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물놀이, 우린 비닐로 만든 공놀이
단팥죽이라는 계절 메뉴의 특성상, 여름이 오고 기온이 30도를 넘기 시작하면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가게의 에어컨은 웬만한 카페보다 더 빵빵하게 틀어두지만, 사람이 없다 보니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적막함 때문인지 더 춥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한가한 여름이 오면, 우리는 겨울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단일 메뉴지만, 겨울만 되면 부티 나게 잘 팔리는 게 바로 이 단팥죽이기 때문이다. 포장 주문이 몰릴 그 시기를 대비해 필요한 물품을 미리 챙겨 두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주문을 처리할 수 있다.
우리 단팥죽 포장은 전자레인지용 용기에 담고 뚜껑을 덮은 뒤, 비닐로 한 번 더 포장해 종이봉투에 담아드린다. 이 과정에 필요한 비닐은 여름처럼 한가할 때 미리 꺼내 접어둔다. 그래서 대낮에 손님이 뜸한 시간, 나와 이모들은 지정된 자리에 둘러앉아 비닐을 접는다. 말 그대로 단순 반복의 연속. 머릿속을 비워도 되는 작업이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평소엔 각자 바빠 마주 앉아 대화 나눌 틈조차 없었기에, 요즘 같은 시간은 오히려 소중하게 느껴진다. 조용한 여름 틈 사이로 피어나는 우리만의 수다 시간. 그렇게 하나둘 떠오르는 이야기들 사이로 비닐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비닐을 접다 말고 이모가 툭 한마디를 던지신다. “겨울 되면 또 정신없겠지. 그래도 나는 그 바쁨이 좋아.” 사실 나도 아직 단팥죽집의 겨울을 겪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이 여름의 준비는 단순한 포장을 넘어, 조금씩 그 계절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예열처럼 느껴진다. 올겨울엔 어떤 손님들과 마주하게 될까. 지금 접고 있는 이 비닐들 위로 따끈한 단팥죽 냄새가 퍼지고, 웃음 섞인 인사들이 오가길, 그리고 나도 이모들처럼 바쁜 겨울을 좋아하게 되길, 조용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