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30 공감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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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는 기술적인 힘과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는
동시에 소외, 단편화, 갈등도 일으킨다.
무언가에 대한 통제력을 얻기 위해 경계를 설정할 경우,
동시에 그 통제하려는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소외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켄 윌버, <무경계>-
5학년 선생님들이 수업자료를 올리는 커뮤니티를 구경하다 수업 영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탁구공을 이용한 교실놀이에 관한 영상이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책상 5개를 1열로 배치한다. 탁구공을 불어서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옮긴다. 탁구공이 중간에 떨어지면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5분 동안 가장 많이 성공한 팀이 승리한다.’
때마침 탁구공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규칙이 간단했다. 다음 날 있을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에 하면 적당해 보였다. 수업 준비는 영상 링크를 복사하는 것으로 끝냈다. 다음 날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 되어 아이들에게 똑같은 수업 영상을 보여주었다. 규칙은 모두가 금방 이해했다. 한 팀의 숫자는 8명이었으니 팀을 세 팀으로 나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 반은 23명이었다. 세 팀으로 나누면 한 팀에는 1명이 부족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한 아이가 외쳤다.
“선생님이 저희 팀으로 오시면 되잖아요!”
지금껏 아이들의 놀이에 참여해 본 적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재미있을 것 같았다. 흔쾌히 아이들 팀의 팀원으로 들어갔다. 탁구공을 불기 위해선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고 있자니 내가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삑! 타이머가 시작되는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애들 놀이라서 쉬워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웬만한 스포츠와 다를 바 없었다. 다른 팀은 하나둘씩 성공해 가는데 우리 팀은 아직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조바심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보니깐 출발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출발점에 있던 아이와 자리를 바꿨다. 몇 번 불어보니 어떻게 방향을 잡아줘야 할지 감이 왔다. 신중함에 과감함을 더해 탁구공을 불었다. 방향이 제대로 잡히니 하나둘씩 탁구공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다들 뭔가에 홀린 듯 탁구공에만 집중했다. 삑! 타이머가 종료를 알렸다. 우리 팀의 성공 횟수는 11번. 나머지 두 팀을 가볍게 뛰어넘는 횟수였다. 서로를 얼싸안고 승리의 세리머니를 뽐냈다.
내 나이 스물여덟. 담임교사. 그 순간은 나에게서 존재를 감추었다. 나는 그저 팀의 일원으로서 기뻐하고 있었다. 이어서 두세 판을 더 했다. 우리 팀은 매번 기록을 경신했다. 마지막 판에서 우리 팀은 총 37번을 성공시켰다. 몸은 땀으로 젖었고,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교실에서 그런 즐거움을 느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전에도 교실놀이 수업을 했었으나 참여를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교실놀이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점심을 먹고 연구실에서 쉬다가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5교시는 전담시간이었다. 홀로 즐길 고독에 마음이 평온했다. 이게 웬일. 교실 문을 여니 아이들 얼굴이 보였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보니 전담 선생님의 사정으로 전담 수업이 미뤄졌단다. 아뿔싸. 큰일이었다. 준비되어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잠깐. 덜어내기가 내게 준 값진 가르침이 있었다.
‘해답은 아이들에게 있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애들아 우리 뭐할까?”
아이들은 소리쳤다.
“놀아요!”
역시 애들은 애들이었다. ‘그래 한 번 놀지 뭐’ 놀고 싶어 방방 떠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억지로 수업을 해봤자 스트레스만 쌓일 것은 뻔했다.
“그럼 뭐하고 놀건대?”
아이들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간절히 외쳐도 돌아오지 않던 메아리가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아이들은 서둘러 의견들을 나누었다.
“장기자랑해요!”
이번에는 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장기자랑을 돈 주고 시켜도 안 할 것 같더니 본인들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다니. 블라인드를 내리고 교실 불을 껐다. 작년 학예회 때 쓰고 처박아놨던 LED미러볼을 꺼내 전원을 연결했다. LED미러볼이 드르륵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형형색색 불을 뿜었다. 하나둘하나둘 블루투스 마이크를 테스트하고 유튜브를 이용해 노래방 영상을 틀었다. 순식간에 교실이 노래방으로 변했다.
노래방의 온도는 첫 타자가 어떻게 분위기를 띄우냐에 달려있다. 다들 그걸 알고 있는 눈치인지 주저했다. 남자아이 한 명이 용기 있게 손을 들었다. 신청곡은 BTS의 디오니소스. 첫 순서의 무게감을 알고 있는지 아이의 표정은 결연했다. 웅장한 인트로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쭉 들이켜어” 힘이 넘치는 발성이 귀를 울렸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아이는 탄력을 받았는지 더욱 힘찬 보컬로 노래를 지배했다. 교실의 온도가 달아올랐다. 그 아이의 노래가 끝나고 몇 명이 더 장기자랑 신청을 했다. 지켜보는 나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음 차례의 장기자랑 신청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 한 아이가 슬며시 이야기했다.
“선생님도 하시면 안 돼요?”
애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와아! 선생님! 선생님!” 아이들은 집요하게 나를 몰아갔다. 나도 무슨 심정이었는지 모르겠다. 분위기에 취했었는지 슬며시 마이크를 잡았다. 눈치 없게 발라드를 부를 수는 없었다. 모두가 따라 부를 만한 노래가 필요했다. 고민하다 예전에 방영하던 ‘포켓몬스터’라는 만화의 오프닝 노래를 선곡했다. 당황스럽게도 애들은 노래를 모르는 눈치였다.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원래라면 모두가 따라 불렀어야 할 부분인 데 따라 부르는 아이가 없었다. 너무 창피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더 크게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박장대소를 했다. 노래가 끝났다. 애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다. 무거운 겨울 잠바를 벚어젖힌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3월 2일 개학을 앞두고 선배 선생님들이 매번 해주던 이야기가 있었다. ‘특히나 나이가 젊으니깐 애들한테 너무 친구처럼 해주면 안 돼’ 충분히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너무 아이들한테 친구처럼 편하게 대했다가 학급이 무너져 1년을 고생한 사례들을 많이 봤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충고에 충성했다. 친구 같은 선생님에 대한 환상은 학기 초에 박살 내었다. 아이들에게 절대 넘어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굵고 선명한 경계를 못 박았다. 통제력에는 강한 힘이 실렸다. 다만 나에게는 해야 할 일만 생겼다. 어쩌면 우울함이 찾아온 데에는 아이들과의 단절이 큰 몫을 차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교실에서 즐겁고 싶었다. 교실놀이에서, 장기자랑에서 선명히 그어놨던 경계를 먼저 넘어갔다. 경계를 넘어 잠시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보니 느낄 수 있었다.
가끔은 우스워져도, 가벼워져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