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개.
우리 집 베란다에서 키우고 있는 화분의 개수.
선인장도 기어코 식물별로 보내고야 만 십여 년 전의 나는 어쩌다 초록이들을 이렇게나 많이 키우게 되었을까.
시작은 7년 전 이사를 하면서 선물 받은 아레카 야자 화분이었다. 뾰족뾰족하고 풍성한 잎이 매력적인 데다 공기정화식물이기까지 한 그 아이를 집안에서 키웠는데 어쩐지 시들지 않고 잘 자랐다. 잎이 윤기가 난다거나 수형이 예쁘게 자란다거나 하는 일반인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서 잘 자라준 것이다.
'죽지 않는 것 = 잘 자라는 것'
적어도 나의 공식 안에서 아레카야자는 훌륭하게 커주었다. 내가 기르는 식물이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른 식물도 한번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하지만 식물 하나를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보기에 예쁜 아이들을 무턱대고 들일 순 없었다.
'초보자가 키우기 쉬운', '잘 죽지 않는',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같은 검색어들의 교집합에 들어온 것들을 조심스레 하나둘씩 집에 들였다. 그럼에도 나의 무지와 노력 부족으로 식물별로 보낸 아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무난한 성격으로 우리 집과 나에게 적응을 해나간 식물들이 하나둘 늘어 지금의 식물 가득한 베란다가 되었다. 발 디딜 틈 없이 온갖 신기한 식물들로 가득한 다른 식집사들에겐 비할바도 못되지만 나의 능력치 안에서는 최선을 다한 지금의 플렌테리어!
지난해에는 같은 아파트 내에서 앞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센터 견적을 받으며 화분을 옮겨주는 것에 대해 물었다. 개수도 양도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저희가 화분이 깨지지 않게 옮겨드릴 수는 있어요. 그런데 나무는 부러질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해주셔야 해요."
네? 화분은 깨져도 되지만 나무는 부러지지 않아야 하는데요...
하지만 이삿날 짐을 옮기시는 분들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그건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삿날 나는 손바닥만 한 수경재배화분부터 내 키보다 큰 여인초화분까지 우리 집의 모든 화분을 3시간 동안 하나하나 앞동으로 옮겼더랬다. 손으로도 들고 옮기고, 카트로도 실어 나르고... 화분도 깨트리지 않고, 나무도 부러뜨리지 않는 방법은 오직 그것밖에 없었다.
별도의 인테리어를 하지 못한 앞베란다에 데크를 주문해 하나하나 조립해 설치하고 화분을 예쁘게 배열했다. 미리 주문한 전구색 조명을 켜주니 내가 집이 더욱 싱그러워지는 것이다. 이 맛에 식물 키우지!
이사 후 초대한 동네 엄마는 자기 친정엄마집 같다며(대게 어르신들이 집에서 화초를 많이 키우시니까) 저걸 어떻게 키우냐며 놀랐다. 칭찬인지 늙은이 같다는 말인지 아리송했지만 뭐. 내가 좋아서 키우는 거예요, 흥!
쪼르르르르.
볕이 좋은 날이 며칠 이어진 후 화분에 물을 주면 들을 수 있는 나만의 ASMR.
아이들도 남편도 다 바삐 떠난 아침, 커피 한잔 내려놓고 화분들에게 물을 주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힐링타임이다. 지식보다는 의지가 더 충만한 만년 초보 식집사가 주는 물을 7년 동안 먹어온 우리 집 초록이들은 이제 그들이 적당히 알아서 자라주는 것 같다. 며칠 물 주기를 깜빡 잊어 줄기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다가도 미안하다며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꼿꼿하게 서있다. 나를 안쓰러이 여겨 '그냥 우리가 알아서 잘 자라주자!' 하는 듯한 느낌으로.
오늘도 잡지를 보다가 시인 서한영교의 인터뷰 속 한마디가 눈에 걸렸다. "시시한 일상을 잘 가꾸며 사는 사람", "요리나 청소 같은 삶의 작은 단위부터 잘 가꿀 줄 아는 사람"에 밑줄을 긋도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 태도의 말들 / 엄지혜 >
책을 읽다 고개가 절로 주억거려졌다.
삶의 작은 단위부터 잘 가꿀 줄 아는 사람.
나에게 그 단위는 초록이들에게 볕 좋은 날 아침 겉흙을 만져보고 물을 주는 것.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닐 수 있는 이런 시시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지금이 고맙다.
초록이들아, 앞으로도 쭈욱 나의 일상 속에 있어주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