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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타인에겐 익숙한 나에겐 새로운

by 심바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정수리 한가운데로 타들어갈 듯 내리쬐는 햇볕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엔 어디든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작렬하는 해를 찾아서.


그날은 모처럼 날씨가 좋았다.

장마를 앞두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중이라 이렇게 해가 쨍한 날은 나에게 귀하디 귀한 날. 그리고 어디라도 나가야 했다.



어젯밤 자기 전에 챗GPT에게 관악산과 비슷한 주변의 산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우면산은 너무 동산 같고, 북한산은 아이들 하교 전에 돌아오기엔 좀 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계산을 추천받았다. 청계산입구역은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군.

고민할 것 없지, 가자 청계산으로.

"청계산이 처음인 길치도 문제없을까?"

마지막으로 챗GPT에게 한번 더 물어보고 등산화 끈을 조여 맸다.






아침 9시. 등교와 출근 인파들이 학교와 사무실에 자리 잡았을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은 덜 붐볐다.

청계산입구역에 도착하니 여러 아웃도어 브랜드의 광고가 여기저기 걸려있었고,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듣던 대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어서 그런지 원터골 입구까지 찾아가는 것도 쉬웠다. 그저 배낭을 멘 앞사람만 따라가면 되는. 게다가 나처럼 혼자 등산을 하러 온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초행길에 혼자라 약간은 긴장되었던 마음에 여유를 한숨 불어넣고 청계산 등산을 시작했다.

청계산은 여러 개의 봉 정상들이 연결된 능선형 산이라고 한다. 매봉은 그중 인기가 많은 봉우리 중 하나. 약 582m의 높이로 계단길 위주의 등산로라 초보 등산객들에게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코스 중 하나라서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쉬운 길이라고 해도 초행길이니 가장 안전한 곳으로.

원터골에서 출발해 매봉으로 올라보기로 했다.


내 앞에 혼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찬찬히 산을 오르는 한 여자분이 계셨다. 마음속으로 오늘 내 등산 페이서로 낙점. 천천히 뒤를 따르며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비된 등산로. 궁금할 때마다 알맞게 세워져 있는 방향 표지.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요즘 등산을 할 때 오디오북을 종종 듣는 편이다. 오늘도 역시나 반쯤 남은 오디오북을 들으며 산을 오르고 있는데, 한쪽 귀가 간지럽다.

'짹짹짹'

평소 잘 듣지 못하던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오디오북 음성을 뚫고 귀에 꽂힌다.

맹렬한 지저귐. 이렇게 울어도 이어폰을 꽂고 산을 오를 거냐고 묻는 듯하다. 살포시 바지 주머니에 이어폰을 넣고 다시 산을 오른다.



관악산만 다니다 청계산에 오니 새로운 풍경들이 눈에 가득 찬다. 바위와 돌보다 풀과 나무가 훨씬 더 많은 느낌.

식집사인 나는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연두 초록 청록 이 초록 트리오가 내 눈도 마음도 평안하게 만들어준다.

이 고요하고도 역동적인 색이라니.

행복은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등산객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드디어 매봉에 올랐다. 잘 정비된 데크에 자리 잡고 있는 매봉의 정상석은 관악산의 그것과는 또 다른 귀여움이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던 앞선 일행에게 조심스레 사진을 찍어주십사 부탁해 본다. 혼자 잘 다니려면 이 정도의 '부탁력'은 필수. 사진이 잘 나와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멀리 터줏대감처럼 앉아있는 얼룩고양이 한 마리(인 줄 알았지만 두 마리)의 사진도 한 장 담아본다.



하산은 등산보다 더 빨랐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고 계단이 많은 편이어서 그런지 무릎에 무리도 가지 않았다.

총 등산시간은 1시간 58분.

쉬지 않고 올라서 그런지 예상시간보다 덜 걸렸다.

첫 청계산 등산은 매우 성공적!


물로 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아이스라테로 날려버렸다. 에어컨샤워를 받으며 마셨더니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극강의 시원함을 얻을 수 있었다. 점심은 살얼음 가득한 열무동치미국수. 오늘 대체 몇 번 더 행복할 거야!!



나는 아마 당분간 청계산을 짝사랑하게 될 것 같다.

혼자, 때로는 같이 여기저기 여러 봉우리를 올라보아야겠다.

이 예쁜 산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참 감사한 올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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