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채색, 이모들은 무지개색

비온 뒤 조용히 번진 무지개처럼

by 심동

50년 된 단팥죽집에는 유니폼이 없다. 각자 편한 복장으로 출근해, 본인 앞치마만 둘러메고 일을 시작한다. 제빵사라는 전문직으로 오래 일해온 나는, 늘 정해진 유니폼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계절과 시기에 따라 리뉴얼되는 모자, 옷, 앞치마까지. 단정하고 깔끔한 복장을 갖추는 건, 어찌 보면 일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 같았다. 그랬던 내가 자율 복장으로 일하게 되니, 막상 입을 ‘작업복’이 없었다. 무엇보다 일상복을 입고 일하는 내 모습이 어색했다. 그래서 결국, 예전처럼 나만의 작업복을 정해두기로 했다. 검정과 흰색, 무채색 계열의 익숙한 옷들. 복장이 정돈돼야 일에 집중이 잘 되는 기분이었고, 출퇴근의 경계도 자연스레 생기는 듯했다.


그런데 출근해 마주한 이모들의 복장은 언제나 밝고 화사했다. 디자인은 단정했지만, 색감은 눈부실 만큼 쨍하거나 선명한 원색에 가까웠다. 그 모습이 내 눈엔 낯설고, 또 낯설었다. 무채색으로 일하던 내 모습과는 극명한 대비였다. 그럴 때마다 이모들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들은 옷이라도 밝게 입어야 해. 너는 젊으니까 괜찮은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블랙으로 차려입은 내 모습을 보고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채색을 좋아한다는 건, 어쩌면 유니폼에 길들여진 습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조심스럽게 색이 있는 옷을 입고 출근해 보기로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이모들이 말했다.

“오늘 옷 예쁘다.”
“색 너무 잘 받는다.”

그 칭찬이 고마워서, 조금씩, 한 걸음씩. 어느새 나도 이모들처럼 밝은 색을 즐기게 되었다. 무채색 사이에 스며든 색처럼, 나도 서서히 밝은 결을 닮아가고 있었다. 내가 입는 색이 달라진다는 건, 어쩌면 내 마음의 결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떤 색으로 나를 물들여볼까, 이모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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