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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오리 Mar 11. 2024

기획자가 중세시대에 태어났다면

멋진 기사가 되리라!



자고로 기획자란

창과 방패를 동시에 들어야 하는 법.


무시무시하게 무거운 창과 방패를

양손에 각각 쥐어야 한다.


기획자가 되고 싶은 당신,

지금부터 홀딩하는 힘을 길러라.





기획자가 중세시대에 태어났다면



기사가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그것도 클라이언트라는 영주에게 종속된 종속기사.


여기에서 포인트는 종속기사다.


"종속"


영주가 원하는 곳으로 가서 창을 휘두르고 방패를 세우는 그런 기사.


요구사항 없이 움직이는 기획자는

한마디로 견습기사와 같다.


무조건 요구사항대로 만들라는 말이 아니다.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타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기획의 첫번째 일이니까.




기획자는 어딜가든 창과 방패를 소지해야한다.


방심한 순간, 일격필살!

공격에 속수무책 당할지도 모른다.


러면 그 프로젝트, 처음부터 다시 기획해야할지도.


그러니 당신은 늘 튼튼한 두 팔로 한쪽엔 방패를,

한쪽엔 창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들어라. 클라이언트가, 혹은 다른 기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제발 들어라.



기획서는 꿀이 채워지지 않은 벌집 같다.

육각형 구멍이 사방에서 보인다.


몰려든 꿀벌들이 그곳에 벌침을 욱여넣는다.


"저 케이스에서는 어떻게 진행하실 건데요?"


"그럼 다른 회원이 진입했을 때는 안 보여주실거에요?"


자자, 공격이 들어왔다.

이럴 때 당신은 방패를 들어야한다.


절대 어수룩해서는 안된다.

이미 창이 향하는 곳을 알고 있었다는 것마냥,


상대의 의견을 수긍하고 당신은 제안해야한다.


"다른 케이스도 우선 기존안이랑 동일하게 가고, 사용자 의견 수렴해서 개선해보려고요~"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하더라도,

당신은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온다. 그들에게서 쏟아진 모든 정보를 들고.



즉흥적인 입기획은 반드시 논리적 오류를 발생시킨다.


언젠간 반드시 터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숨가쁜 회의를 마치자마자,

당신은 자리로 돌아와 방패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재빠르게 창을 꺼내든다.


임기응변으로 답변했던 기획을 보강하고

잠깐의 자기 반성 시간을 갖는다.


왜 이런 케이스를 생각하지 못했는지 짧게 질책하고,

바로 기획서와 엑셀을 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전한다.




나, 이제 창을 들었노라. 이대로 내 말에 따르라.



방패를 들 필요 없는 기획서라면,

어느 누구도 대적하지 않는다.


기획에 아쉬운 점은 있을지언정, 기획이 틀리지 않는 이상, 구성원들은 감사하게도 협업에 동참한다.


그것만으로도 기획의 반은 성공이다!


그렇다. 놀랍게도, 기획은 진행이 반이다.


프로젝트가 '진행'만 되어도 당신은 업무의 절반 이상을 이룬 것이다.


스스로를 칭찬해라.



그 정도로 기획이란 허들이 높은 업무다.

진이 빠지기 쉽다는 거다.


그래서 기사처럼 당당해져야한다.

두 팔 가득 방패와 창을 든 채로.


그리고 들어라. 그들의 요구사항을.



그래서, 홀딩하는 힘은 어떻게 생기는건데



요구사항 기반으로 생각, 그리고 또 생각.


'기획'이라는 단어에서 엿볼 수 있듯, 기획자는 생각이 많아야 한다.


가끔 이 문장을 오독하는 기획자들이 많다.


생각이 많다는 건 발생할 사건의 나열, 그 사건의 우선순위 선발, 해결방법 고안, 방법에 대한 적합성 판별, 결과에 대한 개선안 등을 말한다.


서비스에 대한 허황된 상상이나 정돈되지 않은 잡념, 불안에서 기인한 확증편향이 아니라.



"A일 땐 어쩌지? B일 땐 어쩌지? C일 땐? D일 땐?"


"A를 누르면 당연히 Z까지 진입하겠지."


"여기는 A로 표시하고 여기는 B로 표시해야겠다. 그게 제일 보기 좋으니까."



기획에 당연한 건 없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너무도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다!


나한테 당연한 것도 저 사람에겐 초면이다.

그럴 땐 당황하지 말고 하나하나 설명해주면 된다.


그러면 상대가 되묻는다.


왜 이렇게 해야하는데요? -지나가던 개발자1

 

대표님이 시킨거라고 해도,

클라이언트가 요청한거라고 해도,


기획자는 "왜"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치밀하고 섬세한 언어로.


단순히 보기 좋아서, 그게 당연해서, 그 케이스가 발생할지도 모르니까,가 아니라.


철저한 근거와 논리에 기반해, 기획 의도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생각의 흐름을 하나하나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 생각, 판단을 모두 절차대로 나열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배송현황처럼 말이다.

2024-01-02 11:12:12 서울중구 배송중(김오리)
2024-01-01 13:32:43 곤지암 HUB 간선상차
2024-01-01 11:12:12 곤지암 HUB 간선하차
2024-01-01 01:01:43 택배사 입고  



그게 기획자의 역량 중 일부인,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사람을 설득하는 데에 F가 필요하다면,

 

'회사'사람을 설득하는 데에는 T가 필요하다.



"기존 사례로 보았을 때, A와 B케이스 발생률이 가장 높고, C와 D는 가능성이 낮다. A와 B를 먼저 진행하고 나머지는 요구가 있을 때, 고도화로 진행하겠다."


"A를 눌렀을 때, Z까지 진입하는 유저플로우를 보여드리겠다."


"다음 단계 진행을 위해선 A가 가장 눈에 잘 띄어야한다. B는 해당 화면에서 업무 우선순위가 낮아 배치를 바꾸겠다."


이런 생각 근육들이 쌓여 단단한 전완근을 만들어준다.


전완근이 굵어지면 창과 방패를 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





기사가 되고 싶은가?



그럼 기획자가 되어라.


팽팽한 싸움과 피말리는 전투, 일격에 당한 영광의 상처까지 모조리 겪을 수 있다.



누구든 이 전장에 오라.


그럼 당신, 정말 멋진 기사가 될 수 있다.


여러 영주들의 부름을 받는 그런 멋진 기사가!



방패와 창을 들 힘이 없어서 이만 패잔병으로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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