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을 쏟아야 하지만 가장 보람된 일.
교실 안에는 학업에 임하는 세 종류의 아이가 있다.
잘하는 아이, 잘 못하는 아이, 안 하려는 아이다.
잘하는 아이는 그냥 교사의 존재를 마음에 담아주고, 활동과 평가내용만을 안내해도 잘한다. 그냥 잘한다.
큰 힘을 쏟지 않아도 교사에게 기쁨을 주며 스스로도 성장한다. 물론 잘하는 아이에게도 교사와의 관계 형성과 피드백은 중요하다. 좀 더 수준 높은 발문을 하고, 어려운 수행과제를 주어도 곧 잘 해낸다. 어떤 날은 고차원의 이론적인 내용을 안내하면 더 기뻐한다.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기를 즐겨하고, 그동안 쌓인 성취감으로 자신감이 넘친다. 교사는 같이 그 길을 걸어주며 안내자의 역할만 해도 충분하다.
잘 못하는 아이는 절대로 잘하는 아이의 기준에 맞추어서는 안 된다. 수업 안에서의 패배감은 안 하려는 아이로 만들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성취감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쉽게 설명해주고, 예시를 꼭 보여주고, 단계를 자세하게 안내해줘야 한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에, 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각 단계별로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교사는 아이의 수준을 잘 파악하여 좀 더 친절하고 꼼꼼한 안내자가 되어주면 된다. 마지막 지점쯤에 이 아이에게 잘하는 아이를 멘토로 붙여 도움을 받게 하면 결과물의 퀄리티가 한 계단 높아지기도 한다. 멘토를 하는 아이도 함께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안 하려는 아이가 있다. 교사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안 하려는 아이는 우선 교실의 수업 분위기를 흩트린다. 안 하고 딴짓을 하거나 엎드려 잠을 잔다. 수업 참여는 내 일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듯 온갖 비언어적 표현으로 “나 건들지 마세요”를 보여준다. 이 아이들은 그들만의 보호막을 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정말 오랫동안 아이들을 관찰하며 생각해왔다. 그리고 아이들과 개별적인 만남을 가지며, 어떻게 수업을 이끌지를 고민하고 실천해보았다.
정말 다양한 이유가 존재했다. 가장 공통적인 것은 목표 부재였다.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 안에는 가정의 문제, 친구와의 문제도 함께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함에 따른 패배감이 무기력함을 만들어 냈다. 칭찬을 받은 경험이 부족했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낮은 친구가 많았다. 그리고 수업과 교사에 대한 불신이 컸다. 한 번도 칭찬받지 못했던 수업시간이 좋을 리 만무하며,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교사에 대한 마음이 호감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쌓이고 쌓여 안 하려는 아이는 계속 안 하게 되고, 학습된 무기력처럼 그냥 그 모습이 습관이 되어버린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교사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많은 교사들이 그 아이들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적극적으로 그 아이들을 이끄는 것에 온 힘을 다하지는 못한다. 분명히 그 한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힘을 쏟아보다가 실패를 반복한 경험이 많을 것이다. 나는 안 하려는 아이와 수업시간에 힘겨루기도 해보았고, 교과 수업 외에 따로 불러 여러 차례 상담도 해보았다. 어느 날은 그 아이의 어머니와 통화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애씀도 아이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실 앞을 지나가다가 직업체험 프로그램인 바리스타 체험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며 활기찬 몸동작으로 신나게 활동하는 그 아이를 보았다. 순간 작은 배신감과 함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살피며 나는 내 수업의 지향점인 “삶과 연결된 몰입하는 수업”에서 답을 찾았다.
첫 번째는 관계 형성이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공략해야 한다. 약간은 의식을 해야 하기에, 아이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교사에게 담겨 있어야 시작이 수월해진다. 교사도 사람이기에 그 아이에게 미운 마음이 당연히 생긴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마음 가볍게 해주는 게 남 탓이 아니던가? 수업이 잘 안 되고 오늘이 힘든 이유가 그 아이 탓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마음을 다 비우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만나는 내 눈에 밟히는 아이들에게 한마디 더 건네고,
심부름도 시켜보고 막대사탕 하나 건네며 아이를 내편으로 서서히 스며들게 해 보자. 꽁꽁 닫힌 마음에 틈을 만들고 비집고 들어가 보자.
두 번째는 칭찬이다. 아주 사소한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도 미운 마음을 눈에 끼워 보면 절대 보이지 않는다. 자고 있다면, 살짝 깨우자. 움직임이 있다면 그 작은 움직임을 칭찬해보자 “피곤한데, 일어나려고 노력하는구나, 그래 오늘은 같이 한번 해보자!”
엎드린 채로 가만히 있고 싶어도 노력하는구나 라는 말을 들으면 그대로 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깨어나
수업에 참여하면 아이는 교사에게 자신의 활동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당연한 수업 참여가 이 아이에게는 엄청난 큰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 교사는 겉으로 하는 칭찬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세심한 칭찬을 해주면 된다. 아마도 아이의 어깨가 들썩일 거다.
세 번째는 수업의 주제를 삶에서 가지고 오는 것이다.
어느 날, 아이들과 우리 도시브랜드 디자인을 주제로 우리 도시에 대한 나의 감정을 브레인스토밍 하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막연했던 감정을 글을 표현하는 활동에 그 아이가 즐겁게 참여하였고, 발표도 스스럼없이 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삶을 수업으로 가지고 왔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눈이 반짝인다. 안 하려는 아이도 깨어난다. 좀 더 활동을 만들어 만나는 날은 반짝이기까지 했다. 한 가지를 더 덧붙인다면 그 아이의 결과물을 전시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소개한다면 수업을 통해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성취감을 느끼며, 아이의 꿈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네 번째는 지속적으로 아이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잘한 결과물이 중요하지 않다. 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계속해서 해주고 그 아이의 존재와 활동을 인정해주면 된다. 어쩌면 교실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의 존재를 우리는 외면했던 게 아닐까? 내가 이 교실에서 중요한 사람이고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방관자가 있을 수 없는 짜임새 있는 모둠활동을 추천해본다.
다섯 번째는 교사의 열정이다. “이 선생님은 믿을 수 있어, 이 선생님 수업에서는 뭔가를 얻을 수 있어, 선생님은 정말 우리를 생각해” 아이들은 교실의 수업 안에서 선생님을 바라본다. 선생님의 삶은 분명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다. 열정이 아니어도 된다. 진심이 있으면 된다.
그렇게 아이의 방어막을 서서히 거둬내었다.
물론 모두 다 성공할 수는 없다. 모든 안 하려는 아이들의 방어막을 다 거둘 수는 없다. 그저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교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