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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길치가 달리면

by 심바

작년까지의 나는 주로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했다.

접근성이 좋기도 했고, 날씨의 구애를 받지 않고 언제든 달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길치이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가게를 들어가면 나와서 온 길을 다시 5분쯤 걸어가다 '어.. 이상하다?' 하고 돌아가는..




지난 5월 12일, 하프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장거리 연습을 해보고자 한강으로 나갔다. 동작역에서 출발해 반포대교를 지나 한강을 건너 다시 돌아오는 것이 목표.

5km 정도까지는 몸이 좀 무거웠지만 이내 조금씩 가벼워졌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한강을 가로지르자 전에 보지 못했던 예쁜 길과 공원이 나왔다. 늘 같은 길을 달리면 익숙하긴 하지만 지루한 면도 없지 않은데, 전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나오니 눈이 즐거워짐과 동시에 달리기가 더욱 재미있어졌다.


지나가는 러너에게 파이팅도 외치며, 행인들의 파이팅에 감사인사도 해가며 신나게 달리던 중 저 멀리 웅장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롯데타워.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은 동작역인데.. 난 분명 한강을 건너서 내가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중인데...

롯데타워가 보인다는 건 잠실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

그것은 내가 출발한 곳과 정 반대라는 것.

부랴부랴 휴대폰을 꺼내 길 찾기 앱을 켰다.

나는 정확하게 잠실대교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길치에게 혼자 야외 러닝은 위험해...


하지만 새로 얻은 즐거움이 있다.

긴 러닝 후 대중교통을 타고 출발지로 돌아오는 편안함의 맛을 알아버렸다. 의외의 소득!


지난주 같은 코스로 러닝메이트와 함께 한번 더 달렸다.

잠실대교를 향해 맹렬하게!

게토레이 한 캔을 원샷하고 시원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부지기수다.

그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은 나의 선택.


이 15km의 러닝코스 이름은 <용감한 길치>로 지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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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