걷다가 다시 숙소로 향했습니다.

호스트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는데,

체크인 시간에 숙소에서 우리를 맞이하겠다던 호스트는 사정이 생겨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

그러므로 열쇠를 출입문 옆 유리창 아래에 놓아두었으니 찾아서 들어가라는 거였지요.


걸어서 다시 찾아 집은 놀랍게도 외젠 부댕 미술관 바로 뒤였습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30m 거리에 유료 주차장이 있는데 아무나 세울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지요.

문제는 빈자리가 없다는 거였지요.

아무튼 차를 다시 가져와야 하니 M과 나는 주차장으로 가고 LJ는 그곳에 남아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또다시 인파를 뚫고 숙소 옆 주차장으로 오니 우리를 발견한 LJ가 다급한 손짓 했습니다.

빈 주차 공간이 생긴 거였지요.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기 직전에 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우리와 거의 동시에 다른 차량이 들어와서 행여나 자리를 뺏길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던 겁니다.  

찰나의 행운으로 무사히 주차를 마쳤습니다.


이제 열쇠를 찾는 미션에 부딪칩니다.

호스트는 빨간 출입문 옆 유리창 아래에 열쇠를 두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유리창은 모두 굳게 닫혀있고 열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지요.

호스트에게 '못 찾겠다 꾀꼬리' 하는 메시지를 보낸 순간 유리창 귀퉁이에 작은 나뭇잎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열쇠는 바로 그 나뭇잎 밑에 감쪽 같이 숨어 있더군요.



숙소 출입문(좌) 나뭇잎으로 가려놓은 열쇠(우)



출입문을 따고 들어갔지요.

산 너머 산입니다.

숙소는 3층,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4층.

엘리베이터, 당연히 없습니다.

게다가 유럽 건물은 층고가 높아서 4층이지만 계단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캐리어를 끌어올릴 일이 깜깜합니다.

하지만 한두 번 겪었던 일도 아닙니다.

누가 등 떠밀어 떠나온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 온 것이니 이 또한 즐겁게 여겨야 할 일입니다.

즐거움과 행복함이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과연 보상은 있었습니다.

복합 복층 구조의 집은 아래층에 침실 두 개와 욕실, 위층은 거실과 주방, 그리고 또 하나의 침실과 욕실이 있습니다. 또다시 나무 계단을 몇 개 올라가면 분위기 있는 다락방이 있었지요.

거실 전면에는 중세 시대에 만들었을 법한 앤티크 한 세계 지도가 걸려 있고 곳곳에 바다와 관련된 사진이나 물품들이 적절하게 걸려 있습니다.

게다가 창밖으로 부댕 미술관이 보입니다.

어느 곳 한 군데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맘에 들더군요.

물론 친구 M과 LJ도 마찬가지였지요.

들어오기까지 힘든 과정이 마법처럼 까마득하게 잊혔습니다.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지요.


'계단이 많아 오르기 힘들었지만 집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이곳에 묵을 수 있어서 기뻐요.'


 

리빙 룸
창틀에 오브제로 올려놓은 조개 껍데기




새벽을 훔치러 나갑니다.

전날 밤거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예요.

인파로 북적거리던 거리는 절간처럼 조용합니다.

청소하는 아저씨의 손길만 분주하지요.

콩새와 참새처럼 작은 새들이 지저귀고 막 깨어난 햇살의 간지럼에 흩어져 피어있는 꽃들이 방실방실 웃습니다.

문 닫은 기념품 샵의 유리창을 들여다보는 재미,

뜻을 알 수 없는 갖가지 멋들어진 간판의 글씨들,

빨갛거나 노란, 또는 초록의 대문과 창틀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듯 어울립니다.

좁은 골목마다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들이 불쑥 튀어나올듯합니다.

영업을 끝낸 노천카페의 가지런히 접힌 파라솔과 의자들도 편안해 보입니다.

노르망디 특유의 목골 주택과 나무 비늘 같은 지붕,     

손이 닿은 부분만 닳고 닳아 반짝반짝 금빛으로 빛나는 도어 노커(door Knocker)들을 하나씩 두드려보고도 싶습니다.

'생 에띠앙' 부둣가에 빼곡히 정박된 요트들과 집들을 온몸으로 껴안은 바다는 더 이상 푸르지 않습니다.

화가들의 발길을 붙잡았던 바다의 빛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새벽 골목
중심도로 분수


시청사 시계탑
어느 갤러리에 걸린 하트 구름




한강뷰 아파트가 비싸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비단 한강뿐만이 아니라 호수 뷰, 바다 뷰도 마찬가지입니다.

호텔도 그렇습니다.

추가 요금을 내더라도 오션 뷰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지요.

사람들은 왜 물이 보이는 풍경을 좋아할까요?


내 경우, 물을 보면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집니다.

가슴이 뻥 뚫리도록 막힘없는 하늘은 시원하고 후련함을 갖게 합니다.

게다가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은 덤이지요.

해가 뜨고 지는 모습,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리는 모습도 막힘없이 볼 수 있습니다.

답답함이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

그러고 보니 물이 있는 풍경을 좋아하는 이유가 많네요.

생 에띠앙 부두의 바다에 빠진 채로 물결에 흔들거리는 집과 요트를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주말이라 장이 서는지 천막을 치는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냄비, 프라이팬, 의류, 식품 등 다양한 상품들이 항구 주변에 빼곡하게 줄을 서네요.

웃으며 인사를 건넵니다.

제법 자연스럽고 익숙합니다.


'봉주르(Bonjour)'

 

프랑스의 R 발음을 거의 묵음이라 현지인들은 거의 봉주~ 또는 봉주흐라고 하지요.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사람마다 봉주~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이제 우리도 습관적으로 아주 자연스레 봉주~ 하게 되었죠.

하루에도 수십 번 쓰는 말 봉주~

헤어질 때는 아부아(Au revoir), 그리고 메흐 씨(Merci)

이 삼총사 말을 프랑스에 있는 동안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가리비 껍데기나 조개껍데기는 좋은 오브제로 활용



옹플뢰르는 화가들이 사랑했던 곳이니만큼 여기저기 화랑이 많습니다.

바닷가 앞의 갤러리를 지나는데 발을 멈출 수밖에 없는 특이한 조각이 보여요.


'중간이 끊어졌는데 어떻게 서있지?'


길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의 눈속임 같기도 하고요.


1960년 모로코 태생의 프랑스 조각가 브루노 카탈라노(Bruno Catalano)의 작품이었습니다.

선원 생활을 했던 시절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여행 가방을 들고 떠나는 "여행자(Voyageurs)"라는 제목인데 속이 비어 있는 인간 청동 조각상을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브루노 카탈라노(Bruno Catalano)의 작품, 여행자


옹플뢰르 갤러리의 브루노 카탈라노(Bruno Catalano)의 작품




카메라는 시간을 훔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 사진을 찍습니다.

순간을 훔쳐서 내 것으로 저장하는 거죠.

시간을 훔치는 게 범죄는 아니니까요.



10시에 오픈하는 외젠 부댕 미술관은 집 옆이니 오픈과 동시에 1등으로 입장했습니다.

미술관을 통째로 빌린 기분이 꽤 괜찮더군요.

규모도 아담하고 조용해서 그림을 보는 마음이 느긋했습니다.

피카소 미술관에 피카소 만 있는 게 아니듯 부댕 미술관의 9개 전시실에는 모네, 쿠르베, 뒤피, 종킨드 등이 그린 노르망디와 옹플뢰르 근교 풍경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댕의 그림은 오히려 르 아브르의 MUMA 미술관에 더 많더군요.




외젠 부댕 미술관
2층 유리창에서 내려다본 1층 전시실
외젠 부댕



한눈에 내 마음을 빼앗아간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림이 아니라 그냥 바닷가에 서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빛이 느껴졌습니다.

캔버스 뒤에 조명을 설치하고 불을 켜놓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요.


'이게 그림이라고?'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옹플뢰르의 해안선'(Rivage pres de Honfleur)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사는지 알 것 같더군요.


실제 보는 그림은 책 속의 사진으로 보는 것과 비교할 수가 없지요.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이유입니다.

이게 사진의 한계입니다.


LJ는 앙드레 암부르그(André Hambourg, 프랑스 1909-1999)의 그림에 흠뻑 빠졌더군요.

그날 미술관에서의 소득은 암부르그를 알게 된 거라고 기뻐했습니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옹플뢰르의 해안선'(Rivage pres de Honfleur)
앙드레 암부르그(Andre Hambourg) Deauville
앙드레 암부르그(Andre Hambourg)
클로드 모네 생 카트린 성당



'이 그림이 정말 탐나네'

'그래? 나는 이 그림'

'방법은 있어, 집도 가깝겠다, 이따 밤에 털러 오면 돼.'

'진짜? 그게 좋은 방법인데?'


어울리지 않는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습니다.

우리와 거의 같은 시각에 미술관에 들어오신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흰색 니트 카디건에 헐렁한 바지, 수수한 차림의 그분은 우리와 같은 동선으로 그림을 보게 되었지요.

혼자서 조용히 심도 있게 그림을 감상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군요.



미술관에서 만난 할머니



나중에 메종 사티 집으로 가는 길에 그분이 어떤 집으로 들어가시는 걸 봤지요.

차림새로 보아 여행자는 아니겠다 싶었는데 그 동네 주민이셨더군요.

몇 년 전 덴마크의 훔레벡 근처에 있는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나더군요.

'루이지애나는 아름다운 미술관이에요. 나는 1주일에 서너 번은 간다오.'


물론 저 역시 수많은 미술관을 가보았지만 그중 가장 손꼽는 미술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꼭 다시 가려고 마음먹은 곳 중의 한 곳이기도 합니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다녀왔을 때 썼던 글을 첨부합니다.

 

https://brunch.co.kr/@silviano/78



미술관 창으로 보이는 노르망디 대교



시간이 꽤 흘렀나 봅니다.

어느새 관람객들의 숫자가 꽤 많아졌더군요.

이제 에릭 사티의 생가인 메종 사티(Maison Satie)로 갑니다.


2년 전 TV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가수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밝혀지기 전, 심사위원들은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30호가 곧 장르다.'

에릭 사티도 하나의 장르입니다.


'나는 이 늙은 세상에서 너무 젊게 태어났다.'


본인이 그린 자화상에 써놓은 그의 말처럼 그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만들었고 연주했습니다.

그 시절 클래식 음악이 갖고 있던 형식, 체계, 화성, 이 모두를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했지요.

음악은 사람의 주목을 끌지 않는 가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야 한다고 말이지요.

사티는 사람들에게 제발 본인의 연주를 무시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티가 연주를 시작하면 청중들이 말을 멈추고 그의 연주에 집중하는 바람에 괴로워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오늘날 그의 음악은 사티가 바라듯 '가구 음악(Furniture Music)'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야말로 집중하지 않아도, 듣다가 놓쳐도 아무 문제없는 음악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이죠.

미니멀 음악이니, 뉴 에이지 음악이니 하는 것들의 근원은 모두 사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사티의 집은 정말 그의 음악처럼 별나고 특이했습니다.

문 앞에 타이틀처럼 붙어 있던 노란 배(梨) 모양의 등이 방 하나를 채우고 있어요.

아마도 그의 작품 '배(梨) 모양을 한 3개의 피아노곡'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가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들고만 다니던 우산도 빼곡히 놓여있습니다.

여러 가지 실험 장치나 현미경 등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아마 그의 기이한 작품 제목을 빗대어 만들어 놓은 장치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사티는 ‘기억 상실의 회고록’이라는 제목의 기록에 본인의 식단에 대해 써놓았는데,

달걀, 설탕, 뼈, 동물성 지방, 송아지 고기, 코코넛, 쌀, 파스타, 순무, 흰 물로 조리한 닭고기, 흰 치즈, 흰 물고기 등 오로지 흰 음식만 먹고살았습니다.

파리 북부 몽마르트르에 그가 살던 집에는 몇 가지 유품이 남아있는데 세상에서 제일 작은 사이즈여서 '에릭 사티 벽장 박물관'이라는 명칭이 붙었지요.












사방이 온통 화이트, 피아노도 화이트입니다.

사티는 없고 피아노 혼자 연주합니다.

짐노페디, 그로시엔느, 그리고 평생 사랑했던 여자 수잔 발라동(친구의 어머니로 6개월 사귐)을 위해 만든 곡, 난 널 원해(Je te veux) 등이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그가 원한 가구 음악처럼 사진도 찍고 창밖도 내다보고 피아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음악을 내버려 두었지요.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던 기인, 에릭 사티는 과도한 음주로 인한 간경화로 59세 때 사망했습니다.






https://brunch.co.kr/@silviano/15



나무꾼(L'Homme de Bois)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에 점심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LJ가 맛있는 정통 노르망식 런치를 사기로 했거든요.

프랑스인들은 일반적으로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순서로 식사를 하는데요.

애피타이저로 석화 6개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3월이 지나면 생굴은 먹지 않는데 프랑스는 그렇지 않더군요.

큼지막한 굴 위에 레몬 즙을 짜서 한 입 호로록 먹었는데 비릿함 하나 없이 시원하고 고소했습니다.

함께 나온 에샤롯(echalote) 소스는 양파보다는 작고, 양파 향보다는 한 단계 숨이 죽은 파와 양파 사이의 향을 가진 채소 에샤롯을 잘게 다져 소금과 후추, 발사믹을 넣어 만든다고 합니다.


메인 디쉬로 나온 감바스는 왕새우 파티입니다.

스테이크 또한 맛있었지요.

프랑스 음식은 다른 유럽에 비해 짜지 않아 좋았는데요.

특히 시드르(cidre)가 우리 셋의 입맛에 맞고 식사와도 잘 어울려 훨씬 풍성한 식사가 되었습니다.




애피타이저 석화
감바스
메인 스테이크와 생크림이 듬뿍 올려진 아이스크림 디저트



프랑스 하면 와인이죠.

하지만 노르망디 지방에서는 시드르를 많이 생산하고 유명하기도 합니다.

노르망디는 각종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곡창 지대지만 기후조건 때문에 포도는 재배하지 않는답니다.

시드르는 쉽게 말해 사과로 만든 발효주, 즉 사과와인(apple wine)입니다.

만드는 방법은 와인과 비슷한데 사과를 압착하고, 과즙을 짜내고, 발효하는 단계를 거친다고 해요.

발효단계를 한 번 더 거치면 샴페인 같은 발포성 시드르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포도의 산도가 높고 탄닌 함량이 많아야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듯이 사과의 산도와 탄닌 함량이 높아야 맛 좋은 시드르를 만들 수 있다지요.

노르망디의 시드르는 발포성이며, 알코올 함량은 약 5%, 색깔은 노란빛을 띠는 밀짚 색이었습니다.

그리 달지도 시지도 않으면서 발포성이라 깔끔하고 약한 알코올 향이 식사와 잘 어울리는 음료였어요.


음식 맛은 꽤 훌륭하지만 서빙되는 시간이 꽤 길어요.

레스토랑은 1,2층 모두 만석이었습니다.

워낙 빨리빨리에 길들여져 있는 생활에 익숙하지만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처럼 시드르를 마시며 모처럼 느긋한 식사를 즐겼지요.    

그야말로 점심 식사를 마치기까지  2시간이 걸렸더군요.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하는데 2시간 걸린다는 말이 맞았습니다.

Merci, LJ~



옹플뢰르에 가면 누구나 꼭 찾아가는 곳이 있는데 생 카트린(Saint Catherine) 성당입니다.

15세기 후반 백년전쟁이 끝나자 시민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당을 짓기로 했지요.

그러나 석재와 석공을 구할 수가 없어 목조 교회를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뱃사람들이 들락거렸던 항구답게 성당은 큰 배를 뒤집어 놓은 모양입니다.

그날 역시 여행자들의 발길리 끊이지 않았습니다.



생트 카트린 성당
인파로 붐비는 생트 카트린 성당 앞 광장
부댕 미술관 앞, 4부자



여행자로 지내는 동안은 너그러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해방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 아닐까요?


Eric Keiser에서 아침에 먹을 바게트와 디저트 케이크를 샀습니다.

눈과 귀가 즐거웠고, 나무꾼 레스토랑에서는 선녀가 되어 입이 즐거웠으니 이제 좀 쉬어야겠습니다.

'휘게 휘게'


*휘게 ( 덴마크어·노르웨이어: Hygge )는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명사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하는 단어.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빵집 에릭 카이저
오래된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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