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닝클래스에서 배정된 조의 훈련을 제법 잘 따라갔다. 심박이 올라가고, 다리에 젖산이 쌓여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면 이내 '이 정도면 됐어'하고 포기하고는 했던 과거의 나는 없다. 호기롭게 신청해 둔 상반기의 몇몇 대회들이 조금씩 기대되기도 했다. 작년의 나보다 한 살 더 먹기는 했지만 더 열심히 뛰었으니, 체계적으로 훈련도 했으니 더 잘하는 게 이치에 맞을 것이다. 맞아야만 한다.
지난 토요일, 낮 최고 기온이 무려 17도까지 올라갔던 토요일 아침 동계국제마라톤대회가 열렸다. 딱 1년 전 내 인생 최장거리 달리기에 도전했던 대회. 무려 32.195km를 달려야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바람이 꽤나 세게 불었더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빠른 페이스로 거의 끝까지 크게 퍼지지 않고 달려냈다. 너무 힘들거나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더랬다. 그때 풀마라톤을 뛰었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기량이 참 아깝지만 이미 떠나가버린 버스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내 두 다리가 달린 시간을 믿고 다시 한번 그때의 기록에 도전할 것이다. 챗GPT와 제미나이를 넘나들며 내가 어떻게 달려야 할지 코치를 받았고 나는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다. 둘러싸고 있던 은박지를 벗어던지고 신호에 맞춰 달려 나갔다.
5,4,3,2,1 출발!
최근 내가 제대로 뛰지 못했던 대회의 패턴을 살펴보면 초반 오버페이스 이후 급격히 퍼져 중반 이후 다리가 잠긴 양상을 띠고 있었다. 한번 느리게 맞춰진 페이스를 올려 빌드업으로 달릴 자신이 없던 터라 목표한 페이스로 밀어 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시작페이스보다 15초 정도 빠르게 10km 정도를 뛰고 나자 다리가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뛰어야지,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계속 스스로를 다그쳤다. 아직 20km도 넘게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부정적인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유체이탈 작전을 펼쳤다. 넌 지금 속고 있는 거야, 아직 그렇게 힘든 속도가 아니야라며. 그런데 다리는 그게 아니었는지 도통 가벼워지질 않았고, 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었던 고관절의 통증도 시작되었다. 대체 왜 못 달리는 거야 나는!!!
작년 이 대회가 약 1km 정도 거리측정 미스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내 기록은 작년 대비 6분 정도 늘었다.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페이스는 아직도 나에게 무리인 건가 싶다. 나에게 가장 미스터리인 것은 체계적인 훈련이나 수업 등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왜 지금 더 못 달리는가 하는 것이다. 누가 좀 알려주세요, 대체 저는 왜 이러는 걸까요...
상반기에 신청해 둔 대회는 10km, 하프, 풀마라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를 참 과대평가했다 싶다. 이렇게 또 결과에 연연하기 시작하면 달리기가 재미없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까진 '결과 따위 괜찮아'할 자신이 없다. 조금 더 잘 달려보고 싶다. 내가 원하는 기록이 아주 거창하지도 않다. 그저 이전의 나를 한 번쯤 뛰어넘어보고 싶을 뿐. PB의 달콤한 맛을 한번 더 느끼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