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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란 Oct 12. 2023

굳이 애쓴다

서울에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시어머니 선물을 사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그녀가 까다로워서가 아니다. 시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평범한 할머니이신데 도시에만 살았던 내가, 노년의 삶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내가, 그녀의 필요를 알기는 쉽지 않다.           



어른에게 가장 무난하게 건넬 수 있는 건강보조식품을 드렸다. 그런데 몸에 안 좋은 걸 드실 일 없이 날마다 밭에서 나는 온갖 싱싱한 채소를 골고루 드시는 어머님께 효능도 불분명한 캡슐이나 진액들이 얼마나 더 좋을지는 솔직히 알 수 없었다. 화장품을 사드렸더니 그 다음번 명절 때까지도 양이 별로 줄지 않은 채 구석 어느 바구니에 먼지와 함께 방치되어 있었다. 내 돈 주고 사진 않지만 누군가 사주면 입을 수도 있는 예쁜 속옷을 건넸더니, 아주 단번에 이런 건 안 입는다고 가져가서 너 입으라고 하셨다. 예쁜 옷을 선물하면 좋아하시긴 했는데, 매일 밭에 나가시니 일 년에 몇 번이나 그 옷을 입으시는지는 미지수였다.

정말로 어머니는, 돈 외에는 필요한 게 없어 보였다.

          









처음 지방으로 이사했을 때는 쉬는 날마다 서울을 뻔질나게 다녔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아이쇼핑을 할 때, 무얼 먹고 싶을 때도 왠지 그 지역에 있는 건 성에 차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대학 다닐  체대생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더분함의 대명사였는데, 이곳에 오니 모든 것이 좀 뒤처져 보였다. 꽃집에 가서 꽃다발을 하나 사도, 뭔가 부족해 보였다. 세상에, 꽃은 웬만하면 다 이쁠 법도 한데, 꽃 색깔의 조합이 어딘가 조화롭지 않거나, 저 어여쁜 꽃을 어떻게 저런 포장지를 쌀 수 있는 건가 경악했다.      



그런데 지방에 10년 동안 눌러 산 어느 날, 외출하는 내게 남편이 대뜸 그런다.


“옷 좀 사지? 진짜 못 봐주겠다.”     


아! 그러니까 그날은 지인의 결혼 선물을 사러 지방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에 행차한 날이었는데, 수년 전에 나름 멋 부리려고 산 멋쟁이 갈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로퍼도 갖춰 신었다.

아! 그런데 문제는 평소 복장과 믹스매치의 실패에서 일어났다.

아! 그러니까 나는 언제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서서히, 갈수록, 시골에 사는 우리 시어머니처럼 예쁜 옷도 별로 필요가 없고, 조이는 속옷은 절대로 입지 않으며, 재래시장에서 살 수 있는 만 원짜리 페이즐리 무늬 몸빼의 매력에 빠져서, 원래는 집에서만 입어야지 했다가, 그 헤어날 수 없는 편안함 때문에,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그것을 입고 덤덤히 외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모한 것이다.

아! 그런데 그 몸빼와 로퍼와 트렌치코트 사이에는 기묘한 텐션이 발생했다.      



차라리 오롯하게 순수한 할머니 패션이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입던 수유복과 재래시장룩과 트렌디함 한 조각을 짬뽕시켜 놓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해괴망측한 코디가 되고 만 것이다.      



남편은 장난스레 핀잔을 주었다. 혹시 지방 사람들을 무시하는 거냐. 어떻게 이렇게 이상하게 입고 다닐 수가 있느냐. 이러면 남편인 자신을 욕할 수도 있다나. 가장이 얼마나 돈을 안 주면 저러고 다니겠냐고 할 수 있대나 뭐래나.      


@amaliemoosgaard


내가 패션 테러리스트가 된 것은 육아하며, 아줌마가 되어 나를 돌보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물건으로 비유하자면 디자인의 측면과 본질적 기능, 편리성이라는 면들이 존재한다면, 나는 생명을 키우고 길러내는 삶을 살아내느라, 삶에서 부차적인 것들을 하나씩 가지치기하고 있었다. 



옷은 중요 부위를 가리고 체온을 유지하고, 집안일을 할 때 편안하고, 아이와 부비고 뛰어다니고, 뭐 묻혀도 손쉽게 세탁할 수만 있으면 될 일이었다. 구두는 혹시 모를 경조사에 대비해 남겨놓은 10년 된 구두 하나가 다였다. 화장은 스킨, 로션도 뜨문뜨문 발라 1년에 한두 번 사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이, 이대로 동네에 나가도 내가 뭔가 부족하다거나 부끄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책하러 나가면 편안하게 다니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이고, 나와 처지가 비슷하게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는 무난한 일상복의 부모들이 있었고, 학생들은 앳되고 아름다웠지만 나와 비교할 대상은 아니었다. 더 이상의 사고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에 다시 이사하고 보니 일단 옷부터 한바탕 사야 할 것 같다.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인구가 비교할 수 없이 많기도 한데, 인구 구성에서 젊은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냥 어린 학생 친구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젊음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들이 다양하다. 지방에서 보던 풍경과 사뭇 다르다.



전체적으로 좀 더 차려입은 모양새라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절대적인 나이뿐 아니라 젊어 보이고, 자기 관리를 잘한, 세련되게 꾸미고 곱게 가꾼 ‘젊어 보임’이 있다. 노력하고 신경 썼다.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나도 실제 나이보다 더 어려 보여야 한다는.      








지하철역 근처의 큰 빌딩 간판과 상점들은 그 도시의 수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살던 곳보다 확연하게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정신과, 피부과, 성형외과, 필라테스 짐이다.      



예전에 어느 할리우드 배우가 방한해서 서울에 온 소감에, 사람들이 다 옷을 잘 입어서 놀랐다고 한 인터뷰가 생각났다. 반대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지인들 말이 미국을 가든 독일을 가든, 박스티와 소박한 배바지 패션을 보며 선진국 스타일을 다시 보게 됐다고...



일단 나는 10년 전에 서울에서 잘 다니던 단골 보세집에 가서 기본 아이템부터 샀다. 하나로 질끈 묶던 머리를 매직으로 폈으며 희끗희끗한 새치를 가리기 위해 염색을 했다. 눈이 약한 편이라 염색을 최대한 미루고 있었고 지방에 있을 때는 머리를 건강하고 굵게 해 준다는 자연산 헤나로 물들여본 적은 있는데, 색깔이 좀 애매했다. 이번에는 진브라운으로 탈바꿈해 노화를 확실하게 가렸다.      



미백과 주름에 좋다는 안티에이징 화장품을 한 번 검색해서 들어갔더니, 그다음 날부터 핸드폰으로 무엇을 접속해 들어가건 그와 관련된 상품들을 자꾸 추천해 댔다. 콜라겐도 챙겨야 할 것 같고 뮤신도 먹어줘야 할 것 같았다.      



건강을 위해 운동 하나 해야지, 해야지 몇 년째 미루던 것도 드디어 등록했다. 발레핏 강사 선생님은 중학생 아들이 있다고 해서 분명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확실한데 몸이 너무나 탄탄해서 감탄했다. 그녀를 보며 나도 늘어진 배에 힘을 잔뜩 줬다. 아직은 힘을 주면 가릴 수 있는 정도라, 퍼져있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에 사는 자기 관리의 대가들에게 배워야 한다.



화장대 위에 몇 개 안 되던 단출한 화장품이 갑자기 4열 종대로 늘어났다. 항산화를 위한 비타민을 내 돈 주고 처음 사봤다. 뷰티 유튜버가 추천하는 다양한 영양제를 쟁였다. 왜 이렇게 필요한 것이 많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서울살이 적응을 위해 애썼다.



마음이 분주해진다.

지갑이 얇아진다.


그러다...


잠시 멈추어 생각한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월든




미니멀 라이프의 원조, 미니멀리스트의 시조새 소로우를 떠올렸다. 그가 도시를 떠나 숲 속에 들어가 깨달은 지혜를 나도 배웠었지.


인생의 진액을 남기기 위해

덜 중요한 것은 포기할 줄 아는 삶.

젊음과 건강을 위한 자기 관리만큼이나 고귀한

내 안의 촌티!


지방에서 배운 것이다.

잊어버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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