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뻔뻔한 영화평 - 13> 샘 페킨파가 2차 대전 영화를 찍었다구!
# 제임스 코번. 이 형님 매력을 잘 몰랐다면, 애원하노니 이 영화를 꼭 보시오.
# 이름에서도 카라스마 팍! 팍! 느껴지는 거장 ‘페킨파‘.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지. 혹시 페킨파 이름이 낯설어?
뻔뻔한 영화평 6편 ‘와일드번치’ 편 읽고 오시길
#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이 동요 알지? 이거 독일 동요란다. 이 영화에 나오니 잘 들어 봐
# 원제가 “Cross of Iron”. 나치제국 최고 훈장의 이름 ‘철십자 훈장’.
어라? 1977년 개봉할 때 "17인의 푸로페셔날"로 제목 바꾼 거 이거 누가 했을까? 영화 속에 용병집단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정답은 일본. 일본에서 당연히 먼저 개봉했고, 우리나라 외화 수입업자들이 따라한 것. 그래서 그런지 당시 포스터에 일본식 발음대로 “푸”로페셔날로 쓰여있다. 프로페셔널도 아니고. 참나 따라 할걸 따라 해야지. 지금은 한일역전 어쩌고 하지만 70년대 후반 우리나라, 한참 후진국이었단다. 참고로, 1982년 KBS 명화극장 프로그램에서 방영할 때는 17인의 “프”로페셔날로 나갔다. 다행이지?
일본어는 모음이 ㅏ,ㅔ,ㅣ,ㅗ,ㅜ 다섯 개 밖에 없다.
"으"발음은 표기할 수도 없고, 발음하기도 어렵다.
감솨합니다. 세종대왕님
# 영화배경이 2차 대전 막바지, 우크라이나 어디쯤이다. 이 영화 촬영 당시에도 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전에도 물론 존재한 적은 없지만.
그래서 지금 한창인 러우 전쟁에 대해 썰 좀 풀었다. 뒤쪽에.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은… 꼭 좀 읽어라. 무식한 게 제일 무서운 게 뭐냐면 선악구별을 못하게 된다는 거.
# 실제 촬영은 지금은 해체된 나라 "유고슬라비아”에서 찍었다. 당시 유고는 티토 대통령의 집권하에 소련과 서방사이에서 독자노선을 걷고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무기들도 많이 남아 있어서 조감독이 일하기는 쉽지 않았을까 짐작만.
# 뻔뻔 평점 *****(영화는 별 4개지만 최근의 러우전쟁을 반영하여 꼭 보라는 의미로 5개!)
제2차 세계대전은 흔히 나치 독일의 광기와 싸운 연합국, 그중에서도 미국의 정의로운 승리로 요약된다. 하지만 전쟁의 실질적 중심은 유럽 대륙의 동쪽에서 벌어진, 독일과 소련의 피비린내 나는 충돌, 즉 동부전선이었다.
병력, 무기, 전사자 수, 어느 하나 역사상 최다 기록에 빠지지 않는 이 전선은 실질적으로 전쟁의 운명을 결정했다.
지상최대의 작전이라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D-day는 1944년 6월 6일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 국경을 넘었고, 베를린이 소련군에 항복한 날은 1945년 5월 2일.
그러니까 연합군이 서부유럽에서 독일과 제대로 붙은 기간은 채 1년이 되지 않는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유럽의 전쟁에 뛰어든 건 전쟁이 벌어진 한참 뒤 일이고, 심지어 전쟁초기에 미국은 독일과 정상적인 무역거래를 하기도 했다. 2차 대전의 진정한 전쟁터는 지금 우크라이나 지역을 포함하는 광대한 러시아 평원이었다.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쓰러져 갔던 바로 그곳.
2차 대전 중 전사자 수만 헤아려 볼까? 독일군 총전사자는 약 500만 명. 그중 400만~450만 명이 동부전선에서 죽었다.
소련군 총전사자는 적게는 1800만, 많게는 2천만 명. 부상자를 포함한 게 아니다. 전사자만 그렇다.
소련 민간인 사망자는 약 1400만 명. 이 처참한 사실을 기억하며 이 영화를 보시라.
영화의 핵심 줄거리는 이념보다 생존을 우선하는 하사관 슈타이너(제임스 코번)와
무능한 귀족 출신 장교 스트란스키(막시밀리언 셀)의 갈등과 대결을 따라 흘러간다.
허망한 명예를 좇아 모든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지휘관과 오로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병사들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며 전쟁의 민낯을 드러낸다. 폭력을 묘사하며 폭력을 고발하는 페킨파의 솜씨는 명불허전!
동부전선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선, 전체주의 체제 간의 대결이었다. 나치즘과 코뮤니즘—둘 다 자유민주주의와는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며, 인간 개인을 체제의 부속품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닮았다. 나치는 인종주의적 국가사회주의를, 스탈린 체제는 강압적 계급 독재를 관철시켰고, 두 체제 모두 그 과정에서 수천만 명의 생명을 말살했다.
‘17인의 프로페셔널’은 이러한 체제 충돌의 거대한 전쟁 상황을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각자의 임무에 충실한 개인들의 태도와 윤리로 재현해 낸다. 이들은 어떤 대의명분보다 살아남기를 추구했으며 독소전에서 말없이 사라졌던 병사들의 ‘내면의 드라마’를 대변한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은 소련을 적대적으로 인식했지만 소련에게 막대한 전쟁물자를 지원한다.
뭐니 뭐니 해도 이유는 단순했다. 더 큰 위협(나치 독일)을 먼저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아이러니다.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패턴이다—지정학은 이념보다 우선하며, 적의 적이 곧 동지가 되는 세계. 그 지원 덕분에 소련은 동부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고, 결국 연합국의 승리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 대가는 냉전이었고, 미국이 키운 ‘승자’는 훗날 가장 강력한 적이 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모든 역사적 맥락의 연장선이다. 2차 대전 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방어선이자, 독일군 동진 전략의 핵심 요충지였다. 오늘날 이 땅은 다시금 강대국의 충돌지대가 되었고, 다시 한번 인간의 생명은 이념과 지정학 사이에 갈려나가고 있다.
‘17인의 프로페셔널‘의 세계가 말하는 바는, 어쩌면 현재의 전장과도 연결된다—전쟁은 체제가 일으키고, 인간은 그 체제를 감당해야 한다.
전쟁은 언제나 외부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불러온 원인은 내부로부터 시작된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총소리가 나기 전에 정치적 선택이 있었다. 그 선택은 국가가 아니라 권력을 위한 것이었고, 결국 총탄은 국민을 향했다. 현대 우크라이나 지배층과 철십자 훈장이 최대 목표였던 스트란스키 대위와 무엇이 다른가?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었다. 올리가르히(독점 재벌) 체제가 국가의 상층부를 점령했다. 정경유착은 일상이었고, 자원과 산업은 공공의 것이 아니라 소수의 사적 수단이 되었다. 민생은 방치되었고, 시민사회는 구조적으로 약화되었다. 외형만 민주주의였을 뿐, 실질은 봉건주의의 현대적 변형에 가까웠다.
그 체제는 전략적 균형을 감당할 역량도 없었다. 나토와 유럽연합에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러시아와의 대립은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세력을 물리적으로 탄압하며 커져만 갔다. 국방은 공허했고, 외교는 감정적이었다. 민족주의는 때때로 현실감각을 마비시켰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등장은 변화처럼 보였지만, 그 실상은 정치를 이미지화한 또 하나의 포퓰리즘에 불과했다.
전쟁은 예고된 파국이었다. 정권은 안보를 말했지만, 실질적 방어력을 준비하지 않았다. 외교적 퇴로는 봉쇄되었고, 국민은 갑작스럽게 전장의 한가운데로 내몰렸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희생은 사회적 약자부터 감당했다.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았다.
이 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의 침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라는 게 역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1783년 4월 19일 크림칸국을 병합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현재 주민의 대다수가 러시아인이다.
19세기 중반에는 나이팅게일의 신화로도 유명한 ‘크림전쟁‘이 일어난다.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하려는 영국이 당시 허약해져 가는 오스만튀르크제국을 도와 일으킨 처참한 국제전쟁이었다. 연합국에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패배했지만 크림반도의 러시아 지배는 국제적으로 용인되었다.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 땅이라는 논리는 만주땅은 애초에 우리 땅이고 지금도 우리 땅이어야 한다는 주장만큼 어리석다.
그렇다고 러시아 입장만이 옳다는 게 아니다. 무리한 서구 친화적 정책이 우크라이나 지배세력의 탐욕의 결과가 아니었는지 반성해야 할 때가 온 것뿐이다. 지정학에 선과 악은 없다.
국제정치의 정당성은 최후에 실질적인 물리력으로 확보될 수 있을 뿐이다. 지도자가 감당하지 못한 선택의 결과는 결국 민중의 피로 갚을 수밖에 없다.
역사는 묻는다. 누가 이 전쟁을 불러왔는가.
그리고 또 묻는다. 이 전쟁이 끝난 뒤,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민족주의는 때로 진실을 덮는다.
(우크라이나 역사에 대해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역사와 현실에 대해, 그리고 이를 보도한 우리 언론의 행태에 대해…다음편에 이어서!)
아니 뭐야? 그럼 또 전쟁영화를 해야 하나?