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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Nov 03. 2024

화장실 안에 인권 있어요

 ‘술, 막힌 화장실, 똥 싼 바지, 회사 동료, 망한 인생이라…….’     


 다영은 일단 남자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습이 안 되는 상황. 하지만 어떻게라도 다영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저 남자는 여기서 정말 끝장이다.

 ‘똥쟁이 소리를 들으며 회사를 어떻게 다니란 거야!’

 치욕스러운 일이다. 이 정도면 퇴사는 물론이고 이민까지 고려해야 할 사항 아니던가.     

 

  Q. 신이시여, 저는 어떻게 해야 하옵니까?

  A. 인간이여, 길 잃은 어린양을 돕도록 하여라.      


 삐그덕, 문을 밀고 신의 응답을 받은 다영이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남자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변태여서가 아니었다. 똥 묻을까 만지고 싶지 않은 건 도리어 이쪽이었으니, 또르르. 슬프게도 남자의 지갑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발견됐다.

 “아, 왜 하필…….”

 다영은 수도를 틀어 물로 지갑을 대충 씻었다. 대충 불순물(?)이 떨어진 지갑을 엄지와 검지만으로 잡고 2층 매점으로 올라갔다. 그런 다음 진열된 옷가지 중에서 조금 전, 남자가 입고 온 갈매기 무늬 반바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남자의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두고는 다시 화장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에게 남자의 그 물질(?)들이 묻지 않게 조심하며, 다영은 온 힘을 다해 남자를 고장 난 칸 안으로 아무렇게나 밀어 넣었다. 물론 남자의 지갑과 갈매기 무늬 반바지도 함께였다.

 “알아서 사태 파악하시고 갈아입으세요!”


 이제 맞은편 회사 동료 차례였다. 다영은 낑낑대며 자신보다 커다란 그를 스크류바처럼 꼬아가며 화장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매점 앞 벤치에 앉힌 다음, 그의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폰을 손에 쥐여주었다.

 “자, 조금만 더 휴대폰 좀 하세요.”


 이렇게 임시로 상황을 반전시키기까지 약 27분. 다영의 몸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남자의 인권이 경각에 달한 상태였다. 똥에 살고, 똥에 죽는 인생.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알코올에 찌든 그들은 서로 마주쳤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인가?

 다영은 숨을 고르며 매점 화장실 쪽만 찌릿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벤치에 앉은 남자의 회사 동료를 주시하면서—


  29분 57초, 58초, 59초… 딱 30분.

  침묵이 깨졌다.     


  공원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밤하늘에 오늘을 기념하는 폭죽을 쏘아 올렸다. 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연극의 서막인 걸까?! 다영은 시선을 한곳에 집중, 또 집중하였다.

       

 한편 회사 동료는 벤치에 앉아 있는 자신이 당황스러운지 한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다영은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곧 벤치의 동료에게 전화가 걸려 왔고, 그가 잔디밭 쪽을 바라보며 손짓을 하자 네다섯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모두 화장실 안에 있는 남자의 회사 동료들인 듯했다.

 ‘뭐야, 한 명이 아니었어?!’

 아무래도 저 많은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신 듯 보였다. 부서 회식인가— 이 사람들에게 분변 테러범으로 각인될지도 모를 화장실 안의 남자가 가여워서 다영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대체 화장실 안은 어떤 상황이길래 나오지 못하고 계시오, 밖에서는 그대의 동료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소만.     


  그때였다.

  남자 화장실의 문이 열리며 다영을 찾아왔던 그 남자(라고 쓰고 ‘똥쟁이’라고 읽는다)가 나왔다. 상의는 셔츠와 넥타이, 하의는 갈매기 무늬 반바지. 다영이 준비해 준 그대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꼴이 우습긴 하지만, 바지는 뭐 본인의 선택이기도 했으니.

 “아니, 준형 씨. 옷이 왜 이래?”

 “그러게. 뭐 싸기라도 한 거야? 하하하.”

 “하도 돌아오질 않아서 술 먹고 어디 빠졌나, 찾으러 왔어.”

 “이제 자리 좀 옮기자고!”

 사람들은 달라진 남자의 옷차림이 의아한지 모두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하하, 뭐가 좀 묻어서요. 그나저나 속이 안 좋아서 저는 집에 좀 가볼게요. 다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저는 과음한 것 같아서 아무래도 여기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조금 전 다영 앞에서의 애달픈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안녕의 인사를 건넸다. 그는 자칫하면 자신 앞에 구린내 지독한 미래가 펼쳐질 수도 있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테지. 다영은 실소가 나왔다.

 

 저벅저벅 걷다가 동료들과 멀어지자 갑자기 우당탕 뛰기 시작하는 그를 보며 다영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다영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뛰는 이유를.


 부디 집까지 가시는 길이 내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주다영 인생 상담소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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