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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Mar 08. 2020

네덜란드, 국제적 네트워크의 출현

대서양 시대가 지금 우리에게 말하는 것

최근 <대서양 문명사>를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까지도 의미 있는 시사점이 많은 것 같아서, 약간의 편집을 거쳐서 공유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1장. 대서양을 향한 이슬람과 포르투갈의 도전

2장. 15세기 에스파냐의 번영과 몰락

3장. 네덜란드, 국제적 네트워크의 출현




Q. 네덜란드는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일까? 


네덜란드 영토 대부분은 대서양의 해저였다. 그래서 네덜란드인들은 끊임없이 이를 극복하고자 했고, 풍차와 댐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지형은 그들에게 천혜의 요새가 되어주기도 했는데, 에스파냐 군에게 포위되었던 시기에는 제방을 스스로 무너뜨리며 도시를 지켰다. 시간이 지나고, 이들은 '네덜란드의 금광'이라고 일컬어진 청어 잡이를 통해 세력을 키웠다. 당시 네덜란드 인구가 100만인데, 그 중 30만명이 청어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이를 위해선 엄청난 양의 선박이 필요했지만, 그들은 자국의 자원이 결핍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국의 자원을 주체적으로 활용하면 된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이를 해결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과의 무역을 통해서 막대한 선반을 구축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충분한 자원이 없다고 하더라도,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주변 자원을 잘 활용해서 무역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청어잡이 중인 암스테르담



Q. 네덜란드는 어떻게 대서양의 표준이 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테스탄트'라는 새로운 이념의 출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자유는 암스테르담을 낳은 어머니였다. 중세적 억압으로부터 해방운동이 진행되고 있을 때, 암스테르담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그 운동의 최전선에 위치했다. 또한 유럽 대륙의 참혹한 전쟁을 피해서 오는 피난민이 많았고, 그들 중에선 특히 자기 자본과 기술을 가진 상공인들의 숫자가 많았다. 그들은 이곳에서는 자유로운 부의 축적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와 인종적 용광로를 통해 '네덜란드인'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또한, 에스파냐로부터 유입되는 금과 은의 가치는 너무나 불규칙해서 불안정성이 높았는데, 이는 유럽 은행의 필요성을 낳았다. 암스테르담에서 어음제도가 만들어지고, 전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결국, 에스파냐와 네덜란드는 갈등은 어떤 결론으로 끝이 날까? 결국 30년 전쟁은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적 표준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프로테스탄트적 표준의 충돌이었고, 엄청난 사망자를 낳은 전쟁을 끝으로 페스트팔렌 조약이 맺어지는데, 이는 유럽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조약 중 하나다. 조약의 핵심은 "한 지역의 종교는 그 지역 통치자의 종교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럽은 신성로마 제국 황제에 의해 지배되는 관념에 종지부를 찍었고, 각 국가의 이념적, 종교적 경계가 뚜렷해지고 근대 국가가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앙집권적 절대주의 국가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이다. 네덜란드가 강대국이 되는 과정에도 수 많은 충돌이 있었지만, 결국 자유가 더 확대되는 방향으로 역사는 이끌려왔다. 자유를 열망하고 억압에 저항하는 것, 인간이 가진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베스트팔렌 조약


Q. 잘 나가던 네덜란드는 왜 쇠퇴하고 마는가? 


1625년에서 1675년, 최정상의 지위를 구사하던 네덜란드는 그 과정을 통해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고 프로테스탄트적 표준을 구축한다. 하지만, 동맹은 영원하지 않았다. 영국은 근대 해군을, 프랑스는 근대 육군의 표준을 정립하며 발전을 지속했다. 역설적인 것은 왕성한 금융 활동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금융업이 발전한 네덜란드는, 제조업 종사자에 비해 금리 생활자가 급증하였다. 그리고 안정적 금리 수입에 만족하며 모험적인 해양 사업의 투자를 꺼리기 시작했다. 국가나 비즈니스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본질을 잃으면, 쇠락은 금방 찾아온다. 


신대륙 경영의 실패도 큰 실책이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동인도 회사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반면 신대륙에서는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등의 선발국에 밀려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처럼 자체 자원과 인구가 풍부하지 않고, 중계 무역으로 발전했던 네덜란드로선 동아시아와 신대륙 모두를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금융업의 발전이나 확장 정책은 모두 본국의 단단한 기반을 필요로 하는데 다른 경쟁 국가에 비해서 네덜란드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수출 주도 전략으로 성장했지만, 그것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출과 내수가 균형있게 커야 강대국이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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