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싶어서요

by 심바

이번 연휴는 휴가를 쓰고 시댁에 갔다. 보통 설과 추석 중 한 번의 명절에만 방문을 하는 편이다. 한 번은 시댁, 한 번은 친정 뭐 이런 평등한 규칙에 의해 상호 합의하에 그리하자 한건 아니다. 휴가를 써야 연휴에 근접하게 맞춰 쉴 수 있는 내 근무패턴상 같이 근무하는 파트에서 나만 계속 쉴 수는 없기 때문이다.(요즘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명절 근무를 더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리 해외 여행객이 늘었다 한들 귀향길과 귀성길의 정체는 늘 한결같은 느낌인데, 다행히 KTX표를 구해서 기차로 부산에 가기로 했다. 아이들이 자라고 짐이 좀 줄어들고 나서부터는 기차가 훨씬 편하다. 편의점에서 산 맥주 한 캔을 소중히 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창밖 풍경을 안주삼아 한 모금, 두 모금 하다 보면 금방 도착하겠지.





특별히 음식을 많이 하지도 않지만 하는 일 없이 종일 바쁜 게 명절인가. 연휴가 끝난 주말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있어 운동복과 운동화도 챙겼건만 연휴 마지막 날까지 결국 헬스장 한 번 갈 틈이 나질 않았다. 고작 2박 3일이긴 하지만 한 시간 정도 내 시간은 있겠지 했지만 웬걸. 머리가 굵어진 아이들은 심심하다며 귀옆에서 징징대고, 돌아서면 밥시간이 돌아오고 싱크대엔 그릇이 수북이 쌓였다. 내 몸은 하난데 어쩌란 말이니. 그럼 나를 반으로 가르... 시댁에 오면 밖을 나가는 게 그렇게 어렵다, 신기할 정도로. 뭐라도 하게 해 달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영화라도 볼까 하며 찾다 예매를 했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예매한 '왕과 사는 남자'를 보러 아이들 그리고 시아버지와 함께 영화관으로 갔다. 아버님은 꽤나 오랜만에 극장에 가는 거라고 하셨다. 사극에다 12세 관람가라 가족 영화로 손색이 없는 영화여서 넷이 나란히 자리에 앉아 셀카도 남겼다.(나중에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니 아버님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어느 분이 같이 브이를 하고 찍으셨더라ㅎㅎㅎ 한참을 웃었다!)



이홍위와 엄흥도와 한명회와 매화, 태산이와 막둥이와 마을 사람들.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는 애끓는 역사, 그 끝을 향해 가는 여정 속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지. 배우들의 눈만 봐도 심연의 슬픔이 느껴졌다. 혈혈단신 홀로 남은 그 아이, 단종의 그 외로움을 부모의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되자 눈물이 마르지를 않는 것이다.

본래 슬픈 영화를 좋아한다. 그 속에 푹 빠져 펑펑 울고 나면 속이 되려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지 않나. 그래서 가끔은 슬픈 것들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나에게 그 목적에 너무나 부합하는 것이었다. 어떤 결말로 치닫는지 뻔히 다 아는데도 꺼이꺼이 오열에 가까운 울음을 쏟게 만드는 서사라니. 꽤나 오랜만에 느껴본 깊은 슬픔이었다. 감정을 가장 고조시켜 놓은 클라이맥스에서 끝맺음을 해버림으로써 그 여운이 관객들의 마음속에서 쉬이 가시지를 않게 만들었다. 장감독님 똑똑하세요...






며칠 동안 메이킹 영상이며 리뷰영상, 예능유튜브영상까지 온갖 왕사남 콘텐츠들을 빠짐없이 찾아보았다. 토요일 마라톤을 마치고 일요일 아침 재관람을 하러 간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지도. 혼영을 하려 했는데, 같이 달렸던 크루의 동생이 아직 안 봤다길래 함께 보러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N회차 관람을 한건 정말 몇 년 만의 일이다. 처음 볼 때 웃었던 장면에서 똑같이 웃고, 울었던 장면에서는 더 많이 울었다. 엉엉 소리 내서 울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내가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러 온 이유는 더 슬프고 싶어서였다. 그의 생이 그렇게 짧아서 슬프고, 그 삶의 가는 길이 너무 애달파서 슬프고, 그리 되어야만 해서 슬펐다. 실로 오랜만에 완벽한 슬픔을 만났다, 여운이 너무 오래가는.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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