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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Jan 01. 2023

#6. 마스터피스, 사그라다 파밀리아

유럽 가족 여행기 in 바르셀로나 (2022.10.09~11)

지금까지의 여행기

#1. 파리 디즈니랜드는 뭐가 다른가

#2. 파리 뮤지엄 패스를 즐기다.

#3. 파리 세느강, 유람선 투어

#4. 당일치기 런던 여행

#5. 올해 마지막, 몬주익 분수쇼




[12일 차] 구엘 공원 그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오늘은 우리가 바르셀로나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우디 투어를 떠나는 날이다. 사실 우리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90%는 가우디 때문에 바르셀로나에 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만큼 천제 건축가 가우디의 입지는 공고하다. 처음 우리가 유럽 여행 계획을 짰을 때도, 프랑스 파리는 1순위였고 두 번째는 정해지지 않았었다. 어디를 갈까 논의하다가 재원이가 즐겨보는 위인전에서 가우디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었고, 또 관심 있다고 해서 바르셀로나로 정하게 되었다. 각종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가우디 건축물에 대해서 종종 다뤄지는데, 나 역시 흥미롭게 봤었고 한번쯤은 사그리다 파밀리아에 오고 싶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일찍 구엘 공원으로 향했다. 들리는 소문으론 10시 30분 이후에는 단체 관광객들도 많이 오기 때문에 번잡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9시 30분에 맞춰 입장해서 좀 더 여유 있게 돌아보고, 사진도 찍기로 했다. 지하철 역에서 구엘 공원까지 걸어가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인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오르막길이었다. 구엘공원 자체가 생각보다 높은 곳에 있는데, 걸어가면서 생각해봐도 굳이 부자들이 여기까지 와서 집을 지을 것 같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구엘 공원은 구엘과 가우디 그리고 변호사 딱 3명만 분양을 완료한, 성과적인 측면에선 대실패를 하게 되었는데 이야기만 들었을 땐 안타까웠으나, 실제로 올라가보니 공감이 되었다. 구엘 남작이 여러모로 대인배가 아닌가 싶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구엘 공원을 둘러보았다. 실제 관광지에 앉아서 가이드를 들으니 재미있더라. 서늘한 아침에 감자칩을 먹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긴 의자'로 널리 알려진 벤치에 옹기종기 앉아서 오디오 가이드를 들었던 경험이 아주 좋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것은 '자연 정수 시스템'인데,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모래와 기둥을 통해서 정수가 되고, 그렇게 모인 물이 그 유명한 도마뱀 입으로 분출된다는 사실이 대단히 놀라웠다. 구엘 공원이 워낙 언덕이라,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것을 고려한 가우디의 세심한 설계가 돋보였다. 그 시절에 이 정도의 시설을 만든다는 것이 놀랍고,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황당하기까지 한 아이디어를 100% 믿고 지지한 스폰서인 구엘 남작이다. 세상의 많은 예술가는 이렇게 누군가의 인정과 지지를 받을 때 정말 열정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게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가우디는 복이 많은 삶을 산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건축은 다른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듦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구엘 공원 투어를 마치고, 사그라다 파밀리아(a.k.a 성가족성당)를 보러 갔다. 가는 길에 노천 레스토랑에서 해물 빠에아를 먹었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었다. 성당 예약을 3시 30분 정도로 했었는데,  그 이유는 4시 이후, 해가 저무는 시점이 스테인드 글라스가 가장 예쁠 때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시 카페에서 머물면서 나와 재원이는 일기를 썼다. 시간에 맞춰 드디어 정문으로 입장!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사그라다 파밀리아 외벽에 새겨진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왜 가우디가 성당 그 자체가 이야기가 되도록 설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었다. 참고로 가우디가 직접 제작한 '탄생의 파사드'는 이후에 만들어진 '수난의 파사드'에 비해서 어둡고, 개인적으론 그것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가이드를 통해서 듣기론 그저 '더 오래되어서'라고 한다. 어떤 건물이든 100년이 지나면 때가 타고 어두워지는 법이다.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전에 한번 건물 세척을 하든지 해서 원래 가우디가 상상한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황홀감을 느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생각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분명 어디선가 봤던 것의 변형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성당의 내부도 그렇다. 지금까지 파리와 런던의 많은 성당을 봤고, 특히 팡테옹의 거대함에는 대단히 감탄하기도 했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는 그냥 '다른 세상'이었다. 특히 해가 지는 방향으로 빨간색 스테인드 글라스가 멋지게 깔려있는데, 성당으로 자연스럽게 들러오는 빛들과 건물이 어울려져서 세상에 없는 경험을 선사했다. 계속해서 사진도 찍고, 영상도 남겨보려고 했으나 실제로 경험한 느낌이 구현되지 않더라. 그래서 어느 순간 포기하고 그저 멍하니 성당으로 내려쬐는 빛만 바라봤다. 앞서 조언이 의미가 있었던 것이 오전에 가면 파란색 빛을, 오후에 가면 빨간색 빛을 주로 보게 되는데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빨간색이 훨씬 더 예뻤다. 결국 밖에선 다양한 스토리를 통해 '청각적'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안에선 형형색색의 빛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관람비의 일부는 성당을 만드는데 쓰인다고 하니, 크게 아깝지도 않았다. 그저 이토록 거대한 인류의 유산이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살면서 한 번쯤은 '마스터피스'라고 불리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자극도 받았다.  


재원이가 그린 그림 :)




[13일 차] 고딕지구와 람브라스 거리, 그리고 꿀대구!


오늘은 사실상 유럽 투어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도 짐을 정리하고, 비행까지 시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투어다운 투어가 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함인지, 오늘 날씨는 정말 기가 막혔다. 가장 먼저 우리가 향한 곳은 바르셀로나 성당이다. 성당 앞 광장에서부터 고딕 지구를 걸어 다니려고 했었고, 그중에서도 내게 중요한 목적지는 '츄러스'였다. 개인적으로 츄러스를 좋아하는 편인데, 파리에서도 츄러스 파는 곳은 많이 볼 수 있었지만 굳이 먹지는 않았다. 원조 맛집인 스페인에서 먹을 예정이었기 때문! 하하. 



그렇게 시작된 골목길 투어. 날씨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분위기였다. 광장에서 레옹 OST가 흘러나오는 것도 분위기에 한몫했고,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에 예쁜 기념품 가게들도 즐거움을 더했다. 재원이가 꽂힌 강아지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 한참을 찾아다닌 것도 좋았고, 오래된 서점을 방문해서 더 오래된 지도를 보는 것도 좋았다. 츄러스도 아주 맛났고.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만난 크리스마스 기념품 전문점인데,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가게여서 그런지, 아니면 기대보다 훨씬 더 큰 규모가 놀라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멋진 경험이었다. 아내도 나도 재원이도 계속해서 우와! 하면서 가게를 구경했고 결국 몇몇 소품을 사고야 말았다. 예상된 지출은 아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우리가 언제 또 그런 곳에 방문해 보겠는가. 



이어서 방문한 곳은 보케리아 시장이다. 아마도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재래시장이 아닐까 하는데, 그 명성만큼이나 관광객들이 많았다. 우리도 자연스럽게 하몽을 하나 사 먹었는데, 지금까지 뷔페에서 먹은 하몽과 비교해보면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다지 짜지도 않았고 고소하니 맛있었다. 아무래도 유통 과정을 고려하다 보니, 한국에서 맛이 없어진 게 아닐까 싶더라. 암튼 그렇게 즐겁게 시장 투어를 마치고,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인 여행객에게) 가장 유명한 맛집 중 하나인 비니투스로 향했다. 비니투스는 그 자체로도 유명하긴 하지만, 한국인 관광객에겐 더 널리 알려진 곳인데 특히 '꿀대구'로 유명하다. 나 역시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곳은 꼭 방문해보기로 마음먹었었다. 이곳은 온라인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예약을 해야 하는데, 줄만 서서 되는 게 아니라 직원에게 말해서 이름을 꼭 먼저 적어야 한다. 우리는 대략 20분 정도 기다려서 입장했고, 음식도 스페인 치고는 금방 나온 편이었다. 아무래도 손님들이 많고 규모가 크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한국인들은 시키는 음식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하) 그렇게 기다리던 꿀대구를 먹었는데, 과연 기대만큼 맛있었다. 아주 부드럽고, 달콤했다. 아내와 재원이는 쫄깃한 식감을 좋아하다 보니 맛조개가 더 맛있었다고 했지만, 나는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는 요리였다. 




점심 식사 이후에는 가우디 투어의 마지막,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를 차례로 방문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관람을 했는데 참고로 둘 다 내부 관람을 할까, 그냥 외부만 볼까 고민하다가 굳이 하진 않았다. 마지막까지 너무 타이트하게 일정을 짜고 싶지 않았고, 지금까지 관람비를 지불한 곳들(공원과 성당)에 비해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투어 후기를 보면 굉장히 좋았다는 평도 많았지만, 시간 관계상 카사 바트요와 밀라 투어는 다음 기회로 미뤄두기로 했다. 외관을 보고 가우디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무엇보다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길거리를 걷는 즐거움을 더 누리고 싶었다. 저녁에는 스페인에서 유명한 돼지고기인 '이베리코'를 구입해서 집에서 구워 먹었다. 오늘 저녁 식사가 유럽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라고 생각하니, 또 갑자기 슬퍼졌다. 이제 정말 여행이 끝나간다. 아내와 재원이에게 그동안 어떤 음식이 맛있었고, 어떤 장소가 좋았는지 물어보고 기록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14일 차] 바르셀로나 해변, 그리고 뜻밖의 만남


오늘은 진짜 진짜 마지막 날이다. 오전 체크인 시간까지 정신없이 바빴다. 남은 음식들 처리하고, 케리어를 싸고, 짐을 정리하고, 다들 씻고, 쓰레기도 버리고.. 등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어제 있었던, 아직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성미산 어린이집을 함께 다닌 '은호네 가족'이 바르셀로나로 한 달 살이를 하러 온다는 사실이다. 마침 오늘 딱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후 3시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전에 어디를 가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바르셀로나 해변에 가기로 했다. 한번 정도는 지중해를 봐야 하지 않을까 했던 것인데, 역시 아내는 자연 풍광이나 해변에 결코 반응하지 않았다. 허허허. 그저 해변 근처 벤치에 앉아서 음료수와 감자칩을 먹으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잠시 둘러보고 나서, 다시 보케리아 시작 쪽 빠에야 맛집으로 향했다. 역시 우리는 거리를 걷고,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더 즐겁다는 걸 깨닫는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식사 메뉴로 정한 것은 빠에야다. 아내가 빠에야 맛을 한번 보고는, 그 이후에 계속해서 빠에야만 찾고 있다. 아무래도 빵이 아니라 밥이어서 재원이 먹이기 좋은 것도 있고, 짭짤하고 해산물도 가득하다 보니 우리 입맛에 잘 맞기도 했다. 다양한 빠에야를 먹어보고자, 집 근처 1인분 주문이 가능한 레스토랑을 들어갔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곳이라기 보단, 로컬 맛집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해물 빠에야와 먹물 빠에야, 그리고 감바스를 먹었는데 모든 메뉴가 맛있었다. 다만, 스페인에서 빠에야를 시킬 때는 반드시 '소금 적게(싼씰?)'를 말해야 한다. 우리도 그렇게 주문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짜긴 하더라. 혹시 바르셀로나 가실 분들은 꼭 참고하시길. 


점심을 먹고, 공항버스를 탔다. 바르셀로나의 장점으로, 공항이 시내에서 가깝다는 것인데 이것이 생각보다 1초가 아까운 여행객의 시간을 많이 줄여준다. 대략 30분 만에 도착했고, 카페에서 은호네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은호와 마타, 그리고 수염이 도착! 원래 반갑지만, 이렇게 먼 곳에서 만나니 반가움이 2배였다. 재원이도 은호랑 오랜만에 놀았고, 우리도 본격적인 수다를 시작했다. 이번에 알고 보니, 수염과 마타는 신혼여행으로 바르셀로나를 왔던 경험이 있더라. 그때도 10년 후에 다시 방문하는 걸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한 달 살기로 당시의 바람을 이룬 것이다. 상당히 멋졌다. 우리와 같은 2주도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한 달이라니.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일상을 보내는 느낌이라 더 색다를 것 같았다. 많은 이야기를 뒤로 하고 서로 헤어졌고, 한 달 뒤에 건강하게 만나기로 약속했다. 우리도 수속을 밟고 , 라운지에서 저녁을 먹고, 비행기에 탔다. 지금은 비행기에서 마지막 글을 쓰는 중. 여행으로 인한 글은 여기까지가 마지막이다. 이제 여행은 끝이지만, 여행 같은 일상은 시작이다. 푹 쉬었으니 이제 핑계 댈 것도 없다. 화이팅하자. 건강하고, 행복하고, 훌륭한 삶을 살자. 우리 가족 모두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헌신하자.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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