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이해
: 이해함이 전혀 없음
그러나 서글펐던 유년 시절 이상으로 어른의 세계 역시 혹독했다. 홀로 살지 못하는 기생 동물인 내가 자칫하면 고아원에 버려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던 미성년자 시절에는 빨리 성인이 되기만을 바랐건만- 막상 성인이 되어 보니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이란 결국 내 신체와 정신을 깎아내어 바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삶이란 언제라도 호락호락할 리 없는 법일지니,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내가 성장한다고 하여 내면에 이미 박혀버린 트라우마가 저절로 치유되는 마법이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기질 탓인지, 환경 탓인지, 아니면 둘 모두의 영향인지 모를 내면의 우울 역시 점점 깊어져만 갔다.
어른들의 삶에는 정해진 공식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면, 일정 연령 이후 결혼하여 반드시 출산을 해야 한다는 것. 특히 내가 소속된 집단은 더욱 보수적인 성향을 띠어선지 너무도 쉽게 ‘연애’, ‘결혼’ 등과 같은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나를 그 길로 가라고 강요하여 피로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 사생활을 직장에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 당시 남자친구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원치 않는 소개팅을 강요받거나- 결혼은 하지 못해 스트레스받지 않냐는 둥의 무례한 발언은 물론이며- 별 미친놈의 스토킹까지 감내해야 하는-( 하, 씨발... ) 아무튼 온갖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고난에 내 친족들도 가세했다. 출근길이고 퇴근길이고 가리지 않고 느닷없이 오는 결혼에 대한 전화들. 그러다가 당장 두 달 뒤에 누군지도 모를 상대와 결혼 날짜를 잡으라는 압박까지 해오는 지경에 이르자, 이러다 진짜 결혼을 안 하면 안팎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내가 제명에 못 살겠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나는 돌이켜 보니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결혼을 당시 상당히 오래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한국 나이 33세 10월에 하게 된다...
물론 나와 내 남자친구는 7년 가까이 사귄 사이로 서로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서로가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지식밖에 갖추고 있지 않았다. (아니, 해봤어야 알지!) 한 마디로 결혼식 이후 펼쳐질 미래에 대해서는 ‘몰이해’ 수준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우리의 결혼 생활이 안정을 찾는 데까지는 거의 오 년은 걸렸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안정적으로 가정 내 역할 분담을 이루며 부모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물론 이 작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나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내상 또는 엄마상이 없었기에 가정 내에서 포지션을 구축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무언가를 이해하고 학습한다는 건 이처럼 중요하다, 삶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