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길을 물어보는 이가 있었다. 복이 많게 생겼다고 갑자기 화제를 전환해서 당황했다. 어떤 이는 은근슬쩍 다가와 설문지를 해 달랬다. 순진하게 종이에 체크를 다 하고 나면 돌연 이상한 말을 했다. 한발 늦게 직감했다. 아! 사이비구나. 로맨스적인 차원에서 접근해 온 경우는 중학교 때 딱 한 번 있었는데,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생이 쪽지를 주고 지나갔다. 설레기보단 무서웠다.
살면서 쌓인 경험의 결은 우리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서울 사람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걷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는 가르침을 받아서일까? 무의식의 작동이든,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이든, 타인의 접근은 유익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같이 묻지 마 살인 사건을 뉴스에서 본 날이면 더더욱. 그러니 모르는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외면하는 것이 맞다. 수많은 이의 옷깃이 스쳐도 결코 인연 없는 곳이 서울이다.
그런데 서울을 벗어나 살았던 나의 동네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수시로 말을 걸어왔다. 아마도 아기를 낳은 후라,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 아이가 뿜어내는 사랑스러운 생명 에너지 때문인지 자석에 이끌리듯 어르신들이 모여들었다. 오래된 빌라 단지를 산책하는 날이면 예외 없이 말을 섞었다.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묻는 기본적인 물음과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는 식상한 오지랖은 기본이었다. 그러고 나면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본인의 손주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집안의 누구네는 이혼을 해서 힘들다는 안타까운 사연까지. 붙잡히지 말걸,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어떨 때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너무 맛깔나서 재밌게 들었다.
그런 한가로운 분위기에 발 담그고 첫째와 둘째를 키웠다. 그런 슬렁슬렁함 속에서 첫 아이가 열 살이 되었다. 한 아이가 누워만 있다가, 기어 다니다가, 걷다 뛰다 공을 차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성장을 하는 동안 나는 거꾸로 뛰다 걷다 이제는 푹신한 리클라이너 의자에 편히 기대앉은 마음이 되었다.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기에 ‘정서’를 이루는 감각이 슬 이완됐다.
나도 ‘촌사람’이 된 것이다.
친정엄마를 방문하느라 서울에 잠시 왔을 때의 일이다. 매서운 한파가 대단했던 날이다. 마을버스를 탔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줄 줄이었다. 전업주부로 산 시간이 오래라 직장인들을 부럽게 관찰하는데, 어느 중년의 여성분이 눈에 띄었다. 그녀의 몰골은 이 버스를 놓쳐서 회사에 늦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력을 다해 올라탄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후끈거리는 입김을 내뿜는데, 물기를 가득 머금은 머리카락은 가닥가닥 고드름처럼 뻣뻣했다. 가만있어도 오돌오돌 떨리는 영하의 날씨인지라, 보는 나는 그녀가 걱정되었지만, 당사자는 자기 체온을 자각하지 못하는 듯 핸드폰만 확인했다. 버스 안에서 달리기라도 하고 싶은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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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특히나 더 바쁜 출근 시간대에 너도나도 앞으로 직진, 전진하고 있는 그 시각, 나는 까마득히 먼 나라에서 온 존재가 되었다. 촌사람의 욕구가 꿈틀거렸다. 인간적인 측은지심이 발동해, 괜히 말을 걸고 싶었다. 그녀에게.
“추워서 어떡해요. 감기 조심하셔야겠어요.
공중 화장실에 손 말리는 핸드 드라이어 있잖아요.
거기 아래서 머리 좀 말리시면 어떨까요?”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오지랖 욕구가 목구멍에서 삐져나오려 할 때, 나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아니지, 아니지! 여긴 서울이야.
낯선 사람에게 말 걸면 안 돼! 참아야 해!
그녀를 향하는 강렬한 눈빛만은 거두지 못한 채 따스한 기운의 장풍을 쏘았다. 물론 그녀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이 세상에 텔레파시 같은 건 절대 없음이 확실했다. 나는 무언의 소통을 포기했다. 애써 신경을 끄고 창밖만 보다가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
내리려고 문 쪽으로 다가가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녀도 같은 정거장에서 하차하려 준비하는 게 아닌가! 어느 광고에서 예쁜 여자가 남자에게 “저, 내려요...”라고 얘기할 법한 찰나에 입 밖으로 한 마디가 기어코 새어 나왔다.
“너무 추우시겠어요”
그녀의 머리를 가리키며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그 말만 툭 던졌다. 주변에 있던 어르신 두 세분이 함께 동조했다.
“얼어 죽을 날씨야.”
“모자라도 써요.”
아하! 주변에 있던 어르신들도 나처럼 간신히 참고 있었던 게로구나.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함께 내렸고, 우리는 각자 갈 길로 향했다. 그녀에게 건넨 찰나의 관심이 도움이 됐을 리 만무하지만, 어쩌다 마주친 한 사람을 물체가 아닌 온기 품은 생명체로 느끼는 내가 좀 좋았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방학 기간에 잠시 스페인에서 머물 때의 일이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또 길거리 산책을 하다가도 가볍게 “올라!”라고 인사했다. 눈길조차 건네지 않고 쌩 지나가던 나는 처음엔 멈칫하고 멀뚱거렸다. 부모님 없이 오롯이 혼자 타국에서 지내는 중이었는데, 누가 뭐라 하지 않았음에도 뭔가 내가 가정교육 못 받은 아이처럼 구는 건가 싶었다. 스페인에서 한 달 살기가 끝나갈 무렵, 나도, 다른 스페인어는 몰라도 살며시 미소 지으며 “올라!” 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물론 서울에서 그렇게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길거리에서 모두에게 안녕하세요, 하려 한다면 온종일 인사만 오백팔십 네 번이나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제한된 기회를 잡기 위해, 목적한 바와 성취를 위해 죽을힘 다해 달려가는 젊은 도시에서 마음의 여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살기 위해 쓸데없는 것들은 과감히 흘려보내고 옆사람에겐 관심 끄고 오지랖 부릴 일 없이 건강한 개인의 삶을 최우선으로 추구할 때, 타인을 위한 여유까지지우지는 말길.
여기,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거든요.
+ 추신.
오늘은 옆집에 사과 두 개만 건네볼까요?
어느 날은 호빵이, 또 다른 날은 귤이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무더워진 한여름에, 곤란하게 수박 한 통이 냉장고에 다 들어가지 않는다고 고민할 것 없이 옆집과 수박을 쪼개먹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