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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란 Oct 14. 2023

서울깍쟁이와 촌놈이 만났을 때

사람을 두 부류로만 나눌 순 없지만

서울사람이 보는 한국 지도


물론 내가 서울 토박이인 건 아니다. 본적도, 태어난 곳도 모두 서울이 아니다. 다만 아버지의 고향이 김포여서 특별한 시와 가까운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부터는 이 거대한 도시에 정착해 살았으니 나를 일컬어 서울 사람이라고 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본인을 스스로 ‘서울깍쟁이’라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여우냐 곰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후자에 속하고, MBTI 유형으로 따지면 현실적이지 못해 평균 소득이 가장 낮다는 인프피가 바로 나다. 그러니 give and take의 셈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손해 보지 않는 삶을 대변하는 깍쟁이를 자신과 연결하지 못했다.      








어른이 되면서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다. 내가 본능적으로 지방 사람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지연을 따지고 부러 차별해 사귀었을 리 없는데, 신뢰하여 우정 혹은 사랑으로 발전한 이들 중 지방 사람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어느 음악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전국의 음악도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각자의 선생님들을 따라왔지만, 방 배정은 임의로 이루어져서 나는 우연히 부산 아이들과 한방을 쓰게 됐다. 서울의 같은 학교 친구들도 있었는데, 얼굴은 알아도 그리 친하지 않아서 데면데면했다. 1주일 정도 되는 캠프 기간에 굳이 따로 만나거나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았다.      



반면 나의 룸메이트들은 부산의 인싸였던 것일까? 우리 방에 부산 친구들이 여럿 찾아왔는데, 공유한 과거 하나 없었음에도 단숨에 친해졌다. 그들에게는 끈끈한 유대감과 결속력이 있었다. 샌님 같은 나는 그들의 거침없는 친화력에 전염됐고, 압도당했다. 며칠이 못 되어 부산 사투리까지 따라 하고 있었으니.     

일반화시켜 말하는 걸까 봐 조심스럽지만 어떤 전반적인 분위기가 달랐다. 서울 애들과 비교해 좀 더 적극적이라고 해야 할까. 나의 경계선을 살짝 넘어와서 안으로 포개 모은 손을 잡아 밖으로 끌어내는 느낌이었다. 그네들은 서울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었다. 호의적으로 다가와 내 말투를 따라 했고, 어색한 억양의 표준말을 하고는 자기들끼리 깔깔거렸다.       



또, 부산 친구들은 모험심이 강했다. 숙소에는 야외 풀장이 있었는데, 이용객이 거의 없었다. 각자 연습하고 레슨 받고 오케스트라 수업 참여하고 나면 자유시간이 많지 않아서 수영장은 있으나 마나였다. 하루는 부산 친구들이 밤에 수영장에 들어가자고 했다.      


“그래도 되나? 수영복도 안 가져왔는데...”

“수영복은 무슨. 그냥 옷 입고 잠깐 들어갔다 나오면 되는 거지!”  

   

친구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밤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암묵적인 질서가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나 같으면 아예 시도조차 안 했을 일을, 이들은 ‘왜 안돼?’, 하는 식이었다.       

    


패기 있는 친구들을 따라 밤 외출을 강행했다. 사실, 외출이랄 것도 없이 그냥 숙소 앞마당을 나가는 건데도 혼자 두근두근했다. 혹시 자는 사람들 깨우면 문제 될 수도 있겠다며 조용히 입수했다. 한여름의 수영장 물이 차가운 건 아닌데, 떨려서 그랬나 닭살이 돋았다.


가슴까지 오던 물에 온전히 몸을 맡겼다. 눈치를 보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이완된 몸과 연결된 마음도 어느새 헐렁하게 풀어졌다. 귀까지 잠기도록 물 위에 누웠다. 묵직한 고요함 속에서 올려다본 까만 하늘을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건, 쏟아지는 별들 때문이라고 식상하게 말하지 않겠다.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보려 대낮에 잔디밭에 누워본 일조차 없는 서울 애가 난생처음, 깜깜하게 깊은 밤에, 숲이 우거진 야외에서, 부력에 온몸을 맡기고, 우주의 한 면을 직관하다니!



설렘, 아니, 짜릿함, 아니, 전율, 아니….

실오라기만치의 얽매임도 없는,



자유.



자유!



자유!!          





이들과의 만남 이후로 부산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진하고 뜨겁고 멋지다는.        



 




지방 출신의 친구, 배우자 또 육아 동지를 오랫동안 깊이 사귀면서 느낀 몇 가지가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들에 비하면 나는 깍쟁이다. 기준을 누구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명제지만.      



흔히 서울 사람을 칭할 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개인주의 아닐까?



나는 동생과 나이 차이가 커서 외동으로 오래 살았던 과거와, 어린 시절을 잠시 미국에서 살았던 배경, 또 혼자서 고독하게 연습해야 하는 전공의 영향, 그리고 타고난 성품까지 더해진 완벽한 개인주의자다.     

 


누군가에게 해코지하거나 피해를 주며 살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선량한 시민인데, 촌사람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의 폭이 좁게 느껴진다. 남에게 부탁을 못 하는 성격 때문에 어떤 문제를 가지고 끙끙거리고 있으면 그이는 뭐 이런 일 가지고 말도 못 꺼내고 있었냐, 진작 자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그랬냐, 한다. 충분히 자기 삶의 일부를 떼어 내게 줄 의향이 있더라. 내 기준에서 그것은 폐를 끼치는 영역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흔쾌히 내 삶에 뛰어들어주더라. 이런 게 정이고, 인심인가 싶다.      



나만의 특징일 수 있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사람들은 상대에게 별 기대감이 없기에 서운할 일도 없다.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통제의 욕구가 적다. 은 당연히 독자적으로 이어나가야 한다. 도움을 받는 것은 예외적이며 특별한 호의라고 생각한다. 원치 않는 타인의 침범은 거부한다.      



그런데 내어주는 마음의 크기가 큰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상대도 자기에게 그만큼 해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당연하다. 각자가 가진 표준이라는 것은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법이니까.     



일례로 나는 배우자가 나의 부모님께 살갑게 잘해 드리는 것을 볼 때, 감사하고 신기한 마음이 든다.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지방 출신의 내 배우자는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니 부모 내 부모의 경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나의 노력이 당연한 것이 되기도 하고 내 마음 씀씀이 분량을 초과하는 기대치를 충족해 주지 못했을 때는 서운해하더라.      

     


요즘 우리 부부는 10일째 냉전 중이다. 명절을 지나며 크게 다투었는데, 내가 고의로 악의를 가지고 행동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남편은 실망했단다. 어쩌면, 공부 못하면 열심히 해야 하고, 살이 쪘으면 빼야 하고, 가난하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논리처럼 개인주의는 이기심을 넘어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면 나는 공부 못하는 사람의 길이 있고, 살찐 체형도 존재하며 가난한 삶에도 의미가 있으니 나의 성향을 존중해 주길 바라고 있다.     

     




아무쪼록

지방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언제나 끌려했던,

여유와 넉넉함 넓음이 내겐 없어,

우리 부부의 침묵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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