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봉란 Oct 10. 2023

어디서 짜장면을 먹을지 고르는 어려움

10년 만에 다시 서울에 돌아왔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일

ⓒ호호에요



짜장면을 먹자고 하면 으레 가는 집이 있었다.


한자로 이름 새겨진 중식도를 보유한 미식가 남편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편의점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아들,

오빠가 바닥에 흘려놓은 초콜릿과 과자를 돌 즈음부터 집어먹으며 일찍이 단짠에 입문한 딸,

그리고 남이 차려주는 밥은 다 맛있는 나까지,

네 식구가 모두 좋아하는 식당이다.      


‘중국집’, 하면 당연히 양산박이지. 걸어서 5분. 손님이 많아 정신없는 점심시간에는 홀과 부엌과 배달 사이 어디 즈음에서 누군가 투닥투닥, 얼결에 튀어나온 욕을 삼키며 밀려드는 주문을 간신히 감당하는 날도 보였다. 여자 사장님이 교회 신자인데 유모차를 끌고서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기도를 다니시더라. 그래서인가 분위기는 투박해도 이 집의 짜장면과 탕수육 맛은 은혜롭다. 아멘.     


간혹 손님이 오거나, 아이들의 생일처럼 특별한 날은 차를 타고 5분 정도 나가 시청 공무원들이 모임 장소로 자주 이용한다는 아리원을 갔다. 이곳은 홀이 넓고 서빙하는 이모들이 흰 블라우스와 까만 펜슬 스커트를 입는다. 찬장에 진열된 술병들이 무심하게 허세 부리고 있고, 유리를 얹은 라운드 테이블과 화려한 식탁보, 그에 맞춤한 벽지는 20년 전이라면 꽤 고급으로 쳐줬을 것 같다. 조그마한 접시에 담겨 나오는 셔벗까지 먹고 나면 제대로 외식한 기분이 든다.      


서울을 벗어난 한적한 동네에서의 삶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순댓국을 먹자 하면 응, 토종순댓국. 돈가스는 응, 압구정 경양식이나 돈까스 하우스. 김밥은 응, 김밥천국 부곡점이나 희담김밥. 머릿속에 탁. 탁. 한두 개의 뚜렷한 답이 정해져 있었다. 이런 것이 바로 미니멀 라이프고 심플한 삶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디디와 제이



십 년 만에 돌아온 서울에서 처음 짜장면이 먹고 싶은 순간, 난데없이 맷돌 스위치에 전원을 켜야만 했다. 뇌는 갑자기 응? 왜 이런 일로 날 불러내느냐며 녹슨 자전거마냥 삐걱거리는 듯했다. 한쪽 창고에 묵혀두었던 온갖 중국집 데이터들이 천천히 업로드되었다.      


어디 보자.      


신촌에서 청년 시절을 보내며 가장 흔하게 동기 모임을 했던 곳은 복성각이었다. 여기서 기억나는 건 유니짜장! 차별점은 반숙 계란 프라이를 올려주는 것이었다. 매콤한 사천짜장도 고등학교 때, 선배가 여기서 사줘서 처음 먹어봤었다. 십 대부터 겹겹이 쌓인 지난날이 저절로 떠올랐다. 위치도 가물가물한 신촌의 뒷골목을 향해 걸었다. 머리로는 잘 생각나지 않았는데, 걸음이 몸을 인도했다. 그렇게 도착한 식당은 타임캡슐처럼 거기서 그대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도착해 보니 유니짜장 메뉴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잘 되는 것 같았다. 대학생보다는 중년의 손님이 많은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 우리 때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같은데. 내가 애 엄마가 되어 다시 찾아온 고객이 되었듯, 이분들도 다 그렇게 20년씩 계속 인연이 이어져 온 손님들일까?      


서울에 많고 많은 빵 맛집들이 있음에도 어르신들은 태극당과 리치몬드 제과점을 찾는 것 같은 이치랄까. 리치몬드에는 확실히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다. 그들만의 핫플인 셈이다. 젊을 때 연인과 함께 왔던 곳일 수도 있고, 리즈 시절에 장발을 하고 나팔바지를 휘날리며 드나들던 곳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먹는 것은 중요하고, 추억도 그만큼 중요하니까.

     

회상에 배불러 식당을 나오자마자 나는 다음번에 갈 짜장면집까지 미리 고민했다. 물망에 오른 곳이 여럿 있었다.      


신촌의 또 다른 뒷골목 한자리를 차지한 완차이. 여기 짜장면이 기막히게 맛있어서 첫째를 가지고 입덧으로 말라갈 때 한 젓갈만 먹고 말 것을 알면서도 1시간 넘게 걸려 찾았던 곳이다. 중독성이 있는 매운 홍합 볶음도 늘 그런 식이었다. 나 같은 맵찔이는 두 술 뜨고 나면 숟가락을 내려놓게 돼서 꼭 일행을 데려가 함께 먹는 별미다. 쫄깃한 찹쌀 소고기 탕수육은 회사에 먼저 취직한 친구가 사줬었다. 늦게 취업한 나는 여러 명에게 얻어먹었었다. 여름이면 맛볼 수 있었던 중국식 냉면은 요즘도 하나 모르겠다.     


연희동 이화원은 굴짬뽕이 맛있는 곳이다. 위의 두 곳이 근처 유료 주차장에다 차를 대고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면, 이화는 발렛파킹이 되는 간편함이 있다. 이곳은 좀 더 고급진 느낌으로 어른들을 모시고 가서 맛있게 먹고는, 어른들이 혹여 가격을 아시면 무슨 짬뽕을 만원 이상 내고 먹냐고 꾸중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만큼 신선한 해물이 가득 들어가 있어서, 해물 파스타보다 싸게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외식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요즘 애들이 이런 거 먹느라고 돈을 못 모은다 생각하실 거다.      


이 외에도 신촌의 터줏대감 난향, 연남동에서 화교출신이 하는 검증된 맛집 진미, 전화 예약 승률이 하늘에 별따기라고 해서 한 번도 못 가본 목란 등 순식간에 과도하게 많은 경우의 수가 내 앞에 펼쳐졌다. 이건 어디까지나 검색 한 번 안 해 본 경우다. 맛있는 건 다 한양에 몰려있는 것인가.      


ⓒ에스더 드보라맘





점심을 해결하고 배 두들기며 집에 돌아가는 평범한 행복 앞에서 헛웃음이 났다. 짜장면 한 그릇 먹는 거로 되게 고민했네. 실은, 수많은 선택지가 내 앞에 있다고 두 배로 행복한 것은 아닌데. 서울 짜장면집에서 먹은 게 세 배로 맛있는 것도. 내 삶의 질이 네 배로 수직상승한 것도 아니다.      


원래 서울에 살았던 사람들은 열 가지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는 환경이 익숙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다양한 선택지가 낯선 삶에도 만족하고 나니 되려 넘쳐나는 메뉴판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날도 올 수 있겠다, 싶다. 오늘은 짜장면 영역의 데이터가 복구된 거지만, 병원이면 병원, 학원에도 영어, 수학, 피아노 등등. 분야별 정보의 바다에서 저마다 여기에요! 외칠 것이고, 나는 그중에서 또 최고의 것, 유일한 것을 찾아보겠다고 얼마나 애쓰겠나.


이사 온 후 짐정리와 서울살이 적응하느라 많이 바빴다.

오늘 보니 유독 마음이 더 빡빡하게 느껴졌던 것은 절대적인 시간부족 때문만은 아니었구나.




역시,


서울이다.

    








+ 추신

짜장면 맛집 리스트를 적기 위한 상업적인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어떠한 금전적인 협찬도 없는 내돈내산입니다.

리뷰의 목적은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중국집 소개에 너무 열중했군요.     

이전 04화 굳이 애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